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친박·낙하산 이사장, 끝까지 간다?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직원에게 "업무복귀" 최후통첩

등록 2014.07.10 18:56수정 2014.07.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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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후 사업회 1층에서 올려다 본 계단의 모습이다.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다. 사진은 10일 오후 사업회 1층에서 올려다 본 계단의 모습이다. ⓒ 선대식

10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아래 사업회)에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낙하산 금지를 뜻하는 그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계단은 박상증 사업회 이사장 임명을 반대하는 직원·시민사회단체가 붙인 대자보·펼침막으로 채워졌다. 사무실의 직원들 자리에도 '낙하산 임명 반대'라는 팻말이 붙었다.

민주화운동 정신 계승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설립된 사업회의 운영은 5개월째 멈췄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민주주의 현장체험, 청소년 사회참여발표대회, 교사 연수 등의 사업은 중단됐고, <계간 민주> 출판도 정지됐다. 안전행정부가 공공기관인 사업회 예산을 주지 않은 탓이다. 사무실 임대료와 직원 월급 지급이 5~6개월 밀렸다. 

지난 2월 '친박·뉴라이트·낙하산 인사'로 평가받는 박상증 이사장이 임명되면서, 직원들은 이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사회 곳곳에 보수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직원 37명의 사업회 역시 이 같은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직원들은 박근혜 정부가 박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진을 통해 사업회를 장악해 민주화운동을 재평가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이끌고 있다. 오히려 직원들에게 업무복귀를 명령을 내렸다. 직원들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징계 조치하겠다면서 최후통첩을 했다. 이와 함께 10일 현재 144일째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 대한 퇴거 조치도 예상된다.

"뉴라이트의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장악 우려"

사업회 파행의 발단은 안전행정부가 지난 2월 박상증 이사장을 임명한 데에 있다. 과거 민주화운동에 나섰고,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지낸 박 이사장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큰 파장을 낳았다. 그가 사업회 이사장에 임명될 경우, 사업회 독립성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절차적인 문제도 제기됐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준용해 만든 사업회 내부 규정에 따르면, 임원추천위원회가 이사장 후보를 추천한다. 임원추천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정성헌 이사장의 임기가 끝나자, 그와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를 이사장 후보를 추천했다. 하지만 안전행정부는 사업회 쪽에 이사장 후보로 박 이사장을 검토해달라고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자 박 이사장을 그대로 임명했다.


한 사업회 직원은 "이명박 정부 때도 정부와 사업회 임원추천위원회가 서로 다른 인사를 이사장 후보로 추천했지만, 결국 대화를 통해 정성헌 이사장을 뽑았다, 또한 임원추천위원회 추천 절차도 밟았다"면서 "하지만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못하다"고 비판했다.

이사진에 대한 비판도 크다. 안전행정부는 지난 5월 15일 박 이사장의 제청을 받아 7명의 이사를 선임했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를 맡은 한기홍 이사는 옛 뉴라이트재단(현 시대정신) 출신이다. 부마항쟁 부산동지회 소속의 김영일·이일호 이사는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직원들과 시민사회에서는 뉴라이트가 사업회를 장악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감추지 않고 있다. 직원들은 지난 5월에 낸 성명에서 "비민주적이고 편향된 임원이 민주화운동을 올바르게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할 수는 없다"면서 이들의 임명 철회를 요구했다. 사업회의 한 직원은 "뉴라이트가 사업회를 장악해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북한민주화운동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김항섭 안전행정부 사회통합지원과장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공공기관의) 성격 변화가 불가피하다"면서 "민주화경력, 공정성, 도덕성, 업무역량 등을 심사숙고해서 이사진을 임명했다, 이사진을 뉴라이트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인 수사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각종 사업 중단... 월급 못받은 직원들은 생계 호소

a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출근저지 당한 박상증 목사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울 정동 사무실로 출근하려던 박상증 이사장이 출입문을 잠근 채 농성중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불법임명 거부대책위' 회원들의 저지시위로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출근저지 당한 박상증 목사 지난 2월 17일 오후 서울 정동 사무실로 출근하려던 박상증 이사장이 출입문을 잠근 채 농성중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불법임명 거부대책위' 회원들의 저지시위로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 권우성


사업회 정상화는 현재 기로에 섰다. 박 이사장이 지난 2일 직원들에게 보낸 내용증명에서 11일까지 개인별 업무복귀에 대한 찬반 입장을 문자 또는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복귀 명령을 거부하는 직원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직원들은 박 이사장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향후 대량 징계 사태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사업회의 한 직원은 "노조 탄압 수법과 비슷하다, 직원들을 분열시키려는 것"이라며 "현재 직원들은 모두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다, 사업회의 각종 사업이 중단된 것은 안전행정부가 예산을 내려 보내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매년 초 이사회에서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의결하면, 안전행정부가 예산을 내려보낸다. 이사회는 직원들의 업무 복귀와 업무보고 등을 요구하면서 2014년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고 있다. 모두 61억 원인 올해 예산에는 직원들의 임금과 사무실 임대료도 포함돼있다.

한 직원은 "지난 2월부터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해 버티고 있다"면서 "월급으로 직원을 압박하는 것은 사실상 부당노동행위"라고 비판했다. 사업회는 지난 1월부터 월 9000만 원의 사무실 임대료도 내지 못하고 있다. 체납 이자만 2077만 원에 달한다.

김항섭 사회통합지원과장은 "법적으로 이사회 의결이 없으면 예산을 내려보내 줄 수 없다"면서 "이사회에 직원들을 설득해 절차를 완료하라고 압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조성철 사업회 이사는 "이사회에서 직원들 생계 문제를 고려해 월급 지급만 따로 의결했지만, 안전행정부가 난색을 표했다"고 밝혔다.

조성철 이사는 이어 "박 이사장에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이사회가 사업회를 접수한다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직원들은 법적인 틀 내에서 그동안 해왔던 것을 그대로 하면 된다, 제 역할도 직원들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사진 다수도 원만한 해결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종섭 안행부 장관 후보자 "말씀 듣겠다"

사업회 정상화를 위해 정치권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이 박근혜 정부에 박상증 이사장 사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임수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8일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박 이사장 임명에 대한 절차적 문제를 지적하면서 사업회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정종섭 장관 후보자는 "(그 동안의) 과정을 소상히 알지 못한다, 제가 직무를 수행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파악하겠다"고 답했다. 또한 "초기부터 이사장직 수행하신 분들과 사업회에 적극 관여하시는 분들의 말씀을 들어보고, 사업회가 빠른 시일 내에 자기 역할을 하고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살피겠다, 말씀하신 부분을 유념하겠다"고 덧붙였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태 150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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