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시험범위는 '도박?'"... 정말 부끄럽다

화상경마장 반대 위해 거리로 나선 학생들... "어른이면 어른답게"

등록 2014.07.15 11:05수정 2014.07.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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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박근혜 대통령의 후배인 성심여중고 학생들이 청와대 앞에서 학교앞 화상 경마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 마사회와 대통령 등 어른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후배인 성심여중고 학생들이 청와대 앞에서 학교앞 화상 경마장을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누가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는가? 마사회와 대통령 등 어른들이다. ⓒ 용산경마장 대책위


용산구 원효로 일대에 들어서는 화상 경마장 주변 500m 내외엔 성심여중, 성심여고, 원효초 등 초중등학교 6곳이 자리 잡고 있고 아파트 등 주택가도 밀집해 있다. 그런데 한국마사회(회장 현명관)는 지난달 28일, '시범운영'이라는 미명하에 기습적으로 화상경마장 개장을 시도했다.

화상경마장 개장하던 날, 현장은 경마장을 반대하는 교사와 학부모, 시민들과 마사회직원, 경마꾼들의 몸싸움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후 반대하는 교사, 학부모들과 경마장 영업을 강행하려는 마사회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용산 화상경마장 사태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학교 기말고사를 마친 학생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미 조희연 서울교육감이 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고, 제1야당인 새정치국민연합이 연일 '아이들의 학습권 보호'를 외치며 마사회를 성토하고 있다. 또 새정치국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와 우원식 최고위원 등은 수차례 현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야당뿐 아니라 용산구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인 진영과 서울시의원도 현장을 찾아 마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며 성토했다. 서울시 임종석 정무부시장은 지난 11일 오전 현장을 찾아 학부모와 교사들을 만난 후 마사회를 방문하는 등 사태 해결에 나섰다. 정의당의 심상정 원내대표와 김제남 의원도 직접 농성장을 찾아서 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학부모와 교사들, 지역주민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반대, 반대, 반대... 요지부동 '마사회'

a  지난 주말 용산 화상 경마장 앞. (좌)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 회원과 아이. (우) 뙤약볕에 햇빛을 가리며 피켓을 들고 있는 성심여중고 학생들. 누가 이들을 거리로 불러내었는가?

지난 주말 용산 화상 경마장 앞. (좌)화상경마장을 반대하는 주민대책위 회원과 아이. (우) 뙤약볕에 햇빛을 가리며 피켓을 들고 있는 성심여중고 학생들. 누가 이들을 거리로 불러내었는가? ⓒ 김행수


그러나 거대한 공룡 공기업 마사회는 요지부동이다. 용산 화상경마장을 향한 아우성에 귀를 막고 있다. 지난 6일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가 현명관 마사회장과의 면담에서 제안한 "주민투표로 결정하자"는 방안에 대해서도 마사회는 현재까지 아무런 답이 없다. 사실상 거부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개장을 철회하라는 요구엔 묵묵부답인 마사회지만,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응징엔 발 빠르게 행동하고 있다. 화상경마장을 찬성하는 단체들을 대거 동원해 집회를 여는가 하면, 경마장 반대 대책위 지도부를 업무방해로 고소한 것도 모자라 법원에 영업방해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했다.


마사회는 교사들과 학부모, 지역주민들과 서울시청, 서울교육청, 용산구청장, 여야 국회의원, 서울시의원이 반대하고 나섰는데도 학교 앞 경마장을 기어이 밀어붙일 태세다.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지금까지 1년이 넘게 이 화상경마장 반대 싸움을 해 오면서도 학생들만큼은 거리에 나서지 않기를 희망했다. 문제 발생 초기에 거리로 나서겠다는 학생들을 막고 또 막아온 것이 교사와 학부모들이었다. 학생들 역시 '아무리 돈이 중요하더라도 설마 어른들이 학교 앞에 도박장을 개장하겠냐?'고 어른들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학부모와 교사들의 희망, 학생들의 최소한의 기대는 자본의 탐욕, 어른들의 돈 욕심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참다 못 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다기보다 어른들이 이들을 거리로 내몰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7월 둘째 주, 기말고사를 마친 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한두 명씩 화상경마장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교복 입은 여중생과 여고생들이 직접 만든 피켓의 문구는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어른이면 어른답게", "다음 시험범위는 '도박?'",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키는 게 '으리'", "저희가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잘못 오셨어요, 포기하세요", "용산구 세월호 만들지 말자", "경마장 OUT 돈보다 생명이 더 소중하다", "NO NO 경마장", "잃지 마세요, 가정에게 양보하세요."

재기발랄한 피켓 문구에서 학생들의 진심과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이 어른들에게 무엇을 배울까? 이 학생들에게 학교 앞 화상경마장은 생명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며 수없이 많은 학생들의 생명을 빼앗아 가버린 '육지의 세월호', 그 자체인 것이다.

청와대 앞으로 달려간 여중·고생들

a  화상경마장 앞에 나타난 학생들. "다음 시험 범위는 도박?", "어른이면 어른답게"라는 피켓 문구들이 어른들로 하여금 반성하게 만든다.

화상경마장 앞에 나타난 학생들. "다음 시험 범위는 도박?", "어른이면 어른답게"라는 피켓 문구들이 어른들로 하여금 반성하게 만든다. ⓒ 김행수


급기야 14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로 알려진 성심여중·고 학생 수십여 명이 청와대가 있는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화상경마장 개장을 철회해달라고 촉구했다. 이 학생들은 왜 청와대로 갔을까? 학부모와 교사들, 서울시장과 교육감, 국회의원과 시의원들까지 나서도 해결되지 않자 청와대를, 선배인 대통령을 찾아간 것이다. 기자회견을 마친 학생들은 청와대 민원실에 경마장 개장 반대 청원 엽서 1300여 장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통령 선배님! 후배들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온 후배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애타게 호소하며 대통령을 찾고 있는 후배들을, 교사들을, 학부모들을 외면하는 것은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발생 후 눈물을 흘리며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민심에 공감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과연 세월호 이후 대한민국의 교육은, 우리 학교와 아이들을 바라보는 대통령의 시각은 얼마나 바뀌었는가? 세월호 이후 달라진 그 대한민국을 용산에서 당신의 제자들이 요구하고 있다. 이제, 하루 빨리 박근혜 대통령이 답해야 한다.
#화상 경마장 #박근혜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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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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