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인생>의 한 장면
영화사 집
그런데. 돌아온 병원에서 나를 기다리는 건 "잘 견디는구나, 착하다!"는 하늘의 상장도, 형편 어려운데 보태라는 병원비 지원금 통지서도 아니었다. 법적 조치 착수 예고장과 유체 동산 압류건 현장방문 실사예정 통지문. 오는 15일까지 돈을 안 갚으면 집이고 차고 월급이고 다 압류하겠다는 통지서다. 그리고 수시로 찾아와서 괴롭히겠다는 예정(?) 통보. 나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오르고 욕이 따라 나온다.
'이런 우라질! 제발 좀 그렇게 해주라, 사람을 살리든 죽이든 뭐든지 하라구...'나도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무슨 이유든 남의 돈을 쓰고 못 갚는 사람이 1차 책임이 있고 미안할 일인데 왜 내가 그걸 모를까? 아내가 아프면서 몇 달 검사만 받으며 여러 병원을 떠도는 동안 우린 일도 못하고 있는 돈은 다 까먹었다. 집이라도 팔아서 버텨야 할 지경.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아내의 신용카드 대출은 연체되고, 3개월이 넘어갔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리고 5년. 참 많이도 시달렸다. 처음엔 사람이 생사가 오가는 데 그까짓 신용불량자? 그런 걱정은 호사라고 생각했다. 계속 날아오는 통지문, 걸려오는 전화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괴로웠다.
"저... 죄송한데요. 우리가 도저히 갚을 상황이 못 되니 제발 법적 조치를 하셔서 가져갈 건 가져가시고, 경매를 하든지 뭐든지 해주세요. 시간을 더 끌어도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그건 배짱이 아니고 사실이었다. 회복될 기약 없는 희귀 난치병에, 24시간 남편의 간병을 필요로 하는 대소변마비 중증장애 1급. 무슨 장담을 할 수 있을까? 갚겠다고 말하면 그건 다 거짓말이고 임시방편 변명일 뿐이지.
"뭐요? 이 인간들이!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돼! 이 뻔뻔한 사람들아!"'나도 인생 그렇게 안 살고 싶다... 정말로.'순간 화가 머리까지 올랐다. 죽을 동기를 못 잡아서 죽지도 못하고 있는데 잘됐다 싶은 심정이었다.
"야! 당신 지금 뭐라고 한 거야? 강제 집행하라고 하는 게 잘못이야? '최후독촉장' 뭐 그런걸 계속 날리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는데 왜 그러냐구! 강제집행도 하고 법적절차도 밟고, 형사고발을 하든지 다 하시라구. 아파 누워 있는 마누라 감방이라도 데려가는 길 있으면 좀 데려가 주면 더 고맙고..."숱하게 쌓였던 말을 다 퍼부었다. 윗사람 바꾸어 달라고도 했다. 제발 나와서 조사하고 지켜보든지 하라고, 채무자가 부탁하는데도 이 직원들은 직접 나오지도 않고 말만 쏟아낸다. 근무태만이니 고발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후 한참은 다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다음 채권 회사로 넘어가 다른 사람의 전화가 올 때까지는...
무엇보다 아픈 아내가 그 문제로 고민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자라는 아이들이 그런 문서를 우연히라도 보게 되거나 사람들이 와서 싸우는 걸 볼까 봐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법으로 가능한 처리를 앞서 해보려고 나섰다. 그런데 세상에 이런 황당한 법이 어디 있나. 가능한 방법이 없다.
발병 초기에 진 병원비로 감당이 안 됐던 두 곳의 카드 대금이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다. 원금이 300만 원 채 안 되던 곳은 700만 원이 됐고, 600만 원 조금 넘었던 곳은 원리금이 1200만 원이 넘어 있었다.
법무사와 상담을 했다. 결과는? 몽땅 꽝. 가장 기대를 걸었던 개인 파산 신청. 원금 1000만 원 미만은 법적으로 신청대상도 안 된단다. 무슨 법이 "더 빚을 져야만 탕감 대상이 된다"고만 하는지. 개인회생 워크아웃은 또 다른 이유로 우리를 거절했다. 당사자가 직장이나 얼마라도 고정수입 증명이 안 되면 못한단다. 중증 난치병 환자가 무슨 수로 직장을 다니고 수입을 증명할까?
그런데 캄캄하던 벽이 열렸다. 국민행복기금! 여러 문제도 있고 보완해야 할 점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법적으로 내게 문이 열린 곳이 그나마 그곳뿐이다. 상담을 해보니 대상이 된단다. 간신히 국민행복기금에 신청한 게 통과되어 살았다 싶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장애가 가로막았다.
14년 된 승용차, 이젠 '안녕'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