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원과 꼭 닮은 내 인생... 하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간병일기 33] 간병하며 생긴 빚... 한국에선 해결할 방법 없다

등록 2014.09.09 19:48수정 2014.09.3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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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근두근 내인생>의 한 장면
<두근두근 내인생>의 한 장면영화사 집

싱거운 병원 밥상에 진저리가 나서 탈출 계획을 세웠다.


"병원 뒤쪽에 알탕 하는 곳이 생겼대!"
"우리 거기 가서 밥 좀 먹자, 나 병원 밥 식욕이 떨어져 못 살겠다."

아내의 휠체어를 밀며 부슬거리는 비를 뚫고 도착했더니 유리문 한쪽에 이렇게 붙어 있었다.

'점심 특선-12시에서 오후 2시까지만'

"도대체 되는 게 없네..."
"그래도 명색이 오늘이 결혼 26주년 기념일인데..."
"에이, 영화나 보러 가자!"

결국 초밥 몇 개와 국수가 나오는 단골집에 갔다. 밥이 나올 때까지 서로 딴 곳을 보며 심심하게 버티던 중 문득 그러고 있는 아내와 내 모습이 우스웠다.


"우리 불륜 아닌 거 확실하고, 부부 맞네? 낄낄."
"그려, 조용히 딴 데 보며 할 말이 없는 걸 보니 맞네! 깔깔."
"그렇지? 큭큭."

대충 저녁을 때우고 영화를 보러 갔다. 그런데 아... 마음이 아프다. 기껏 지겨운 병원을 피해 왔는데, 화면 가득히 뿌려 놓는 영화 내용은 우리 부부가 지난 7년 동안 찍어 두었다가 필름을 재생시킨 것만 같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 강동원과 송혜교가 아빠와 엄마로, 희귀병 조로증을 앓고 있는 열여섯 아들과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는 가족의 이야기.


아내는 눈물을 무지 뺀다. 아픈 가족 하나로 온 식구가 허리 휘어지고, 그러다 모금 방송에 출연해 멍든 상처 드러내고, 살림비와 병원비로 전전긍긍하다가 들어온 후원금에 안도의 한숨 "후!" 내쉬고. 복사해둔 우리 과거 같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의사의 회복 불능 진단에 잘 참던 아들이 땡깡을 부리자 병원 계단에 숨어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우는 강동원. '쌍둥이다, 쌍둥이! 내 인생 녹화 재방송인가?'

<괴로운 모순>

배가 부른 사람은 음식의 단맛을 모른다 / 가진 것이 많으면 소유의 참맛을 모른다 / 건강이 넘치는 사람은 건강의 소중함을 모른다 / 그리하여 도무지 불행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 행복을 모르며 / 외로움에 몸서리친 적 없는 사람은 누가 / 다가와도 붙잡을 이유가 없다 / 그러니 / 내 힘의 끝에 서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 하늘을 향해 목 놓아 울어보랴

영화가 끝난 뒤 다시 나온 도로에는 그 사이 뚝 떨어진 싸늘한 밤 공기가 등짝으로, 가슴팍으로 파고든다. 오한이 든다. 이게 날씨 때문이냐, 꼬인 인생 때문이냐? 오들오들 병원으로 쌩~ 휠체어를 밀고 귀가했다. '암만, 살아서 미워하며 지지고 볶는 게 그것도 복이제, 하모!' 하면서.

병상의 아내 신용불량자된 지 벌써 5년째

 <두근두근 내인생>의 한 장면
<두근두근 내인생>의 한 장면영화사 집

그런데. 돌아온 병원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잘 견디는구나, 착하다!"는 하늘의 상장도, 형편 어려운데 보태라는 병원비 지원금 통지서도 아니었다. 법적 조치 착수 예고장과 유체 동산 압류건 현장방문 실사예정 통지문. 오는 15일까지 돈을 안 갚으면 집이고 차고 월급이고 다 압류하겠다는 통지서다. 그리고 수시로 찾아와서 괴롭히겠다는 예정(?) 통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욕이 따라 나온다.

'이런 우라질! 제발 좀 그렇게 해주라, 사람을 살리든 죽이든 뭐든지 하라구...'

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무슨 이유든 남의 돈을 쓰고 못 갚는 사람이 1차 책임이 있고 미안할 일인데 왜 내가 그걸 모를까? 아내가 아프면서 몇 달 검사만 받으며 여러 병원을 떠도는 동안 우린 일도 못하고 있는 돈은 다 까먹었다. 집이라도 팔아서 버텨야 할 지경.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아내의 신용카드 대출은 연체되고, 3개월이 넘어갔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리고 5년. 참 많이도 시달렸다. 처음엔 사람이 생사가 오가는 데 그까짓 신용불량자? 그런 걱정은 호사라고 생각했다. 계속 날아오는 통지문, 걸려오는 전화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괴로웠다.

"저... 죄송한데요. 우리가 도저히 갚을 상황이 못 되니 제발 법적 조치를 하셔서 가져갈 건 가져가시고, 경매를 하든지 뭐든지 해주세요. 시간을 더 끌어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그건 배짱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회복될 기약 없는 희귀 난치병에, 24시간 남편의 간병을 필요로 하는 대소변마비 중증장애 1급. 무슨 장담을 할 수 있을까? 갚겠다고 말하면 그건 다 거짓말이고 임시방편 변명일 뿐이지.

"뭐요? 이 인간들이!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이 뻔뻔한 사람들아!"
'나도 인생 그렇게 안 살고 싶다... 정말로.'

순간 화가 머리까지 올랐다. 죽을 동기를 못 잡아서 죽지도 못하고 있는데 잘됐다 싶은 심정이었다.

