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언론 <모두를 위한 루브르> 홈페이지. http://premierdimanchedumoisgratuitaulouvre.wesign.it/fr
목수정
- 서명운동은 성공적이었나? "완벽하게. 일주일이 안 되서 20여 개의 시민단체들이 이 운동에 합류했다. 이들이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집회를 가지면서 기사화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긴 공사 후 다시 문을 연 뉴욕 현대 미술관이 값비싼 입장료를 적용하여, 이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이 동시에 전개됐다. 이 두 개의 거대한 박물관을 향한 저항운동이 큰 물결이 되어 급속도로 퍼져갔다. 서명운동이 시작된 지 15일이 지나면서, 박물관 측은 미술평론가와 예술가들, 미대생들에 대한 무료입장을 다시 허용했다."
- 와! 대단히 신속한 승리였다. "그런 셈이다. 그런데 이건 우는 아이 젖 주는 격이다. 사실 극히 일부에 대한 예외를 허용한 것에 불과하다. 솔직히 미술평론가들까지 무료입장을 못하게 하는 건 자승자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혜택을 받던 사람들의 범위를 아무리 넓게 잡아도 20만~30만 명도 채 되지 않는다. 그들이 입장료를 내지 않고 들어간다고 해서 박물관이 실질적으로 손해 볼 건 거의 없다.
1789년 혁명의 결과로, 왕실의 컬렉션을 보관하던 장소였던 이곳이 고스란히 박물관으로 전환됐다. 전 국민에게 무료로 개방되기 시작했던 게 1793년이었다. 이때부터 무려 130년간 무료개방의 원칙이 고수되어 왔다는 사실을 이 싸움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1922년부터 주 1회 무료입장으로 줄어들었고, 1980년대부터는 매달 첫 번째 일요일만 무료 개방했다. 금년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들어오는 성수기에는 아예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대로라면 무료입장이 곧 완전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결정이 오로지 수익성이라고 하는 한 가지 목적에만 맞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공공문화정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그래서 당신의 첫 목표가 달성된 이후에도 <모두를 위한 루브르>는 계속된 건가? "그런 셈이다. 도서관처럼, 온전히 공공의 목적에 봉사해야 하는 것이 박물관의 기능이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이 문화부 산하의 돈벌이 기구로 전락했다. 박물관들은 이제 서로 경쟁을 하고, 오로지 매출을 늘리기 위한 전략에만 몰두해 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좀처럼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 나 역시 루브르 박물관에서 파는 생수가 3.9유로(약 6000원)나 하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박물관 운영진들은 관람객의 입장에서 아무런 배려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것인가'이다. 관광객들이 표를 사기 위해 빗속에서 세 시간 동안 줄을 서건 말건 그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박물관에 자주 드나드는 것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고, 즉각적으로 투쟁에 나설 만큼 절박한 권리였나? "물론이다. 나도 어렸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부모님을 따라서 종종 박물관을 다녔다. 하지만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경우, 낸 만큼 본전을 뽑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다. 자기 방식대로 충분히 여유를 갖고 보지 못하고, 다리 아프도록 최대한 많이 보려고 하게 된다. 그런데 무료로 입장을 하게 되면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관람을 하게 되었다. 물론 그래픽 아티스트는 시각적으로 표현된 모든 것들로부터 끊임없이 영감을 얻는다. 나는 산책 삼아서 루브르 박물관을 가기도 하고, 거기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리란 기대로 가기도 했다. 두 가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관람 방식이었다."
사회운동가에게 필요한 승리의 경험- <모두를 위한 루브르>의 성과들 가운데 또 기억에 남는 게 있나. "역시 루브르 박물관과 관련해서다. 5년 전쯤, 박물관 지하에 넓게 조성된 상가 카루셀 뒤 루브르(Carussel du Louvre) 안에 맥도날드가 입점할 예정이었다. 완전히 결정되기 전에 그 정보를 입수해서 보도했고,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들이 열화와 같은 관심을 보였다.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맥도날드가 입점하건 말건 무덤덤했다. 반면,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사실을 기사화하며 열렬한 관심을 보여주었다. 맥도날드와 동거하는 루브르 박물관의 이미지는 외국인들에게 더 충격적이었던 것이다."
- 예술의 나라, 문화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팔아왔는데, 정작 자신들은 급속히 쇠락해가는 프랑스의 정신에 물들어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프랑스에 문화부가 설립된 1959년 이후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이 표방하는 문화민주주의의 과제를 제대로 실천한 적이 있었던가? "답하기 쉽지 않다. 사실 앙드레 말로(작가 출신의 초대 프랑스 문화부장관) 같은 역사적 인물이나 자크 랑(미테랑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함) 같은 전설적인 문화부장관도 그 과제를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다. 자크 랑은 문화부의 예산을 증가 시켰고, 문화의 범위를 확대하면서 대중화시킨 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앙드레 말로는 문화민주주의의 개념을 정립했지만, 구체적으로 실현 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박물관 부문만을 놓고 본다면, 문화부가 존재하기 전에 훨씬 더 넓은 평등이 있었던 셈이다. 지금의 문화부는 공공문화기관들을 채찍질하여 점점 더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공장으로 가동 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들은 점점 더 높은 재정자립도를 요구받고 있다. '아해 스캔들'이 일어나게 된 원인도 사실은 거기에 있다.
여전히 문화부는 문화 민주주의를 말한다. 매년 박물관 입장객 수가 신기록을 갱신하니, 그것으로 문화민주주의에 성공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문화민주주의를 말할 순 없다. 실질적으로 늘어난 것은 관광객뿐이다. 줄지어 들어가 유명한 작품 위주로 빠른 시간에 훑고 나온다. 박물관이 점점 단순히 소모하는 공간으로 변모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