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장'이 된 스쿨버스... 타는 순간 악몽이 됐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50] 막 내린 카리브해의 해적의 시대... 파나마 운하

등록 2014.07.12 21:40수정 2014.07.12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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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의 해적 대신 소매치기

파나마시티의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는 핸드 드립으로 유명한 어느 카페에서 마신 파나마 산 원두 커피 맛을 자꾸만 떠올리게 만들었다. 와인 향처럼 진한 과실 향이 입안에 감돌던 커피였다. 갑자기 혼자가 된 것이 어색한 나는 좀처럼 여행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누군가 "가자, 먹자"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디에도 가지 않게 되고 아무거나 먹게 됐다.


더위와 소나기와의 싸움은 이제 시작이건만 자꾸만 축축 처지는 몸을 일으켜 내가 향한 곳은 결국 미국 이남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인 알브룩 몰(Albrook Mall)이었다. 여기라면 보기 드문 동양인에게로 쏠리는 시선을 조금은 떨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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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브룩몰 중남미를 통틀어서 가장 큰 쇼핑센터. 대륙의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의 집결지인 알브룩 터미널과 붙어있다. ⓒ 김동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쏟아지는 소나기에 안녕을 고하고 들어선 알브룩 몰은 과연 거대했다. 한국에나 있을 법한 미국식 쇼핑센터를 중앙 아메리카에서 보게 될 줄이야. 12월을 맞은 그곳에서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한창이었다. 더운 나라에서 어색한 털옷을 입은 산타 인형들이 공중에 매달려 춤을 추고, 뜬금없이 모습을 드러낸 회전목마는 평일 오전이라 타는 사람이 별로 없음에도 화려한 조명을 뽐내고 있었다. 문득 문득 천장을 올려다 보면 어김없이 거대한 풍선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2층의 난간에는 장난감 기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건물 사이를 달린다.

한껏 멋을 낸 쇼핑몰(과 시원한 에어컨 바람) 덕분에 조금씩 신이 나기 시작한다. 되살아난 여행자의 호기심은 결국 지름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유럽을 떠나온 지 2달 반 만에 처음으로 보는 대형 쇼핑몰에, 하필 크리스마스 세일 기간에 도착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인연이다. 남미의 얼음계곡을 뚫고 지나온 두터운 옷들을 모두 비워내 넓어진 배낭도 한 몫 거들었다. 역시 돈은 쓰는 맛이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친 나는 발걸음이 가벼운 지금이야말로 파나마 운하를 방문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경찰들에게 물어 물어 운하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다 어마어마한 인파에 휩쓸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던 그 때, 낯선 기분이 내 바지를 스쳤다.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어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니 핸드폰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만진 지 30초나 지났을까? 재빨리 몸을 뒤로 돌려보니 한 소년이 손가락으로 반대쪽을 가리킨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소년이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핸드폰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일이 틀어졌음을 깨달은 녀석은 달리기 시작했고, 채 스무 걸음도 못 가서 나에게 붙잡힌 녀석의 주머니를 뒤져 내 핸드폰을 되찾았다. 준과 헤어지자마자 이 모양이라니.


그 와중에도 엄청난 인파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버스터미널로 몰려들었고 소매치기범은 그 사이로 모습을 감췄다. 여행 5개월째 만에 처음으로 당한 소매치기의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속으로 '버텨야 돼'를 반복하며 파나마 운하로 가는 버스를 찾는 것뿐이었다.

파나마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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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버스 파나마뿐 아니라 중앙 아메리카 대부부분의 국가에서는 국가가 해결해 주지 못한 대중교통의 문제를 치킨버스로 해결하고 있다. 요금은 25센트. ⓒ 김동주


파나마 운하로 가는 길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소매치기를 당한 순간 직감했다. 알브룩 버스 터미널 한 켠에 있는 '치킨버스'에 실제로 탑승하는 순간, 그 직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미국의 오래된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서민들의 교통수단으로 만든 이 치킨버스는 여행객들 사이에는 '명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정작 타보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게 된다.

파나마 운하로 가는 것임을 확인하고 자리에 앉으니 체구가 작은 내 무릎에도 앞 좌석이 닿는다. 시내버스 좌석의 불편함이야 그렇다 쳐도 몰려드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었다. 2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4명이 앉고, 통로 가득 짐과 사람들이 얽히고 설켜 그야말로 '닭장'이 된 후에야 치킨버스는 움직였다.

