▲전문 배우의 호랑이 연습
마을극단 밥상
그러나 어디 사람 일이 자기 마음대로만 된다던가. 예상과 달리 나의 업무는 마냥 여유롭지 않았다. 다행히 아침에는 이사를 와서 회사와 집이 가까워진 탓에 오전 8시 30분까지 아이들을 돌봐줄 수 있었지만(첫째 까꿍이의 유치원 등원은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저녁의 야근은 이전 회사 때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어떤 때는 오히려 야근이 더 잦아지기까지 했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직장인을 상대로 하는 일이다 보니, 직장인 퇴근 시간에 맞추어 교육 등의 행사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 주말은 어떠한가. 예전 회사에서는 주말에 일을 해봤자 아주 가끔 회사 야유회가 있거나 사고가 났을 때 등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주말 행사가 다반사였다. 일반 주민들을 상대로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려다 보니, 그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주말이 곧 행사에 적합한 날이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러니 아내의 불만은 커져가기 시작했다. 이직을 할 때 했던 얘기와 너무 다른 현실에 아내의 인내심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고, 또 사회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가정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는 아내.
할 말이 없었다. 과연 이 난국을 타계할 수 있을까?
아내에게 협동조합을 소개하다예전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육아를 도와줄 수도 없는 사면초가의 형국.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교육이었다. 난 아내에게 내가 집에 일찍 귀가하지 못하는 대신 우리 단체가 기획하는 사회적경제에 대한 교육을 들으라고 추천했다. 어차피 내가 스태프인 바, 일을 하면서 아이 셋을 보고 있으면 되니 아내더러 나 대신 협동조합에 관한 수업을 들으라고 한 것이다.
아내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아이들과 골머리를 썩느니 차라리 교육 듣는 게 낫겠다며 나의 제안을 선듯 수락했다. 오히려 도시에서 자란 나보다 지리산 밑 시골에서 자란 자기가 협동조합에 더 어울릴 것이라며 아이들을 내게 맡긴 채 열심히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