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 사원에 불탑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인도네시아 가는 길 5] 발리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 기행

등록 2014.09.05 11:19수정 2014.09.05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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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Bali)는 바다 위의 섬이지만 워낙 섬이 크다 보니 섬 안에 크고 아름다운 호수가 여럿 있다. 그리고 이 이국적인 호수 주변에는 발리의 신비로운 사원들이 자리 잡고 있다.

호수 위에 만들어진 사원들은 배경이 호수라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자들에게 포근함을 준다. 특히 발리 중북부의 해발 1600m 고산지대에 있는 브두굴(Bedugul) 지역에는 화산이 남긴 아름다운 호수가 3곳이 있는데 이 호수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큰 호수가 브라딴(Beratan) 호수이다. 그리고 이 호수 위의 힌두교 사원으로서 발리를 대표하는 사원이 바로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Pura Ulun danu Beratan)이다.


브두굴에서 가장 먼저 들른 브두굴 식물원을 나오자 브두굴의 다양한 열대과일과 특산물을 파는 브두굴 시장이 바로 눈앞을 지나간다. 브두굴 시장은 사원을 본 후에 구경하기로 하고 조금 더 차를 달렸다. 갑자기 눈앞에 고산지대의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은 호수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 높은 고산지대의 호수 주변으로는 큰 산들이 드넓게 둘러싸고 있고 깊은 호수는 짙게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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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룬다누 사원 가는 길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기분이 상쾌한 곳이다. ⓒ 노시경


이 신성스럽게 보이는 호수 위에 사원을 짓고 싶은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호수 위에서 발리 사원의 진수를 보여주는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은 인도네시아 10대 경관이자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인도네시아가 자랑하는 이 유적은 발리의 달력이나 관광안내책자에도 빠지지 않고 나타난다. 인도네시아의 5만 루피아 화폐에도 이 사원의 정경이 등장한다.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인 나라에서 힌두사원을 화폐에 넣었을 정도로 이 사원은 아름다운 것이다.

화폐에까지 등장하는 사원이라고 하여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이 사원을 많이 찾는다. 뭐가 어디에 나온 곳이라고 하면 관광객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데 이 사원도 그런 유명세를 가진 곳이다. 화폐의 도안에 문화유산을 넣었으니 이 문화유산은 홍보할 필요도 없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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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입구 사원 뒤편으로 브라딴 호수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노시경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은 1663년에 데위 다누(Dewi Danu) 여신을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사원이다. 이 사원에서는 데위 다누에게 제례의식을 행하는데, 데위 다누 여신은 발리의 호수, 강, 바다와 같은 발리의 모든 물을 다스리는 여신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 사원이 호수의 여신을 모시고 있기에 농사에 필요한 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호수는 경배의 대상이지만 사람들이 먹고 사는 농사에도 현실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원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발리 현지인들과 서양의 관광객들이 많이 붐비고 있다. 사원 입구에는 웅장하게 큰 반얀트리(Banyan Tree) 나무가 주변을 압도하며 마치 우리나라의 정자목 같이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뿜고 있다. 이 나무에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숭배하는 노란색과 흰색 천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이 반얀트리 나무는 거대한 몸집 때문에 신비하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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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얀트리 나무 신성한 나무를 숭배하기 위한 노란색과 흰색의 천으로 싸여 있다. ⓒ 노시경


같이 여행 중인 발리 친구 아롬은 이 사원의 어느 곳보다도 거대 반얀트리 나무를 숭배하고 있다. 아롬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움직이지 못하는 거대한 반얀트리 나무가 수백년 생명의 꽃을 이어나가는 사실에서 누구나 생명의 신비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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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딴 사원 외국 여행자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다. ⓒ 노시경


칼로 대형 탑을 두개로 쪼갠 듯한 사원의 정문, 짠디 벤따르(Candi Bentar)를 지났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니 사원 왼편에는 본당 등 주요 건물들이 모여 있고 건물 사이에 탑이 드문드문 보인다. 본당 건물과 정원, 탑의 배치는 발리의 다른 힌두교 사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힌두교도가 아니어서 사원의 본당 안으로는 들어가 볼 수 없지만 담이 워낙 낮아 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정문의 바로 앞에는 큰 광장이 있고 그 뒤쪽으로 호수가 아스라이 탑을 받치고 있다.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이 다른 사원과 다른 점은 바로 이 호수 위의 아름다운 정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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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본당 사원 본당 안은 들어가 볼 수 없으나 담이 낮아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 노시경


사원의 상징인 호수의 탑이 멀리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호수와 산이 힌두교 사원을 둘러싸고 조화를 이루어내는 풍경은 이곳 발리에서만 접할 수 있는 표현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다.

