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위 출국사무소에서 돈을 찔러준 사연

[말라위 여행기 ⑪] 아프리카, 감성적 접근이 아닌 실상을 봐야

등록 2014.09.04 17:59수정 2014.09.07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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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 중 한명이 배멀미를 해 호수 가운데 있는 보아줄루 섬에 잠깐 내렸다. 호수에는 고기만 잡아 생계를 영위하는 어부도 있다고 한다. 저멀리 고깃배가 보인다. ⓒ 오문수


[기사 수정 : 6일 오후 4시 49분]

빅토리아 폭포는 잠비아에 있다.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잠비아에 있는 빅토리아 폭포를 구경하고 돌아오려면 국경도시인 음진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2박 3일 동안 2400㎞에 달하는 장거리 여행을 마치고 음진치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국절차를 마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3일 전, 일행이 말라위를 떠나 잠비아로 입국할 때 두 나라 입·출국장에서 소정의 돈을 내고 비자를 발급받았다. 그런데 여행을 마치고 말라위로 돌아올 때 말라위 입국장 공무원이 입국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유인 즉, 잠비아 수도 루사카까지 돌아가 말라위대사관에서 비자를 받고 말라위로 들어오란다.

여기까지 왔는데 650km를 돌아가라구요?

음진치에서 루사카는 650km나 떨어져 있다. 그 먼 곳까지 되돌아가 말라위대사관에서 입국비자를 받아오라고? 입국장 문 닫을 시간은 자꾸 다가오는데 화가 났다. 하지만 법이 그렇다는 데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은가? 화를 꾹 참고 담당 공무원에게 말을 했다.

"우리는 당신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당신들을 돕기 위해 왔다. 여기 여권을 보면 3일 전 이곳에서 출국절차를 밟았으니 당신들이 입국허가를 내주면 될 것을 기어이 루사카까지 되돌아가 말라위대사관에서 입국비자를 받고 와야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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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말라위 호수로 가는 도중에 보았던 도로모습 ⓒ 오문수


일행이 말라위에 있는 마젠게라 주민들에게 기부한 기증품과 봉사활동 내용까지 보여주며 사정하기도 하고 항의도 했다. 내 핸드폰에는 며칠 전 마젠게라 주민들에게 모기장과 루핑 등을 기증할 때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있었다. 거기서 루사카로 되돌아가 말라위대사관을 다녀온다면 적어도 이틀은 걸릴 것이고 경비는 또 얼마나 들 것인가.


한 관리가 루사카까지 가는 대신에 120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입국신고서를 창고에서 가지고 오는데 달랑 2장 밖에 없다. "복사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하니 복사기도 팩스도 없다. 두 명은 입국허가를 받았지만 임시허가증을 발급받은 두 명은 며칠 후 말라위 수도 릴롱궤에서 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제대로 된 입국허가서를 받았다. 

아무리 최빈국이라지만 입출국을 담당하는 사무실에 복사기 하나 없다. 어이가 없었다. 공무원 하나가 앉으라고 권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의자를 보니 찢어지고 솜이 나와 앉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행은 타협하기로 결정했다. 1인당 120달러면 4명이 480달러를 내야 한다. 하지만 루사카에 있는 말라위대사관에 갔다 오는 경비보다는 저렴했다. 숙소로 돌아와 현지에 오래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에게 화를 내며 이 일을 얘기하자 그들이 설명해줬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늘 일어나는 곳이 아프리카입니다. 경찰들이 도로에서 공개적으로 돈을 요구하는데 안 들어주면 훨씬 더 큰 손해가 납니다. 별별 트집을 다 잡아가지고 괴롭히거든요. 몇 년 전 한국 선교사가 말라위 사람들 주려고 컨테이너에 헌 옷을 가득 싣고 왔는데 세금을 물리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외국을 자주 다니는 한 교수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별하는 기준은 공무원들 수준에 달려있습니다"라며 "선진국 공무원은 상식이 통하거든요"라고까지 말했다.

"말라위는 그래도 양반입니다. 웃으며 손을 벌리면 먹을 걸 주거나 조금만 주면 되는데 탄자니아에서는 인상을 쓰고 별별 트집을 다 잡아요. 안주고 따지면 일정에 손해가 나기 때문에 욕하면서 줘버리고 현장을 벗어나는 게 상책입니다."

탄자니아를 여행했던 한 분의 말이다.

