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노조 사무실이 있었던 곳이 건물 옥상에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이 있었다
민종덕
러닝셔츠에 빨간글씨, 이들은 국회로 향했다이들은 연락 가능한 사람들을 모았다. 김동환 목사, 삼동친목회 회원들,평화 시장 노동자 여러 명이 을지로 6가에 있는 경기여관에서 모였다. 여관방에 모여서 어떻게 싸워나갈 것인지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세웠다.
그 결과 러닝셔츠를 사가지고 왔다. 러닝셔츠에 요구조건 8개항을 빨간 글씨로 썼다. '8개항 약속을 이행하라!' '노조결성 방해마라!' '노조사무실 내놓아라!' 등의 구호를 큼지막하게 썼다. 요구조건을 쓴 셔츠를 각자 입고 그 위에 작업복을 걸쳤다. 그런 다음에 국회의사당 안에 들어가서 작업복을 전부 다 벗고 농성을 하기로 결정했다. 즉시 행동에 돌입했다. 러닝셔츠에 한창 글씨를 쓰고 각자 책임을 분담하고 있는데 김 목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들어왔다.
"여관 밖에 짭새(경찰)들이 왔나봅니다."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경찰이 찾아온 것이다.
"몇 놈이나 왔습니까?"이소선은 경찰이 왔다는 말을 듣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형사가 두 사람 왔나봅니다."두 명 정도면 자신 있었다. 아니 열 명이라도 물리쳐야 한다. 그런 각오가 아니면 어떻게 전태일의 뜻을 펼칠 수 있겠는가. 이소선은 전태일 친구들한테 형사들을 무조건 데리고 들어오라고 시켰다.
"어머니, 어쩌시려고 그럽니까?"친구들은 긴장된 눈빛으로 이소선에게 되물었다. 이소선은 생각해둔 것이 있었다.
"하여튼 들어오라고 해라."복도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이소선이 얼른 문을 열었다.
"어서들 오시오. 형사 양반들. 우리가 여기서 데모를 하니까 이리로 들어오시오."이소선은 반가운 손님들을 맞이하듯 태연하게 형사들의 손까지 맞잡았다.
"데모요?"형사들이 방문을 들어서려다 어리둥절해하며 눈이 휘둥그래졌다.
"들어와 봐요. 우리가 어떻게 하는가. 이렇게 러닝을 입고 국회의사당 안으로 쳐들어갈 거요. 당신들이 이리 들어와서 똑똑히 봐 두라구."머뭇거리던 형사들이 구호가 적힌 러닝셔츠까지 보여주자 신발을 홀랑 벗고 방안에 들어왔다.
"철아,저 새끼들 처박아라!"이소선은 형사들이 방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금세 표정을 사납게 바꿔 소리 쳤다.
"여기에 처박혀 꼼짝 말고 있어. 만약 움직이면 그때는 너희들 죽고 나도 죽는다!"형사 하나에 세 사람이 달라붙었다.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은 다음 이들은 계획한 대로 빠르게 움직였다. 형사를 붙들고 있는 사람들과 이소선만 남고 나머지 사람들은 러닝셔츠를 입고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국회의사당에 들어가려던 사람들은 정문에서 경비원들한테 그만 붙들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구호를 외치면서 몸싸움을 벌인 끝에 모두들 경찰에 연행됐다. 이때 김태원은 국회의사당에서 빠져 나와 중앙청까지 가서 그 앞에서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잡혔다. 김태원은 연행된 뒤 정보부에 끌려가서 의자에 묶인 채 몽둥이로 가슴팍을 얻어맞았다. 나중에는 그일 때문에 피를 토하고 결핵까지 앓게 되었다.
국회의사당 사건은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태일의 친구 누구누구가 노동조합결성 보장 등 8개항의 약속 불이행에 항의해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려다 연행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투쟁을 한 끝에야 비로소 바로 다음날 노조사무실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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