탑을 호수 위에 세웠으니 마치 탑이 호수 위에 떠 있는 듯이 환상적이다. 사원이 잔잔한 물 위에 떠 있는 듯이 아름다우니 마음도 차분해진다. 발리에 2만 개가 넘게 있다는 힌두교 사원 중에서 왜 이 사원이 가장 아름답다고 칭송받는지 바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가 이 사원을 찾은 이유도 호수 위에 세워진 탑의 그림 같은 모습에 반해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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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탑 호수 위의 아름다운 탑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 있다. ⓒ 노시경


호수 위 2개의 탑은 각각 11층과 3층으로 되어있다. 11층 큰 탑인 뻴린 메루(pelinggih meru)는 시바(Shiva)와 그의 부인 파르바티(Parvathi)를 모시는 탑이다. 3층의 작은 탑은 발리에서 가장 높은 산인 아궁산(Gunung Agung)을 숭배하는 탑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발리의 다른 힌두사원 탑보다 무척이나 화려해 보인다. 아내와 탑에 다가가서 자세히 보니 탑신의 각층은 화려한 금장으로 가득 꾸며져 있다. 탑 아래층의 조각상은 발리 조각 특유의 예술적 감각을 한껏 뽐내고 있다. 발리를 여행하다 보면 전혀 예상치 않았던 높은 예술적 감각에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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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과 호수 화산 호수의 명경지수에 탑이 떠 있는 절경이다. ⓒ 노시경


이 사원을 찾아 온 모든 여행자들은 호수 위의 이 탑 앞에서 사진기를 빼어든다. 탑 앞에는 탑이 잘 나오게 자세를 잡고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이 엄청나게 많다. 모두들 탑을 배경으로만 사진을 찍으려고 탑 앞에 서 있으니 탑만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려는 생각은 소박한 희망이었을 뿐이다.

우리 가족사진의 뒷배경으로는 탑 앞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발리 현지 가족들의 밝은 모습이 배경이 되었다. 나는 아롬에게 부탁하여 얼른 가족사진을 찍은 후 뒷사람들에게 밀려나듯이 자리를 비워줬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탑 바로 앞 구역만 벗어나면 여유 있게 산책을 즐기며 호수와 사원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오늘은 날씨도 맑고 청명하여 산책하기에도 너무 좋다. 고도가 높은 지대이기 때문에 날씨도 선선하고 바람이 살랑거린다. 호수를 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봐도 참으로 자태가 아름다운 사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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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기념사진 발리에서 가장 유명한 이 사원에서 현지인들이 사진을 남기고 있다. ⓒ 노시경


화산호수와 산이 맞닿은 경계는 마치 백두산의 천지를 보는 듯이 신비스럽다. 사원 호수의 건너편은 화산 분출의 역사를 지닌 까뚜르 산(Gunung Catur, 2096m)이다. 호수를 둘러싼 까뚜르 산의 사면에는 마치 정원을 가꾸듯 잘 정돈된 키 큰 나무들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다.

산은 호수를 에워싸듯이 안고 있고 그 호수에 탑이 잔잔히 비치고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는 산 위에 내려앉은 구름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 사원은 마치 호수에 내려앉은 단아한 여인네 같다. 하늘 아래의 호수, 이 정도의 아름다움이면 힌두교 사원에 내려왔던 신들이 이곳을 신의 정원으로 삼을 듯 싶다.

나는 아내와 함께 고산지대의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호수를 따라서 산책했다. 걸을 때마다 변하는 호수와 사원의 정취가 여행자를 감탄하게 한다. 맑고 청명한 브두굴의 공기가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브라딴 호수는 발리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깨끗하고 시원하여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화산폭발로 생긴 분화구에 물이 고여 생긴 호수, 그리고 그 위에 만들어진 울룬다누 브라딴 사원. 이 사원은 브라딴 호수 위에 있어서'워터 템플(water temple)'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발리 친구 아롬에게 이 워터템플이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한국말을 아주 잘하는 아롬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이 크고 넓은 호수는 발리 주민들이 살아가는 데에도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이 호수는 발리 중북부의 브두굴 지역 뿐만 아니라 발리 전지역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농사 용수를 공급하는 수원지인 셈이죠. 특히 브라딴 호수 주변은 토양이  비옥하고 날씨도 선선해서 채소 같은 농작물도 잘 자라는데, 풍부한 물이 큰 도움이 되고 있죠. 여행자에게는 매력적인 호수이지만 발리 현지인들에게는 삶의 근원과 같은 곳입니다."

