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때보다 줄어든 증권맨... 구조조정 한파 세다

은행·보험사로 퍼진 구조조정... '숙련된 인력 축소는 근시안적 대처' 지적도

등록 2014.08.26 09:29수정 2014.08.26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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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엔지(ING)생명 직원 A(34)씨는 지난달 회사로부터 희망퇴직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러자 사측은 하루에 한 번 꼴로 면담을 하기 시작했고 A씨는 1주일간 총 8번의 면담을 했다. 처음에는 "이번 희망퇴직 패키지가 좋은 수준이다"라며 회유했다.

그러나 이내 "우리는 너와 일할 마음이 없다, 남으면 지방 등 원고지나 대기 발령할 것이다, 인사고과를 나쁘게 하겠다"고 강압했다. 심지어 인사 담당자는 A씨에게 ING생명에 남아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건지 10년 치 계획을 써오라고 요구했다. 결국 A씨는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실신했다.

최근 금융사들에 '희망'퇴직이라는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금융권 퇴직자는 약 4800명에 달한다. 이름만 보면 희망이란 단어에 직원들의 의사를 존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지만 과연 그럴까.

25일까지 진행된 금융회사들의 구조조정 실상을 보면 '희망'이란 단어와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구조조정 바람은 보험업계에서 거셌다. 올해 초 국내 최대 보험사인 삼성, 한화, 교보생명도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삼성생명은 희망퇴직, 자회사 이동 등으로 1000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력을 감축했고, 한화생명도 전체 직원의 6.3% 수준인 300명을 줄였다. 교보생명은 지난 6월 15년차 이상 직원 중 480명을 희망퇴직 시켰다. 이번 달 신한생명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전 직원 중 3% 정도의 희망퇴직자 신청을 받았다.

게다가 지난달 직원 150명을 희망퇴직 시킨 ING생명에서는 직원이 사측으로부터 희망퇴직을 종용받다가 실신하는 사고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이 회사 직원 B씨는 사측으로부터 희망퇴직을 종용받다 실신하기에 이르렀다. B씨는 당시 임신 6주차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 특히 ING생명 노조가 이 두 사람에 대한 희망퇴직 면담 중지 요청을 했지만 사측은 면담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 졌다.


이명호 ING생명 노조위원장은 "희망에 의해서 나가는 희망퇴직은 없다"며 "금융사들은 희망을 억지로 강요해 정리해고를 하는 것일 뿐 절대 자발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희망퇴직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 등 법으로 정한 어떠한 요건도 없이 사용자가 쓸 수 있는 과도한 권리"라며 "법으로 희망퇴직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일자리를 만들라고 하는데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약 8000명이 희망퇴직으로 짐을 쌌다"며 "이들이 나가서 다른 금융사라도 가고 싶지만 채용시장은 얼어붙었고, 결국 치킨집 등 자영업을 하지만 내수악화로 대부분 망하니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비용절감 위해 묻지마식 구조조정... "정작 밥값 못하는 1순위는 행장"

다른 금융업에 비해 시장상황과 경기변동에도 비교적 고용안정을 유지해온 은행업도 구조조정 한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특히 외국계 은행들에서 점포폐쇄와 희망퇴직이 급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6월 씨티은행은 650명의 희망퇴직자를 확정하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이는 전체 직원 4240명의 15%에 해당되는 수치다. 또 190개 지점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56개 지점을 폐쇄했다. 또 다른 외국계 은행인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 1월 초에 걸쳐 200여 명을 특별퇴직 명목으로 내보냈다. 또한 지점 50개를 통폐합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들 외국계 은행들이 영업실적이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단기적으로 비용절감을 위해 구조조정을 서둘렀다는 것이다.

실제로 씨티은행과 SC은행의 경우 2013년 순이자마진(NIM)은 각각 2.79%와 2.22%로 7대 시중은행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또한 2012년부터 2013년까지 7대 시중은행 중 순이자마진이 증가한 곳도 이들 두 은행 뿐이다.

박재열 씨티은행 노조 부위원장은 "사측은 점포수익이나 실적유무에 관계없이 무조건 비용절감이 목적이기 때문에 묻지마식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라며 "가장 밥값을 못하는 희망퇴직 1순위는 연봉을 몇 십억씩 받고 책임은 지지 않는 행장과 임원들"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번 사측에서 희망퇴직 신청 선착순 200명에게 해외여행 상품권을 준다고 했다"며"  직원들을 내보내는 일을 이렇게 취급하는 것에 대해 어이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금융위기 때보다 더 줄어든 증권맨들

사정이 어렵기는 증권사도 마찬가지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여의도를 떠난 증권맨은 2000명에 육박한다. 지난 1월 동양증권은 전 직원의 4분의 1 규모인 650명, 부국증권은 전 직원의 3분의 1 남짓인 45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또한 삼성증권(300여 명), 하나대투증권(145명)도 희망퇴직을 통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실시한 대신증권도 350여 명 가까이 짐을 쌌다.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의 합병을 앞두고 412명과 196명이 회사를 떠났다. HMC투자증권은 252명 규모의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증권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국내 증권사 임직원 수는 3만9146명이다. 이후 2000여 명이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3만7000여 명 수준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3만9000여 명)보다도 적은 규모다.

이러한 금융권 구조조정은 하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업계는 저성장 기조와 저금리 정책 등으로 수익 창출이 힘들어지자 고육지책으로 당장의 비용절감을 위해 너도나도 구조조정을 꺼내들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지금 금융사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못해 수익성이 악화된 것인데 이를 자꾸 비용 쪽으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며 "금융사들이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나 노력없이 무리한 구조조정만을 밀어붙이는 것은 미래에 위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서비스업 분야의 핵심인 금융산업에 있어서 숙련된 금융 인력을 구조조정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대처라는 것이다. 그는 "국내 금융사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력감축이나 점포 축소 같은 단순한 비용절감보다는 오히려 숙련된 금융인력에 대한 투자와 점포 영업력 극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ING생명 #씨티은행 #스탠다드차타드(SC)은행 #삼성증권 #삼성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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