말라위 국가의 1/4을 차지하는 아름다운 말라위 호수

말라위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 아름답다고 소문난 말라위 호수를 방문했다. 말라위 호수는 동아프리카 지구대 최남단에 위치한 호수이다. 탄자니아에서는 냐사('호수'라는 뜻)라고 불리며 모잠비크에서는 니아사 호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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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호수의 물가 모습. 말라위 호수는 웬만한 바다만큼 넓지만 바다가 아니기만 때문에 해변이란 말을 사용하지 못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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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털구름을 바라보며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자원봉사자 뒷모습이 예쁘다. 우리 일행이 한국으로 귀국할 때가 되자 향수병에 걸려 한국의 아름다운 가을 하늘을 꿈꾸는 걸까? ⓒ 오문수


말라위, 모잠비크, 탄자니아에 걸쳐 위치해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3번째, 세계에서는 9번째로 큰 호수이다. 스코틀랜드의 탐험가이자 선교사인 리빙스턴에 의해 발견됐기 때문에 영미권에서는 리빙스턴 호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열대 지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호수의 남쪽 끝에서부터 쉬레 강이 흘러 잠베지 강으로 합류한다. 동쪽과 서쪽에는 리프트 밸리와 고평원이 있으며 해발고도는 900~1200m 정도이다. 하지만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고도가 낮아져 100m를 넘지 않는다.

수도 릴롱궤에서 말라위 호수까지는 200㎞나 떨어져 있다. 일행은 현지에서 고생하는 자원봉사자들을 태우고 호수를 향해 출발했다. 말라위는 현재 겨울이지만 도로 주변에 보이는 산들이 푸르다. 낮 기온이 영상 14℃ 정도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듬성듬성하지만 사하라 사막 인근 국가처럼 모래가 지표층을 덮고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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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호수인근에 있는 전통가옥 모습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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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롱궤에서 말라위호수로 가는 도중에 보았던 바오밥 나무 군락지. 마을주변에서 자라는 커다란 바오밥나무는 한국시골마을 주변에 자라는 느티나무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 오문수


푸른 하늘과 나무에 둘러싸인 원주민 마을을 지나는 동안 길가에는 수많은 바오밥 나무가 보인다. 그 중에는 밑둥 지름이 5m가 넘는 나무도 있었다. 말라위 사람들은 손재주가 좋다. 어디를 가도 도로 주변에 수공예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있다.

호수로 가는 길에 점심이 맛있다는 도자기 공장을 들렀다. 화가들은 각종 그릇과 컵에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그림과 문양을 선명하게 그리고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몽키베이에는 원숭이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숙소가 맘에 들지 않아 망고치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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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공장 직원들이 유약을 바르기전 그릇에 멋진 그림을 그려넣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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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위 상류층 집에 초대받아 식사를 하고있는 일행들 . 주인 니콜라스 카잠베(Nicholas Kazambe)는 대학에서 미디어를 전공해 통신사에 사진을 전송하는 프리랜서 작가다. 집안에 한국 S그룹이 만든 대형 TV가 5대나 있었다. 가정부가 쌀밥에 닭고기 튀김과 맛있는 반찬까지 곁들인 음식을 내왔다. 가난한 집에서는 일년에 두번정도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하니 융슝한 대접을 받은 셈이다. ⓒ 오문수


숙소인 보아줄루 리조트에는 겨울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다. 모래가 고운 해변에는 티크, 야자수, 맹그로브, 반얀트리 등이 있었지만 손님이 없어 썰렁한 분위기였다. 직원에게 "언제 관광객이 오는가?"를 묻자 "6월과 크리스마스 휴가철에는 유럽에서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우리 일행은 배를 대절해 해변에서 7㎞ 떨어진 보아줄루 섬을 일주했다. 섬에는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독수리들이 바오밥 나무에서 쉬고 있었다. 때마침 조그만 카누를 타고 낚시하는 원주민들을 만났다.

주로 잡히는 고기는 캩피쉬(catfish)와 타이거피쉬(tigerfish)가 주종이다. 큰 것은 1m에 달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광경에 흠뻑 취한 정호진 목사가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를 큰소리로 부르자 나도 동참했다. 하늘에 멋진 양떼구름이 흐르고 우리는 아프리카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다. 그때다. 최갑성 목사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2주일간 말라위를 여행해보니 아프리카가 사랑스럽습니까?"
"사람들도 착하고, 영화나 한국에서 만났던 흑인에게 느꼈던 감정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듭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해 본격적인 연구에 나서야 할 때다

아프리카에서는 7세기 이래 적어도 3천만 명 이상이 노예로 팔려갔다. 유럽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가담한 18세기부터는 1천 5백만 명의 아프리카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으로 팔려갔다. 한 때는 '절망의 대륙' '지구의 흉터' '병든 대륙'처럼 슬프고 우울한 이름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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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길가에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엉성한 가게를 만들어 놓고 장사를 한다. 이것마저 얻을 수 없는 사람은 난장에서 장사를 한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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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좀 찍겠다고 하자 기꺼이 응한 주민들 ⓒ 오문수


그러나 재스민 혁명을 거친 이래로 민주화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하자원이 발견되고 나서부터는 미래의 거대 시장으로 부상하며 기회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는 아프리카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축적되어 있다.

아프리카를 모른다는 것은 세계사의 절반밖에 알지 못한다는 말도 있다. 부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이들이 질곡에 빠지게 된 원인이었던 노예제도, 빈곤, 폭력, 질병 등을 분석해야 한다. 아프리카에 대한 올바른 연구가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여수넷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말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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