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시집이 맺어준 인연들

박용래 시인 유족 앞에서 시인의 노래를 부르다

등록 2014.08.08 12:08수정 2014.08.0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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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간밤에 잠을 설쳤지만 발걸음은 둥둥이다. 지난 7일, 내게 있어 귀한 분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강아지풀' 노래를 따라 불러 본다. 갑자기 울컥해진다. 눈물이 흐른다.


며칠 전 오후에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놀랍게도 박용래 시인의 큰따님께서 유족을 대표해서 직접 전화를 주셨다. 용건인즉슨 논산문화원에서 박용래 시인 시디 제작을 하는데 내 노래를 몇 곡 넣고 싶다는 요지였다. 내 노래가 선친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면서 저작권 동의를 얻고 싶어 연락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곡을 만들 때부터 미리 허락을 얻지 못해 죄송스러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아버지 시를 노래로 잘 표현해주어 가족들이 좋아했다면서 오히려 무척 고맙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에 대전으로 향하다

또 새로 건립한 대전문학관 박용래 시인 코너에도 내 노래를 배경곡으로 해놓았다고 전해주셨다. 나는 전화상으로나마 뵙게 되어 매우 반갑다는 말씀을 드렸다. 언젠가는 유족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드리고 싶다고도 전했다.

그동안 내가 박용래 시인의 시에 붙인 곡들을 대학시절부터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셨다. 하지만 그 전화 한 통은 나를 유독 들뜨게 했다. 무엇보다 시인의 유족들이 내 노래를 좋아해준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동안 노래를 불러온 세월에 대해 만감이 교차했다. 아마도 박용래 시인의 영혼이 이런 인연을 잇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오래된 일기를 다시 펴봤다.

시인의 고향인 강경 나루터에 가서 노래를 또 부르고 싶다. 저물녘 섬진강변에서 보던 시집 <먼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 두만강에 내리던 눈을 생각하며 하룻내 울었다던 황새목의 박시인을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려 한다. 지금 황혼이다. 누군가 그리워서 그리워서...(2005년 11월 8일)


시집 <먼 바다>는 1985년 3월 15일. 마지막 휴가때 목포에서 처음 만났다. 그후 선생의 시에 빠져들어 대학 졸업논문의 주제로도 정했다. '먼 바다', '강아지풀', '자화상' 은 87년 10월에서 11월, '낮달'은 88년에 곡을 붙였고.'앵두, 살구꽃 피면'은 2005년 8월에 작곡했다. 가락이 시에 누가 되지나 않았는지 새삼 조심스러워진다.(2007년 10월 31일)

비록 먼발치에서라도 한 번도 뵌 적이 없다. 하지만 박용래 시인의 '강아지풀'에 눈물 흘리며 곡을 붙이고, 박용래 시인을 어설픈 졸업논문 주제로 택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내게 늘 시의 고향 같은 분이었다.

강아지풀 시로 노래를 짓던 그 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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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로 드린 부채 강아지풀 시의 일부를 쓴 부채 ⓒ 신남영


강아지풀
                                                박용래

남은 아지랑이가 홀홀 타오르는
어느 역 구내 모퉁이
어메는 노오란 아베도 노란 화물에 실려 온
나도사 오요요 강아지풀.
목마른 침묵은 싫어
삐걱 삐걱 여닫는 바람 소리 싫어
반딧불 뿌리는 동네로 다시 이사 간다.
다 두고 이슬 단지만 들고 간다.
땅 밑에서 옛 상여소리 들리어라.
녹물이 든 오요요 강아지풀.

이 시를 노래로 만들던 저녁이 생각났다. 가락은 순식간에 흘러나왔다. 세속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시에만 순절했던 시인의 삶이 스쳐갔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시집의 부록으로 실린 <박용래 약전>에서 이문구는 박시인이 두만강에 내리는 눈송이를 생각하며 종일 쉬지 않고 울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를 향해 '이슬조차도 눈물겹도록 고마와한', '앞에도 없었고 뒤에도 오지 않을 하나뿐인 정한의 시인'이라는 만가를 지었다. '강아지풀'은 그렇게 태어난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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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톨게이트 대전 톨게이트를 지나며 ⓒ 신남영


톨게이트에 도착할 무렵 선생의 큰따님으로부터 문자 한 통이 왔다. 비가 많이 와서 오시기 어렵지 않냐는 걱정이 담긴 문자였다. 지난번에 동의서를 보내실 때도 꽃봉투에 예쁜 카드까지 보내주셨는데, 배려해주는 그 마음에 또 뭉클해졌다.

