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잊지 못할 대한민국 감성여행지> 표지
원앤원스타일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지칙위진애 애칙위진간 간칙축지이비도축야,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 정조대왕 때의 문장가 저암 유한준(兪漢雋, 1732~1811)이 당대의 서화 수집가 석농 김광국(金光國, 1727~1297)의 서화화첩 <석농화원(石農畵苑)>에 쓴 발문에 나오는 글귀다.
이 글을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의 머리말로 일부 응용하여 인용함으로 유명해졌다. 유 교수는 "아는 만큼 보인다"(知則爲眞看, 알아야 참으로 보게 된다)는 말로 사용하여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알고 봐야 문화재를 제대로 불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인생에 잊지 못할 대한민국 감성여행지>(남민 지음, 원앤원스타일 펴냄)를 읽으며 떠나지 않은 생각이 바로 이 문장,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문화재만 그런 게 아니고 여행지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추천하는 대한민국 여행지이 책은 40곳의 국내 여행지를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그중 내가 가본 곳이 25곳이나 된다. 나도 꽤 여행을 한 셈이다. 책에 소개된 여행지를 반 이상 가봤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그건 여행이 아니었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스치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저자 남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눈으로만 보고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는 게 아니라, 천천히 감상하며 그에 얽힌 이야기들을 투영하면서 그 의미를 새기다 보면 더욱 감회가 새로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명소마다 어떤 기념비적인 일이나 기뻤던 일, 혹은 딱한 사연을 품었기에 지금 그 자리에 어떤 형식으로든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중략) 겉으로만 스쳐볼 것이 아니라 품고 있는 이야기도 들어보는 감성여행을 추천합니다."(본문 483쪽) 저자는 계속해 "전국은 나의 정원이다"라면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경쟁력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행지에 얽힌 역사와 전설, 애환 등을 상세히 찾아 기록해 줌으로 우리의 여행을 '스치는 여행'이 아니라 '알고 느끼는 감성여행'으로 만들어준다.
40곳 중 먼저, 가족과 함께 떠나는 테마여행지로, 가족 간의 사랑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영월의 장릉(단종의 무덤), 골육상쟁이 얼마나 큰 비극을 낳는지 되새겨 보라고 말한다. 또 세계문화유산인 순천만, 대자연의 파노라마를 즐기라고 조언한다. 이어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청풍호 경치 감상은 물론 한옥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권한다.
둘째로, 자신을 돌아보는 감성 여행지로는, 중부충청권의 진천의 농다리, 조상들의 무궁무진한 과학기술을 엿보라고 한다. 또 호남권의 땅끝 마을, 거센 환경 속에 꽃피운 희망의 문화를 체험하라고 한다. 이어 영남권의 합천 황매산, 산의 좋은 기운을 받고 테마가 있는 길을 걸어보라고 권한다.
셋째로, 여름휴가로 적당한 여행지로는, 부안 채석강, 서해의 시원한 바람을 맞고 해안절벽에서의 석양에 물들어 보라고 한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찬란했던 백제의 문화유산을 감상하며 동탁은잔이 전하는 상상의 나라로 여행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남해 독일마을, 독일풍의 마을을 즐기며 이색적 감성에 빠져보라고 한다.
여행, 아는 만큼 보인다
▲전주 한옥마을 안에 있는 전동성당, 로마네스크양식의 천주교 최초 순교성지다.
김학현
저자는 "어떤 명소를 여행하고 무엇인가 감흥을 느끼는 것"이 감성여행이라면서 "사연을 들어보면 겉모습이 갖는 몇 배 이상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나의 여행 행태를 보면, 감성여행과는 거리가 멀지 않나 생각이 든다. 알고 간 여행이라기보다 무턱대로 가는 여행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정작 볼 것도 제대로 못 보고 올 수밖에 없었다. 물론 눈으로 스치기는 한다. 그러나 그 장소나 건물·자연·지형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전혀 모른 채 여행을 끝내기 일쑤였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이렇다.
전주 한옥마을을 세 번씩이나 여행했다. 2007년 가을, 2012년 겨울, 그리고 올해 5월. 그러나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경기전(뭐하는 곳인지 모름), 전동성당(기와집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 생각함), 한옥들이 참 많다는 것, 지팡이 아이스크림, 젊은이들이 줄을 서 사먹던 팥빙수, 특산품 모주를 파는 가게, 엄청나게 많은 카페들…. 그냥 그랬다. 그리고 중요지점이라고 나름 생각하는 곳에서 사진을 몇 장 찍고 전주비빔밥을 먹고 돌아왔다.
그러나 전주 한옥마을은 1100년의 고도다. 황산대첩을 통해 왜구를 이기고 개선장군이 된 고구려의 명장 이성계가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본관인 이곳 오목대(이성계의 고조부 목조가 살던 곳)에서 승전연회를 베풀었다. 경기전에는 그의 어진(초상화)이 모셔져 있다. 그러니까 전주 한옥마을은 조선의 뿌리가 되는 곳이다. 뿐만 아니다. 견훤의 후백제 발원지이기도 하다.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의 천주교 최초 순교성지다.
