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 받은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 국가정보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2차 청문회가 열렸던 2013년 8월 19일 증인으로 출석한 김상욱 전 국정원 직원이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가 김상욱씨를 직접 만난 것은 대선을 나흘 앞둔 지난 2012년 12월 15일이었다. 이날 여의도 인근에서 약 3시간 동안 그를 인터뷰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본명을 밝히지 않은 채 "조 선생이라고 불러 달라"라고 요청했다. '조 선생'의 눈동자는 인터뷰 내내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기자는 속으로 '23년간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요원답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국정원이 4대강 사업 등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 심리정보단을 심리정보국으로 확대 개편해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여왔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인터뷰 내용은
"국정원, MB치적 홍보위해 댓글공작 시작... 직원들 100 대1 뚫고 들어와 댓글단다 자조"라는 제목의 인터뷰 기사로 나갔다.
당시 인터뷰와 이후 만남, 전화통화 등을 통해 접한 김씨의 주장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인터넷 댓글공작은 대북심리전을 맡고 있는 국정원 3차장 산하의 '심리정보국 2단'에서 진행해왔다", "지난해 연말 심리정보단이 심리정보국으로 조직을 확대 개편됐고, 심리정보국 산하 '2단'은 안보1·2·3팀을 두고 인터넷 댓글 공작을 벌여왔다" 등의 주장이 그랬다. 그러니 주장의 신빙성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이후 검찰수사에서도 사실로 드러났다.
김씨가 국정원의 댓글 공작 의혹을 알게 된 것은 지난 2012년 5월께라고 한다. 그로부터 5개월 뒤인 10월께 민주통합당에 보고서를 올렸다. 하지만 처음에는 당에서조차 그의 보고서 내용을 의심했다. 국정원 내부에서 이루어진 일이라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기도 했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김부겸 전 의원을 거쳐 국회 정보위 소속인 유인태 의원에게 넘어갔고, 유 의원이 같은 해 10월 국정원 국정감사에서 "대북심리정보국 3개팀 76명이 (인터넷 댓글 달기) 작업을 한다는 제보가 있는데 사실이냐?"라고 물었다. 이에 원세훈 원장과 민병주 심리전단장(심리정보국장)은 "없다"라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2개월 뒤에 국정원 댓글공작 의혹이 터졌다.
이념 문제가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져 특히 김씨가 전해준 '원세훈 국정원'의 내부상황도 흥미로웠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 특히 원세훈 원장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종북세력 척결 등 이념문제를 들고 나왔다"라며 "이렇게 종북세력 척결이라는 미명 아래 야당 인사들을 상대로 흠집내기, 종북 이미지 덧씌우기 등을 벌였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원세훈 지시·강조말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김씨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종북과의 전쟁'을 벌인 것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라며 "(한국사회가) 이념적으로 좌파로 경도돼 있는 것도 아니고 국정원이 나서서 척결해야 할 것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종북의 개념이 모호하다"라며 "대공범위를 확대시키는 것은 건전한 공론의 장을 차단한다"라고 말했다.
또한 김씨는 "이명박 정부 초기 포항세력(영포라인)이 득세했는데 원세훈 원장이 오면서 전부 S라인(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 인맥)으로 바뀌었다"라며 "이렇게 특정 인사에 조직이 좌우되면 (조직원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이념문제'가 인사 불이익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 대공수사단장이 제주 4·3항쟁에는 '우익에서 주장하는 게 다 진실은 아니다'고, 5·18 민주화운동에는 '그 지역 사람들이 폭도는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가 감찰조사를 받았다. '대공수사단장의 의식이 왼쪽으로 흘러서야 되겠느냐?'라고 매도당했다. 그래서 본인이 사표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다. (2008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내부게시판에 본부의 하위직 직원이 '촛불집회가 옳다'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가 지부로 인사조치됐다. 또 한 팀장이 업무보고서를 쓴 직원에게 '그냥 지난 정권 10년이라고 쓰지 왜 좌파정권 10년이라고 썼냐?'라고 지적했다가 감찰에 고발돼 지방으로 인사조치됐다."이렇게 국정원의 인사난맥상이 생겨나면서 국정원 상하간 조직력이 급격하게 무너졌다는 것이 김씨의 분석이다. "그래서 국정원 내부 얘기가 얼마든지 밖으로 나올 수 있다"라고 했다. 어쩌면 '댓글공작' 의혹건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것도 국정원에 팽배한 내부 불만의 결과물인지도 모른다.
"국정원 지휘부, 정권안보와 국가안보 구별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