유족들 앞에서 시인의 노래를 부르다

드디어 대전문학관에 도착해서 큰따님 가족과 처음으로 대면을 하였다. 관장님이신 박헌오 시인께서도 반갑게 맞아주셨다. 차 한 잔을 마신 후 박관장님께서 친절하게 명사시화전 안내를 해주셨다. 2010년에 완공된 대전문학관은 대전문학의 뿌리에서부터 박용래 시인을 비롯하여 정훈, 한성기 등 현대문학의 대표 문인들을 안내하고 있으며 시민과의 소통과 참여를 중시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공연은 문학관측 배려로 2층 다목적실에서 하기로 했다. 점심은 개성식 만두로 선생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선생의 시를 직접 써넣은 부채를 선물로 드린 후 드디어 떨리는 마음으로 무대에 섰다.

선생의 시에 곡을 붙일 때부터 언젠가는 그분의 가족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게 될 날이 있을까 막연하게 생각해왔다. 이날이 바로 그날이 됐다. 박용래 시인 앞에 서는 마음으로 공연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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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래 시인의 큰따님 가족과 함께 대전문학관 박용래 시인 코너에서 큰따님 가족과 함께 ⓒ 박현오


'앵두, 살구꽃 피면'을 첫 곡으로 노래를 시작했다. 큰따님의 눈시울이 벌써 붉어지고 있었다. 나도 울컥했지만 애써 참았다. 이어서 '낮달'과 '강아지풀'을 소개하는데 또 눈물이 나려 했다. 공연을 가끔 다니지만 이렇게 뜻 깊은 공연은 없을 것이다. '자화상'까지 마치고 마지막 곡은 소리의 진폭이 가장 큰 '먼 바다'였다. 오랜만에 불러보는 '먼 바다', 나의 맞은 편에는 둘째 따님이 그리셨다는 그림 속의 '먼 바다'가 나를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다

2시간 달려 와서 2시간 걸려 또 내려가는 길, 비가 다시 왔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다 보니 이런 날이 온 것이다. 내 노래를 가족들에게 처음 소개해줬다는 막내 따님께서, 춘천에 있는 바람에 거리가 너무 멀어 오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전해줬다. 떠나오기 전, 큰따님께 동생 되는 따님들 연락처를 얻어 도착하여 전화로 문자로 인사드렸다.

걱정하실까봐 집에 도착하자마자 큰따님 박노아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답신 중에 한 구절.

"하늘 위에 선율이 빗방울이 되어 떨어지듯 했네요......"

책상에 앉아 큰따님께서 주신 <눌더러 물어볼까 나는 슬프냐>를 펴본다.

그럴 수만 있다면
투명한 유리창에
당신의 상처를 볼 수 있다면
깊은 강 소용돌이치는
당신의 아픔을
오월의 햇살처럼 어루만지고 싶다
아지랑이 피는 봄 날
소금 꽃 피는
당신의 가슴을 보고 싶다
(후략)

아무려면 선생에 대한 내 사랑이 가족들의 사랑을 어찌 따르겠는가. 시인을 아버지로 둔, 천상 시인의 따님이시다. 셋째 따님께서 문자를 보내주셨다.

"아버님이 더욱 그리운 날입니다.
청아한 울림! 좋은 인연!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선생의 '아픔의 먼 바다'는 그렇게 귀한 인연을 만들어 주셨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박용래 #신남영 #박노아 #대전문학관 #박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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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리뷰어. 2013년 계간 <문학들>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명왕성 소녀>(2023), <물 위의 현>(2015), 캘리그래피에세이 <캘리그래피 논어>(2018), <캘리그래피 노자와 장자>, <사랑으로 왔으니 사랑으로 흘러가라>(2016)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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