가까워서 근래에만도 몇 번 갔던 공주의 공산성은 그저 심심하면 들러 조깅을 하는 것으로 만족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책을 통해 1500년의 백제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곳이란 걸 알았다. 서기 475년 백제 22대 문주왕이 천도한 이래 다섯 왕을 지켜준 도성이다.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이 사비로 천도할 때까지 64년간이었다. 알고 보는 공산성이 더 위대해 보인다.
부여 궁남지는 더 기가 막힌다. 나는 부여에서 약 7년을 살았다. 가끔 궁남지에 가면 질경이를 도려오거나, 이맘때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 연못이 아름답다고 느낄 정도였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가 사비성 궁궐 남쪽 연못인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것도 몰랐다. 백제 무왕(서동) 35년 자신이 뛰놀던 이곳에 인공 연못을 축조했으니 그게 바로 궁남지다.
이제, 이 남자처럼 여행하자
▲공주 공산성, 서기 475년 백제 22대 문주왕이 천도한 이래 다섯 왕을 지켜준 도성이다.
김학현
위에서 말한 곳들 외에도 ▲ 광양 매화마을 ▲ 구례 산수유마을 ▲ 해남 땅끝 마을 ▲ 부안의 채석강·적벽강 ▲ 단양과 제천의 사인암·도담삼봉·옥순봉·구담봉 ▲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 영주 소수서원·소수박물관·선비촌 ▲ 남원 광한루원 ▲ 여수 오동도 ▲ 공주 송산리고분·무령왕릉·공주국립박물관 ▲ 담양 소쇄원·죽녹원 ▲ 영월 청령포·관풍헌·장릉 ▲ 문경새재 ▲ 진천 농다리 ▲ 고창 선운사 ▲ 합천 황매산 등은 이미 다녀온 곳들이다.
그러나 이들 여행지를 소개하는 글을 읽다보면 언제 갔다 왔는지 의심이 든다. 어찌 책에서 말하는 알음을 다 말할 수 있을까. 몰라서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여행지가 너무 많다. 여행하고도 모르는 여행지, 여행하고도 겉만 떠오르는 여행지, 이제는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무턱대고 떠나던 여행 습관을 바꿔야겠다.
책에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여행지들도 많다. ▲ 영주 무섬마을 ▲ 남해 독일마을 ▲ 예천 회룡포 ▲ 순천만 ▲ 봉화 만산고택·이몽룡생가·계서당 ▲ 영월 낙화암 ▲ 고창 청보리밭 ▲ 논산 황산벌·백제군사박물관 ▲ 충주 하늘재 ▲ 예천 삼강주막 ▲ 괴산 산막이옛길 ▲ 제천 베론성지 ▲ 합천 영상테마파크 등이다. 앞으로 이들 여행지를 갈 때는 꼭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고 가야겠다고 다짐한다.
"아이 못 낳은 조강지처는 남편에게 버림받았고 젊고 예쁜 첩은 사랑을 독차지했다. 처는 삐쳐서 등 돌려 앉고 첩은 임신한 배로 남편을 향해 애교스러운 눈빛을 던진다."(본문 125쪽)3개의 봉우리가 남한강 상류에 솟아 있는 도담삼봉을 보고 지은 시다. 풍류를 즐기던 선현들이 이렇게 읊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묵객들은 그렇게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가장 큰 바위가 남편봉이다. 바람기 있는 남편봉 옆 상류쪽으로 작은 기암이 처봉이고, 하류쪽 바위가 첩봉이란다.
지은이 남민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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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일상이 된 저자는 지금도 어김없이 힐링명소를 찾아 떠난다. '힐링명소'라고 해서 굳이 거창할 것도 없다. 보고 듣고 느껴서 몸과 마음이 평온해지는 곳이면 모두 힐링명소가 된다. 부동산학을 전공하고 헤럴드경제 신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고 있다.
여행을 통해 역사·인문·지리·인물·민속·문화를 이야기로 융합시킨그는 그저 눈으로만 보는 여행이 아닌, 그곳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 의미를 되새긴다. '욕심은 무모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그에게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길 위에서 쓰는 '대한민국 완전정복'이다.
저서로 <정감록이 예언한 십승지마을을 찾아 떠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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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경험한 도담삼봉은 그저 주차장 옆에 서있는 동상 때문에 정도전과 관계가 있을 거라는 야트막한 생각과 맑지 않은 물 가운데 오똑 서 있는 봉우리 세 개 정도였다. 감상 시간은 3분을 채 넘기지 않았다. 괜히 죄스러워진다. 퇴계 이황 선생께, 정도전 선생께, 수많은 시인 묵객님들께.
올 여름에 당장 이 남자(남민)처럼 여행을 해야겠다. 더위는 물론 정치 돌아가는 꼬락서니도, 세상 돌아가는 꼴도, 세월호, 유병언…, 뭐 하나 시원한 구석 없는 세상, 이제 떠나보자.
카메라 하나 들고 무턱대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적어도 여행지를 알려 줄만한 자료들을 읽은 후에 떠나보자. 이 책이 큰 도움이 되리라.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보이는 만큼 느끼는 법, 그렇게 감성여행을 떠나보자.
내 인생에 잊지 못할 대한민국 감성여행지 - 테마있는 명소, 천천히 걷는 힐링여행
남민 지음,
원앤원스타일,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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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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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몇 장과 전주비빔밥'... 이젠 이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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