이쯤 하면 그만 할 법도 한데 엄청난 소나기가 퍼붓고 사람들이 하나씩 창문을 닫기 시작하자 버스의 내부는 그야말로 찜통이 돼 버렸다. 온몸에 육수처럼 흐르는 땀이 세포 하나하나를 간지럽히는 불쾌한 기분을 오로지 정신력으로 버티기를 30분, 이름 모를 도로에서 해방되고 나서도 엄청난 빗줄기를 맞으며 제법 달린 후에야 겨우 파나마 운하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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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 운하 박물관, 3D 상영관, 옥상 뷰포인트로 이루어져 있으며 박물관에서 기나긴 역사와 다양한 전시물을 볼 수 있다. ⓒ 김동주


입장료를 내고 입구로 들어서니 파나마 운하의 역사를 다양하게 담은 4층 박물관의 시작이다. 자국의 자랑거리를 선전하기 위한 박물관이 뭐 대수로울 게 있을까 싶었지만, 파나마 운하는 생각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사실은 뿜어 나오는 시원한 에어컨 때문에라도 나는 영원히 그 박물관에 머물고 싶었다.)

파나마는 지리적으로 대륙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북쪽으로 카리브해, 남쪽으로 태평양을 끼고 있어 사실상 뱃길로 전세계 어디든 다 닿을 수 있는 교통의 허브다. 이러한 파나마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미국은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결국 파나마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파나마 운하를 만들어 냈다. 그 옛날 '카리브해의 해적'들이 판치던 무법지대 파나마가 오늘날의 국제도시로 탈바꿈한 것은 오로지 운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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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나마의 국토 북쪽의 카리브해, 남쪽의 태평양, 누운 S자 모양의 특이한 지형 탓에 남과 북을 관통하는 운하가 건설될 수 있었다.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카리브해와 태평양을 이어 전 세계를 상대로 무역이 가능해지자, 1914년 개통한 이후 약 100만 척 이상의 선박이 이 웅장한 지름길을 통과했다. 당시로서는 지름길이기도 했지만 복잡한 항로가 오로지 한 길로 집중되면서, 카리브해 여기저기를 휘젓던 해적선을 효과적으로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세계의 모든 선박이 이 길을 지나면서 카리브해의 해적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어깨에 앵무새를 얹은 해적을 상상하고 있던 그 때, 바깥에서 요란한 박수 소리가 들린다. 급하게 옥상정원으로 가보니 이제 막 도착한 유람선이 운하로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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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하로 들어오는 유람선 운하로 배가 들어오면, 꺽쇠 모양의 수문이 열려 왼쪽과 오른쪽의 수위가 같아지면서 배는 미끄러지듯이 다시 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할 수 있다. ⓒ 김동주


알고 보니 파나마 운하에서는 한 때 해적선들이 활개치던 뱃길을 따라 투어를 하는 유람선이 인기란다. 대륙 분수령을 지나 몇 개의 갑문, 광활한 은빛 호수 가툰 호를 가로질러 카리브 해의 정글지대로 나아가 오래된 도시를 들렀다 다시 운하로 돌아온 유람선을 향해 방문객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든다.

한 때 흥미진진한 위험의 대명사였던 파나마시티는 이제 유람선을 타고 해적을 추억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 제일의 국제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차가운 북미의 부유한 은퇴자가 추구하는 열대의 햇살과 이국의 낯선 생활이 충만한 곳, 카리브 해 곳곳에 숨어 있는 조세 피난처를 습격하는 허리케인을 피해 자신들의 요트를 정박할 안전할 장소를 선사하는 곳, 파나마 운하야말로 그런 파나마 시티의 살아있는 역사다.

간략여행정보
잘 정비된 뱃길과 달리 파나마시티 내륙은 여전히 교통 체계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 파나마 시티에서 파나마 운하로 가기 위해서는 알브룩 몰과 연결되어 있는 알브룩 버스 터미널에서 감보아(Gamboa) 행 치킨버스를 타야 한다.

알브룩 몰은 여행자의 소지품을 터는 소매치기로 악명이 높은 편이니 여러모로 주의가 필요한 우범지대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일행을 모아 택시를 타는 수밖에. 또는 파나마 시티 곳곳의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커낼&베이투어(Canal & Bay Tour)를 신청해 운하에서 유람선을 탈 수도 있다. 운하를 떠난 배는 대륙 분수령을 떠나 카리브해의 도시 콜론(Colon)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온다.

한편 파나마 운하는 3D상영관, 박물과, 옥상 뷰포인트 세가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세가지를 모두 포함한 입장권의 가격은 아래와 같다.(2012년 12월 기준) 파나마 운하 입장권 : 8USD

좀 더 자세한 파나마운하 여행정보는 아래를 참고하자.
http://saladinx.blog.me/30154171181

#파나마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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