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무, 서북청년회 부위원장에서 민중신학자로

민중신학자 안병무의 숨은 이력

등록 2014.10.04 14:31수정 2014.10.04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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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북청년단의 재건'을 표방한 몇 사람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노란리본을 시청 앞에서 제거하려다 시청 직원과 경찰에 의해 제지당한 사건이 있었다. 그들의 이 같은 무례한 행동은 오랜 세월 잊혔던 '서북청년단'이란 무시무시한 단체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서북청년단이 뭔지 알아보다가 이상기 전 <한겨레신문> 기자의 글 "서북청년회와 해방정국의 암살자들"(1992. 7. <말>)에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먼저 서북청년회(이하 서청) 결성식(1946. 11. 30)에 백범 김구가 내빈으로 참석하였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축하화환을 보내고 참석치는 않았다. 초대 회장인 선우 기성은 오산학교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돼 고초를 겪은 인물로 김구의 민족주의 노선을 따르던 자였다. 이처럼 초기 서청은 김구 계열이 득세했으나 2년 뒤 문봉제 위원장 때부터는 이승만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으로 나온다.

a 제2기 서청의 부위원장 중 한 사람인 안병무 "서북청년회와 해방정국의 암살자들"의 한 대목

제2기 서청의 부위원장 중 한 사람인 안병무 "서북청년회와 해방정국의 암살자들"의 한 대목 ⓒ 정병진


서청 출신으로 학원에 침투해 좌익테러를 불사하며 대공투쟁을 벌인 자들 중에는 훗날 국회의장을 지낸 김재순과 <순교자>라는 소설로 유명한 김은국씨도 들어 있다.

또한 1947년 9월, 문봉제 위원장을 중심으로 서청이 재건됐을 때 공동 부위원장들 중엔 김성주, 한제관, 홍선준과 더불어 '안병무'가 언급된다. 이 사람이 혹시 민중신학자 안병무(1922~1996)와 동일인이 아닌지 일말의 의구심이 생겼다. 안병무는 북한의 평남 신안주 출신이고 1946년 월남하였으며 반공 성향이 강한 편이다. 그가 해방정국의 소용돌이 가운데 잠깐이나마 서청활동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a 안병무의 책 <시대와 증언> 이 책에 "내가 겪은 공산당"이란 글(104~107쪽)이 실려 있다.

안병무의 책 <시대와 증언> 이 책에 "내가 겪은 공산당"이란 글(104~107쪽)이 실려 있다. ⓒ 정병진


안병무는 그의 책 <시대와 증언>(1978, 한길사)에 실린 "내가 겪은 공산당"(1975)이란 글에서 "한 반공단체가 찾아와 '최고자문위원'이 돼 달라고 집요하게" 요구한 바 있다고 말한다. 이것을 실마리로 자신이 만주 간도와 6.25 때 겪은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을 회고한다.

공산당은 "투쟁을 위해 의사가 필요하다"며 한의사였던 안병무의 아버지를 납치하고자 집에 자주 찾아와 집안을 들쑤셨다. 이를 피하고자 소년 안병무와 그의 부친은 한동안 사랑방 천정에서 잠자리를 했다고 한다.


어느 날은 공산당들이 무고한 동네사람 여럿을 인민재판으로 공개처형한 적도 있다고 썼다. 안병무는 자신이 월남하여 정부 시책을 비판하며 '인권'과 '자유'를 외친 이유도 남한이 공산주의에 감염될 위험 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신념의 발로였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대표적인 민중신학자인 안병무가 과연 서청 부위원장 출신인지 확신이 서진 않았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고 안병무 행적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라 몇몇 분에게 알아보았다.


앞서의 기사를 쓴 이상기 대표(아시아엔, 전 한겨레신문 기자)는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보이다가 안병무 선생의 출신지나 관련 글을 언급하자 "그러면 맞는 것 같다"며 "그렇게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완상 박사는 "동명이인일 거다. 잘 모르지만 안병무 선생은 서울대 사회학과 내 선배인데 서청활동을 할 만한 사람은 아니다"고 하였다.

하지만 안병무 교수의 제자인 최형묵 목사는 "안 선생의 이름이 서청에 올랐던 건 사실이다"고 확인해주었다. "가까운 사람들은 알고 있었으나 내놓고 자랑할 일도 아니고 해서 그간 묻어둔 거"라며 자신은 "안 선생의 극적인 전향을 높이 산다"고 덧붙였다. 즉 비록 '행동대원'은 아니었으나 한때 극우 단체인 서청에 속했던 인사가 1970년대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앞장섰고 민중신학자가 되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사실 사도 바울도 회심하기 전에는 곳곳을 쏘다니며 그리스도인들을 색출해 감옥에 처넣고 처형까지도 불사하던 대표적인 기독교 박해자였다. 이런 그는 다마스커스로 가던 중 부활 예수의 환상을 보고 거꾸러져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변화됐고 일생을 예수를 위해 바쳤다.

혈기 방자한 청년시절 잠시 서북청년회 부위원장을 맡았으나 훗날 민중신학자로서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앞장선 안병무의 경우도 엇비슷하지 않나 싶다. 안병무의 변화는 지금도 서청을 그리워하며 재건을 꿈꾸는 극우 인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서북청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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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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