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 구멍 뚫린 의자에 앉았던 이유

[서평] 베드로에서 프란치스코까지... <교황연대기>

등록 2014.08.12 16:25수정 2014.08.1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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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조성 성물 ⓒ 임윤수


교황 프란치스코의 방한이 며칠 후로 다가왔습니다. 교황은 그리스어 'Papa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빠'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교황은 지상에 존재하는 그리스도 중에서 하느님의 계시를 가장 확실하게 통역할 수 있는 대리자입니다. 거의 2천 년간 그 존재를 이어가고 있는 교황직은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는 완전한 군주제이기도 합니다.

<교황연대기>에 정리돼 있는 '교황과 대립교황 연대표'에 따르면 이번에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305번째 교황이 됩니다.


여자 교황 조안 때문에 생긴 구멍 뚫린 의자

역대의 교황 305명 전부가 당연히 남자일 것 같지만 딱 1명, 조안(855∼857)이라고 하는 여자 교황도 있었습니다. 남장을 하고 교황이 된 조안은 동료 수사에 의해 임신을 합니다. 정확한 출산일을 알지 못하던 그는 말을 타고 행차를 하던 중 해산을 합니다. 졸지에 여자라는 게 들통 난 조안은 로마법에 따라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습니다.

여자인 조안이 남장으로 속여서 교황이 된 후 새로 교황에 선출되는 사람은 구멍이 뚫린 의자에 앉아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직접 손으로 새로 선출된 교황의 고환을 더듬어 확인하는 방법으로 남자임을 증명해야 하는 치욕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까지도 그 의자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놓여 있고, 교황 선출 시에 사용된다. 그가 자격을 갖춘 사람인지를 증명하기 위하여 하위직 성직자 중 한 사람이 고환을 만져 보고 그가 남자임을 증명한다. 그가 남자임이 확인되면 고환을 만진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친다. '그에게 고환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성직자들이 '주여, 찬미 받으소서'라고 화답한다. 그리고 그들은 교황 선출이라는 성스러운 일을 기쁜 마음으로 진행한다." (<교황연대기> 142쪽 중에서)

역사는 시대별로도 정리될 수 있고, 분야별로도 정리될 수 있습니다. 어떤 시기에 있었던 무엇을 골격으로,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시대별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전쟁사나 문화사, 혹은 정치사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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쇨뫼성지 소너무 숲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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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에 방문하는 당진 솔뫼성지 ⓒ 임윤수


교황들만을 주제로 한 교황직에 대한 역사서 <교황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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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연대기>(존 줄리어스 노리치 씀 / 남길영·임지연·유혜인 옮김 / 바다출판사/2014.08 / 3만8000원) ⓒ 바다출판사

<교황연대기>는 오롯이 교황직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베드로에서 프란치스코까지 교황을 둘러싸고 2천 년에 걸쳐 펼쳐졌던 이야기를 주제로 한 책입니다.


갈릴리의 한 어부였던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이 직접 뽑은 12사도에 들어가 첫 제자가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부터 19절에는 카이시리아 필리피 지방에서 예수가 시몬에게 이른 말씀이 있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Thou art Peter, and on this rock I will build my church... I will give unto thee the keys of the Kingdom of Heaven)"는 이 문구는 성 베드로 대성당의 천장에도 라틴어로 새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 몇 말씀이 모든 가톨릭 교회 조직의 근간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바오로는 순교하여 바티칸에 있는 공동묘지에 묻히고, 서기 320년경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바티칸 언덕에 베드로를 위한 대성전을 건립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책에서 정리하고 있는 역대 교황들 모두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순수하고 숭고하고 존경할 만한 지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닙니다. 누구에게는 출세를 위한 수단이었고, 누구에게는 치부를 위한 기회였습니다. 친족을 대거 등용 시키고, 폭력적이고, 잔인하고, 독선적인 교황도 없지 않았습니다.

교황으로 선출되는 과정 또한 요즘 우리가 뉴스를 통해서 전해 듣고 있는 것처럼 성스럽기만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민주적이거나 합리적이지도 않았습니다. 대물림을 하듯이 세습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혼란이 벌어졌음은 자명한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분노한 롤란도의 지지자들은 강제로 제의를 벗겨내려 달려들었지만, 옥타비아노는 지악스럽게 얼른 몸을 빼내 제의에 달린 술을 목에 묶고는 황급히 나아가서 냉큼 교황 의자를 차지하고 앉아버렸다. 그는 스스로를 빅토리오 4세(Victorius Ⅳ) 교황이라 선포하고, 그 여세를 몰아 곧장 베드로 대성당으로 진격했다." (<교황연대기> 309쪽 중에서)

1159년 9월 5일 하드리아노 4세가 대성당에서 영면에 들어간 다음날, 30여 명의 추기경들이 대성당 중당 제대 뒤쪽에서 콘클라베를 가졌는데, 선출에서 떨어진 옥타비아가 제의를 낚아채 날치기를 하듯이 교황에 즉위하는 상황입니다.

옥타비아는 날치기하듯이 즉위하지만 교황 선출 시에 벌여졌던 일련의 일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이어지는 사람들의 조소와 비난을 이기지 못하고 얼마가지 못해 야음을 틈타 로마에서 달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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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 임윤수


교황은 은행 관리자나 치과의사 같은 것 아니야

교황은 종신직입니다. 따라서 역사상 사임을 한 교황은 첼레스티노 5세 교황(1294년 사임)과 그레고리오 12세 교황(1415년 사임) 그리고 직전 교황이었던 베네딕토 16세 교황(2013년 사임)을 포함해 세 분뿐이라고 합니다.

앞의 두 분 교황과는 달리 자발적으로 직무를 포기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에 대해 저자는 후기를 통해 '교황이라는 자리는 은행의 관리자나 치과의사 같은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그의 경솔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서는, 후임 교황들이 따라 하기 참 곤란한 선례가 될 것 같으니 '교황께서 정기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만큼은 자제해 주셨으면 하고 바란다'는 말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교황들의 발자취를 따라온 저자는 '적지 않은 이가 영적인 행복보다는 세속적인 권력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는 말로 교황들 역시 인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슬그머니 강조합니다. 위에서 논란이 됐던 조안 역시 실존 인물이 아닐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책은 베드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이어진 교황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2천여 년에 걸쳐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진 교황 연대기를 잘 간추려 정리하고 있습니다. <교황연대기>를 일독하면 역사에 드리운 교황직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교황연대기>(존 줄리어스 노리치 씀 / 남길영·임지연·유혜인 옮김 / 바다출판사/2014.08 / 3만8000원)

교황 연대기

존 줄리어스 노리치 지음, 남길영 외 옮김,
바다출판사, 2014


#교황연대기 #남길영 #임지연 #유혜인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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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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