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데나 취직 좀 해라!" 아들한테 말해버렸습니다

[추석에 있었던 일] 백수인 아들에게 상처 준 제가 밉습니다

등록 2014.09.10 20:25수정 2014.09.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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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직장을 찾고 있는 아들이 추석이라고 집엘 왔습니다. 직장을 무던히 찾고 있지만 어디 써주는 데가 있어야지요. 벌써 '백수생활에 익숙한 아들'이라고 하면 좀 심할까요. 하여튼 그 '이도저도 아닌 아들'은 하룻밤 자고 얼른 도망치듯 가버렸습니다. 말은 안 하지만 자기도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하겠어요.


그런데다 그 아들의 부모(저와 아내)가 사는 집은 아들에게는 낯선 곳이거든요. 제가 서울에서 이곳 시골로 내려온 지가 6년쯤 되니까요. 아들은 서울에서 꽤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고등학교까지 다녔습니다. 그리곤 부푼 꿈을 안고 유학길에 올랐답니다. 국제적으로 키우겠다는 저와 아내의 야망이 99% 작용한 결정이었답니다.

아들도 그런 부모의 권고에 순순히 순종했고요. 어학연수과정을 마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두 학기도 채우기 전에 문제가 터졌습니다. 제가 어려움을 당한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아들을 호출(?)했습니다. 귀국한 아들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군대로 피신(?, 딴지 걸고 싶은 분 계시겠지만 참아주세요)하는 거였습니다. 일단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니까요.

추석 연휴, 집에 왔다 도망치듯 떠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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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JOB) 페스티벌'에 참여한 구직자들이 현장면접을 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제대 후 다시 수능을 치러 당당히 수도권대학 전자공학과에 합격을 했습니다. 그때 나이 '스물'하고도 '넷'이었습니다. 서울대나 서울의 대학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방대학으로 분류되지 않는 걸 감사하며 수도권대학에서 늦깎이 대학 생활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그리고 졸업을 위한 프로젝트도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이곳저곳 이력서를 들고 동분서주했던 모양입니다. 어디에 이력서를 넣었는지 물어보면 이름만 말해도 아는 굴지의 기업들에 이력서를 냈다는 거예요.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취직되기를 바랐죠. 뭐, 부모마음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러나 역시 그건 꿈 만이었나 봅니다.


처음 몇 번은 관심을 갖고 물어봤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아무리 아들이라도 미안해서 못 물어보겠더라고요. 지금은 사람을 구하는 회사라면 어디든지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넣는 모양입니다. 번번이 낙방하는 것 같고요.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요. 지금쯤은 자괴감 같은 게 짓누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제는 이력서 쓰는 데는 달인 정도가 된 것 같더라고요. '이력서 작가'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제 아들이 지금 '이력서 작가'랍니다. 인세도 한 푼 못 받는 이력서 작가. 허허. 당당히 작가 반열에 든 아들이 시골 한적한 곳에서 하룻밤인들 편한 잠을 잘 수 있겠느냐고요.

그러니 하룻밤 잔 후 줄행랑을 친 거지요. 참고로 저희 집은 그 이름도 찬란한 '세-종-특-별-자-치-시'에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하고는 전혀 다른, 시골 분위기 제대로 충만한 변두리에 있거든요. 서울살이가 익숙한 아들이 있기에는 몇 시간도 답답한 곳이죠.

아들은 서울의 시집간 딸네 집에 얹혀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답답하면 아들 녀석이 친구들을 불러내 만날 수 있는 곳이죠. 자신의 친구들이 대부분 서울에 사니까요. 그런데 이번에 딸 내외가 추석 전에 다녀가면서 저와 아내가 심란해졌답니다. 무엇 때문이냐고요? 딸아이가 어렵사리 제 어미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아무래도 우리 집 이번 계약 끝나면 너무 많이 올려달라고 해서 재계약이 힘들 것 같아요. 그래서 봄에 변두리로 이사 가면서 슬기(제 아들)는 데려가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말하기가 힘드니 엄마가 슬기에게 말해주세요."

오 마이 갓! 올 것이 온 겁니다. '방 빼!' 제 아들 이야기였던 겁니다. 신혼임에도 불구하고 동생에게 방 한 칸을 내주고 신혼의 달콤함을 양보했던 제 딸내미가 큰 결심을 한 것 같습니다. 동생이 취직할 때까지 같이 살겠다던 딸네도 사정이 생긴 겁니다. 그렇다고 부모되어 동생도 데리고 가라 말하기도 영 자존심이 상하네요.

애비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해선 안 될 말을...

문제는 돈인데... 문제는 아들 녀석의 취직인데... 이렇게 아들의 운명을 알고 있는 우리 내외로서는 이번 추석에 내려 온 아들 보기가 몹시 불편했습니다. 아들 녀석을 볼 때마다 여러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힙니다. 그리고는 안 해도 될 말, 아니 안 해야 하는 말을 하고 말았답니다.

"슬기야! 너 아무데나 취직 좀 해라!"

이 말이 취업 준비생들에게는 고문과 같은 말이랍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더군요. '명절 스트레스, 추석에 가장 듣기 싫은 말' 1위는 '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말이랍니다. 근황을 묻는 말인데 뭐 당당한(?) 직장을 가진 이들이야 대답이 수월한 질문이지만, 백수에게는 이만한 고문이 또 있겠어요.

2위는 '취직은 했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랍니다. 또 '누구는 어디에 취직했다더라'라는 등 다른 이와 비교하는 말이랍니다. 그리고 3위가 제가 아들에게 한 말, 바로 그 말입니다.

"받아주는 데는 있어? 일단 어디든 들어가."

아, 제가 이 말을 하다니요. 제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그 귀한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요. 제가 절 용서할 수 없는 말을 내뱉어야 하는 현실이 서글픕니다. 추석 때 취업을 못 해 내세울 게 없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57%라고 합니다. 제 아들이 바로 그 57%에 속해 있는데, 제가, 애비된 제가, 그 스트레스에 덤으로 더 큰 스트레스를 얹어주다니요.

박근혜 대통령님!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된 겁니까? 취임사에서 '창조경제'를 주장하시며 "경제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꾼다"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융합을 통한 산업과 산업의 융합, 산업과 문화의 융합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어 내겠다"고 하셨잖습니까.

제 아들이 전공한 게 그 '정보통신기술'이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취직이 안 되는 건 무슨 일이지요. 제가 아들에게 무얼 배운 거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아들의 대답이 이랬습니다. 난 그게 뭔지 아직 모릅니다만.

"스마트폰이 있잖아요. 거기에 카메라를 하나 넣는다. 그럼, 그걸 설계하여 실제로 넣는 일이 제가 하는 거예요."

이거 대단한 거 아닌가요? 지금은 교수님과 공동으로 졸업논문을 가지고 프로젝트(아르바이트로)를 하여 용돈 정도나 받아쓰고 있답니다. 제 아들에게, "어디든 들어가라!" 이런 말 제발 안 하게 될 날이 언제일지...
#백수 #취업준비생 #실업율 #명절스트레스 #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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