"야! 당신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강제 집행하라고 하는 게 잘못이야? '최후독촉장' 뭐 그런걸 계속 날리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왜 그러냐구! 강제집행도 하고 법적절차도 밟고, 형사고발을 하든지 다 하시라구. 아파 누워 있는 마누라 감방이라도 데려가는 길 있으면 좀 데려가 주면 더 고맙고..."

숱하게 쌓였던 말을 다 퍼부었다. 윗사람 바꾸어 달라고도 했다. 제발 나와서 조사하고 지켜보든지 하라고, 채무자가 부탁하는데도 이 직원들은 직접 나오지도 않고 말만 쏟아낸다. 근무태만이니 고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후 한참은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 채권 회사로 넘어가 다른 사람의 전화가 올 때까지는...

무엇보다 아픈 아내가 그 문제로 고민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자라는 아이들이 그런 문서를 우연히라도 보게 되거나 사람들이 와서 싸우는 걸 볼까 봐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법으로 가능한 처리를 앞서 해보려고 나섰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황당한 법이 어디 있나. 가능한 방법이 없다.

발병 초기에 진 병원비로 감당이 안 됐던 두 곳의 카드 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원금이 300만 원 채 안 되던 곳은 700만 원이 됐고, 600만 원 조금 넘었던 곳은 원리금이 1200만 원이 넘어 있었다.

법무사와 상담을 했다. 결과는? 몽땅 꽝. 가장 기대를 걸었던 개인 파산 신청. 원금 1000만 원 미만은 법적으로 신청대상도 안 된단다. 무슨 법이 "더 빚을 져야만 탕감 대상이 된다"고만 하는지. 개인회생 워크아웃은 또 다른 이유로 우리를 거절했다. 당사자가 직장이나 얼마라도 고정수입 증명이 안 되면 못한단다. 중증 난치병 환자가 무슨 수로 직장을 다니고 수입을 증명할까?

그런데 캄캄하던 벽이 열렸다. 국민행복기금! 여러 문제도 있고 보완해야 할 점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내게 문이 열린 곳이 그나마 그곳뿐이다. 상담을 해보니 대상이 된단다. 간신히 국민행복기금에 신청한 게 통과되어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장애가 가로막았다.

14년 된 승용차, 이젠 '안녕'해야 하나

 법적조치 착수 예고장
법적조치 착수 예고장김재식

채권사들이 국민행복기금에 채권을 팔아넘겨야 국민행복기금에서 진행을 할 수 있는데 넘겨주지 않은 (그들은 '합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채권사의 채무자들은 해당이 안 된다는 것. 아내가 빚진 두 곳 중, 적은 금액의 카드사는 국민행복기금에 채권을 넘겨줘서 해당이 됐는데, 큰 금액의 카드사는 끝내 위탁가입 합의를 하지 않아 제외됐단다.

이후 적은 금액 카드사의 빚은 10년 계약으로 월 8천원씩 나가는 걸로 정리가 됐다.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그런데 원금 600만 원, 이자까지 1200만 원이 넘어간 큰 금액의 카드사는 채권을 넘기지 않아 이번에 또 통지서를 날려 보낸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에서는 이 장애물을 해결할 길이 없다. 돈으로 갚는 길 하나 빼고 말이다. 아내의 이름으로 된 재산은 우리 처지를 안타깝게 여겨 아내의 응급 앰뷸런스 용도로 사용하라고 5년 전 어떤 분이 거의 거저 가격에 넘겨준 14년 된 승용차가 전부다.

'뭘 어쩌라고, 나더러 아내를 데리고 자살이라도 하라는 걸까? 심심풀이처럼 협박에 가까운 문서 휙휙 날리고, 전화 걸어 퉁명스럽게 다그치고...고문 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는 거라던데. 죽이든지 살리든지 하나를 했으면 좋겠다. 정말...'

<흔적 없는 여행>

슬픔이 깊어지면 여행을 떠난다 / 아무도 모르고 흔적도 없는 여행 / 사람들에 치이고 세상에 멍들어 / 더 이상 서서는 견딜 수 없는 서러움이 깊어지면 / 앉은 채로 선 채로 잠든 채로 떠나는 여행

여기 말고는 갈 곳이 없다 / 들어줄 이도 없고 모두가 자기 삶에 바빠 / 이럴 때면 갈 수밖에 없는 곳 / 천지사방 타고 올라갈 구명용 실 한 가닥도 없는 외로움 / 점점 더 깊은 그 바닥에 떨어지면 누가 기다릴까?

'너 그러다 이럴 줄 알았지 / 사람에 의지하다 사랑에 목매다가 / 실연당하고 지치고 마침내 올 줄 알았지' / 그런 소리나 들을라나?

이렇게 막막하도록 사람과 사람 사이 / 사람과 세상 사이 깊은 강물이 흐를까 / 오늘도 아무도 모르는 시간에 / 창밖의 빗줄기보다 더 흠뻑 젖게 만드는 / 내 속의 눈물, 내 속의 여행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 / 아무도 같이 못 가는 그 자리 그 시간으로 / 흔적 없는 여행을 떠난다

오늘이 있다는 것은 어제 죽지 않았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 지나간 것에 매달려 후회하지 말고 감사하라는 선물이다. 또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니(올지 안 올지 모르니) 미리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생명이 우리 것이 아니라는 말. 그러니 겸손히 맞이하며 살라는 뜻이 아닐까?
#간병일기 #그러니 그대 쓰러지지 말아 #희귀난치병 #투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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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 인생의 핸들이 내 손을 떠났다. 아내의 희귀난치병으로, 아하, 이게 가족이구나. 그저 주어지는 길을 따라간다. 그럼에도 내 꿈은 사람사는세상을 보고 싶은 것, 희망, 나눔, 정의, 뭐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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