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회의 모니터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재난이 닥쳤을 때 피해 당사자, 재난 지역, 그 사회가 대혼란에 빠지는 경우가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연구한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재난이 닥쳐도 대혼란은 매우 드물다.
지난 50년 동안 폭풍, 테러, 화재, 폭탄 폭발 등 700여 건의 각종 재난사건을 연구한 미국 델라웨어대 연구팀의 결론에 따르면,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통제에 따르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서로 도우며, 침착하게 행동한다(이 연구의 내용은 미국 사회학회에서 발간하는 학술지인 Contexts 2002년 가을호에 Lee Clarke가 "Panic : Myth or Reality?" 제목으로 소개하였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질서가 있는 것은, 원래 사람들이 질서 있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드물게 발생하는 대혼란은 의사결정자가 정보를 통제하고 감춤으로써 사람들이 신뢰를 상실해서 대중이 상황파악을 하지 못할 때 생긴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대혼란은 사고 이후에 벌어졌다.
세월호의 두 가지 사건, 즉 세월호 침몰참사와 이어진 국가적 대혼란은 두가지 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첫 번째는,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되는 비극이 생겼는가? 어떻게 하면 같은 사고를 막을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은 비극적 사고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국가적 대혼란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뭉뚱그려 박근혜 정부에게 세월호 참사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지만, 첫 번째 사건의 중요책임이 박근혜 정부에게 있다고 하기 어렵다.
우선 첫 번째 질문의 복잡성부터 보자. 많은 사람들이 동의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배가 침몰할 때 대피 명령만 제대로 내렸어도 인명손실이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명확하지 않다.
선장과 선원들은 도대체 왜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배가 이미 너무 기울어 선내진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해경 123정의 선장의 판단이 틀렸다고 확신 할 수 있나? 애초에 배는 왜 침몰했는가? 혹자는 3등 항해사의 미숙에 의한 변침이라고, 혹자는 평형수라고, 혹자는 과적이라고, 혹자는 노후선박의 구조변경이라고 한다.
수사와 조사를 통해서 그 원인을 명확히 밝혀낼 수 있기를 희망하지만, 종종 기술적 원인조차 모두가 동의하기보다는 주관적 판단이 개입하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남는다.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상기해보라. 지금은 여야가 모두 북한 잠수함의 폭침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객관적 사실에 더 이상 의문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야당이 추천한 헌법재판관 후보가 청문회에서 천안함과 관련된 발언 때문에 인준이 거부되고 친북세력으로 몰리는 등, 정치적·사회적으로 폭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이 설 자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재난사고의 원인, 한 가지가 아니다세월호 침몰사고의 기술적 원인이 아닌 제도 미비 등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그 답은 더 불명확해진다. 규제완화가 문제라고 하지만, 어떤 규제는 완화되어야 한다. 완화된 규제 때문인지, 아니면 남겨 놓은 규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관리의 문제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혹자는 신자유주의가 근본원인이라는데, 신자유주의를 도입한 많은 국가가 세월호 참사와 같은 재난을 겪지는 않는다.
무분별한 이윤추구기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이도 있지만, 우리나라 노동자의 93%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에서 일한다. OECD 국가 중에서 공공부문이 가장 큰 국가도 노동자의 20%를 넘어가지 않는다. 이윤추구가 목표인 사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렇지만 이런 식의 참사가 모든 나라에서, 모든 분야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여객선 안전운항 관리업무가 민간기관에 넘어간 것이 원인이라는데, 많은 관리가 민간기관에 의해 이루어진다. 가장 권위 있는 선박관리기관인 영국 주재 로이드선급도 민간기관이다.
선박의 기술적 문제, 법률적 규제, 규제를 감독하는 기관, 규제를 감독하는 기관과 선박을 운영하는 주체의 관계 등, 세월호를 둘러싼 이해당사자와 관리당사자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라고 제기된 모든 요인들이 일정부분 사고와 관련이 있을 것이고, 그 주체들에게 일정정도 사고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원인은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체계 속에서 발생하는 재난의 일반적 특징이다. 그래서 사회학자들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재난사고의 원인은 사지선다처럼 한 가지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고처리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여러 가지 관계선상에 있다. 복잡하고 거대한 재난의 처리과정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관계자들의 이해 조정과정이기도 하다. 이해관계의 조정, 이것이 바로 정치의 본원적 역할이다.
유가족의 동의, 사회적 합의 위한 필수과정 세월호 특별법은 앞으로 비슷한 사고를 피하기 위해 그 원인을 밝히고 우리 사회가 어떤 부분을 고쳐 나갈지 파악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과 합의의 과정이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인 유가족과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게 중요하다.
정부와 여당 측 인사가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고원인을 감추고 조사를 방해하고 이상한 결론을 내리기 때문이 아니라, 피해당사자와 여야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조사위원회의 결론과 조치가 사회적으로 저항 없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과거사진실위원회에서 대한항공 858 폭파사건을 북한의 테러사건으로 밝히자, 이를 둘러싼 논란은 줄어들었다. 신뢰성 있는 기관의 조사는 이토록 중요하다.
한 가지 확실히 해둘 것은 무슨 조치를 취해도 사고를 근절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사고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관련 주체의 각 단위에서 사고확률을 낮추는 여러 행동을 취하도록 사회를 재조직화 하는 것, 그게 목표다.
그런데 이런 식의 복잡한 사건에 대한 불명확한 설명은 범인을 찾는 대중의 욕구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꼬이기 시작한다. 이해갈등을 조정하고 재난이 닥친 이후 상황을 관리하고 안전사회를 추구해야 할 박근혜 정부는 체계를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면서 분노한 대중 앞에서 희생양 찾기에 급급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박근혜 대통령은 3권 분립의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기소에 적용할 법률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지기도 전에, 자신이 나서서 "살인행위"라고 규정하였다. 대중영합주의다.
해경이 잘했으면 다수의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대중의 희망적인 믿음은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게 만들었다. 언론, 정치권, 정부까지 나서서 해경 희생양 만들기에 몰두했다. 목숨을 걸고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잠수부를 해경권력과 결탁한 부패의 상징으로 몰아붙였다. 304명의 목숨도 모자라 사체인양 과정에서 추가 희생자를 결국 보고 말았다. 잠수부에 대한 비난이 멈춘 것은 민간잠수부가 사망한 이후다.
사건 초기에 현장을 통제하고 정리하지 못한 정부는 총리를 책임자로 보내고 대통령이 팽목항을 방문한 후에도 여전히 지휘체계를 잡지 못했다. 급기야 사고원인에 대한 아무런 진단이 나오기 전에 대통령이 나서서 해경을 해체하겠다는 최악의 대중영합주의를 선보였다.
박근혜 정부가 책임져야 할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