"논농사를 짓는 발리에서는 농사와 관련된 공동체가 과거부터 잘 발달되어 왔습니다. 이 공동체의 이름은'수박(subak)'이라고 하는데요.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은'수박'과 연계하여 논농사에 물을 대는 발리 사원들의 원류와 같은 곳입니다."

나는 아롬의 설명을 듣고 물끄러미 호수의 수면을 바라다보았다. 사람들은 왜 물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질까? 물속에서부터 진화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재도 몸의 대부분이 물로 만들어진 인간은 풍성한 물을 보면 어머니 품 속과 같은 포근함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으니 현지인들에게 이 호수는 생명과 같은 의미의 성스러운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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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탑 힌두교 사원 안에 모셔진 부처님이 생소하기만 하다. ⓒ 노시경


우리는 또 갈 길이 있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호수 앞을 떠났다. 사원 입구로 다시 나오다보니 사원 입구의 너른 잔디밭 정원에 한눈에도 힌두사원의 탑과는 전혀 다르게 생긴 탑이 서 있다. 동남아 불교사찰의 불탑과 아주 닮아 있어서 아롬에게 물으니 이 탑은 불교의 부처님을 모신 불탑이다. 돌탑 2층의 4방향으로 뚫린 감실에 들어앉은 불상이 물끄러미 바깥세상을 내다보고 있다.

"아롬, 아니 어떻게 힌두교 사원에 불탑이 저렇게 잘 보존되어 있지요? 이상하네?"
"힌두교에서는 부처님도 힌두교의 비슈누(Vishnu) 신이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강림한 화신으로 보고 있지요. 다른 큰 힌두교 사원에 가도 부처님은 잘 모셔져 있습니다." 

힌두교는 참으로 편리한 종교이다. 우주의 질서를 보호하는 비슈누 신은 우주의 질서가 문란해지면 물고기가 되었다가 거북이가 되기도 하고 부처님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자연 숭배의 대상이 하늘만큼이나 많은 힌두교에서는 부처도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7세기경에 불교의 중심지로서 번성한 인도네시아의 뿌리 깊은 불교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 불탑에 남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온 여행자에게는 힌두교 사원 안의 불탑이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불교사원의 정점에 모셔진 부처님만 보다가 힌두교의 여러 신과 함께 어울리듯이 정좌하고 있는 부처님을 보니 너무 어색하다. 성스러운 부처님이 왠지 한 단계 낮은 대좌에 앉아 계신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하다.

사원 밖을 나와 걸으면서 나는 호수 주변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를 발견했다. 사원 입구에서 현지인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짠디꾸닝(Candikuning) 공원. 이름은 공원인데 대부호의 정원같이 푸른 수목들이 훌륭하게 가꿔져 있다. 발리 아이들은 정원 안을 즐겁게 뛰어다니며 푸르름을 만끽하고, 정원의 동물 조각상들 앞에서는 현지인들이 즐겁게 사진을 찍고 있다. 하늘도 푸르고 나무도 푸르고 잔디밭도 푸르고 온통 푸른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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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 나무 키 큰 나무들이 도열하듯이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 노시경


아내는 하늘을 찌를 듯이 마치 바늘처럼 꼿꼿이 선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에서 깊은 감명을 받은 모습이다. 정연하게 생긴 나무가 도열하듯이 서 있는 모습이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사이프러스 나무도 키가 크지만 이토록 하늘로만 솟지는 않는데, 발리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아마도 발리의 아름다운 호수를 보기 위해 저렇게 키가 커졌나 보다.

이런 과장된 표현이 전혀 과장되지 않게 보이는 곳이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과 브라딴 호수 주변의 정경이다. 발리 인들의 생명의 젖줄인 호수는 그토록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350 여 편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여행 #발리 #울룬 다누 브라딴 사원 #브라딴 호수 #힌두교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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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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