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는 왜 인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지 못할까

[주장] 경계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등록 2014.09.05 16:03수정 2014.09.05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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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픈 경계인, 정대세'란 제하의 기사가 <중앙일보>에 지난 8월 29일 실렸다. 경계인이란 말은 사회심리학 용어다. 문화 양식 특히 언어나 이념, 가치 기준을 달리하는 두 개의 집단에 동시에 귀속되는 사람을 말한다.

오랜 기간 동안 소속되었던 집단에서 다른 집단으로 옮겼을 때, 원래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을 당장 버릴 수 없고, 또한 새로운 집단에도 충분히 적응이 되지 않아서 혼동의 상태, 중간에 놓인 사람을 지칭한다.

경계인은 독일 뮌스터 대학의 송두율 교수가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송 교수는 2003년 가을, 37년 만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귀국했으나 해방 후 최대 거물 간첩으로 몰려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다. 2004년 7월의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 독일로 다시 돌아갔으며, 2008년 7월 대법원의 판결에서 무죄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한국 국적일 때의 평양방문에 대해서는 유죄가 인정됐다. 당시 한국이란 시공간 속에 광기와 야만이 존재했음을, 그리고 이를 유지하는 시스템이 작동했음을 분명히 드러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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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축구대표팀의 정대세가 지난 2009년 4월 1일 오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의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5차전 경기에서 조원희의 수비를 피해 드리블하고 있다. ⓒ 유성호


정대세와 이충성, 우리 시대의 경계인들

우리는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슈가 되었던 북한 국가대표 정대세가 흘린 하염없는 눈물을 기억한다. 어쩌면 그의 눈물은 그만의 눈물이라기보다 아픈 역사를 살아온 우리 민족의 눈물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의미를 알려면 가슴 아픈 우리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1910년 대한제국이 무너지고 이후 많은 나라를 잃은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게 된다. 그 사이 대한제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남한과 북한으로 갈리게 되고, 일본에서 사는 그들은 '국적'을 택해야했다. '대한제국'에서 살던 이들이 분단된 나라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무국적'을 택한다. 이는 "나는 일본인도, 북한인도, 한국인도 아니니 국적을 택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들 가슴 속의 국적은 이제는 사라져버린 대한제국 또는 조선이었을 것이다.

정대세는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났지만, 경북 의성 출신인 조부를 따라 한국 국적을 받았다. 민족학교에서 북한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인연으로 북한 축구 대표팀에 발탁됐고 남아공 월드컵에 북한대표로 뛰었다.

그는 독일의 쾰른 팀을 떠나 한국 수원에 입단하여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게 K리그, 한국축구는 본능적인 끌림의 대상이었다. 시련도 있었지만, 경기장 안팎에서 그를 격려하는 한국사람 특유의 따뜻함은 '반쪽 이방인'에게 큰 위안이었다.

한때 정대세는 국가보안법 위반 논란에 휘말려 극심한 마음고생을 했다. 북한 대표팀 발탁 직후 외국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가 문제였다. 정치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는 그가 무심코 했던 말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자이니치(재일교포) 축구선수 이충성 선수도 정대세 선수와 같은 경우다. 이충성의 부모는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민족의 뿌리를 잊지 말라며 아들의 초등학교로 민족학교를 택했다. 그리고 중학교는 축구를 위해 일본학교로 진학시켰다. 이충성은 일본사회와 중·고등학교에서의 '왕따'를 각오하고 '이충성'이라는 이름을 썼다. 열심히 운동해서 실력을 쌓았다.

이충성 선수는 당시 FC 도쿄에서 같이 뛰고 있던 오장은 선수의 추천으로 한국 청소년 국가대표 꿈을 안고 한국행을 결심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그를 '반(半) 쪽바리'로 대접했다.

결국 그는 일주일 만에 일본으로 돌아갔다.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일본 축구의 명장 자케로니의 눈에 들어 '리(Lee) 타다나리'란 이름으로 카타르 아시안컵 대표팀에 승선한다. 호주와의 결승전 연장 후반 4분에 결승골을 넣어 일시에 일본 축구영웅이 된다. 한국은 불과 몇 년 전 배척하며 푸대접하던 이충성을 이제 부르고 싶어 한다.

조선인으로 태어나 뼈아픈 민족사에 얽혀, 결국 가슴에 일장기를, 등 뒤에 한국 이름을 달고 그라운드를 달리는 이충성 선수는 또 하나의 경계인, 또 하나의 정대세이다.

경계인은 한·일 갈등 그리고 분단된 남북한의 복잡한 역사에서 존재하는 슬픈 용어다. 동시에 우리가 풀어야 할 운명이다. 지난 아픈 역사의 회복은 물론 분단된 조국의 미래 평화통일을 위해서도 경계인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열린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도 정대세에게 서러움을 안겼다. 북한 대표팀의 간판 공격수인데다 한국축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만큼 와일드카드 발탁을 기대했지만, 끝내 참가선수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냉랭한 남북의 정치 기류 속에서 '이슈메이커'인 정대세가 부각되는 것을 북한 체육계가 원치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망감은 그의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고, 경계인 정대세는 벤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연합기독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경계인 #정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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