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도로에서 복호동으로 들어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추연창
김천시 구성면 복호리는 해월이 <내칙>과 <내수도문>을 지어 발표한 역사적 장소이다. 제목의 '내'는 물론 여성을 뜻한다. 즉 <내칙>은 태교에 관한 내용이고, <내수도문>은 여성 중심의 가정생활 지침서에 해당된다.
그래서 1990년 대한천도교여성회는 <내칙>과 <내수도문>이 발표된 100주년을 기려 복호동 어귀에 기념비를 세운다. 비의 이름은 <내칙, 내수도문 비>로, 꼼꼼하게 읽는 답사자들은 그 비를 읽는 것만으로도 <내칙>과 <내수도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내칙>과 <내수도문>은 어린이와 여성을 존중하는 평등 사상이 짙게 배어있는 내용이다. 이는 뒷날 천도교가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배경 사상이 되었고, 마침내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날'이 만들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내칙, 내수도문>이 세워져 있는 장소가 절묘하다. 비 뒤로는 작지만 우렁찬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쏟아진다. 비 옆에서 서서 기념 촬영하는데, 마치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라고 가르치신 해월 선생의 말씀이 폭포처럼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듯하다.
복호리 안으로 들어섰을 때 특별히 아쉬운 점은 마을 안에서 해월의 구체적 유적을 찾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해월이 머물렀던 동학교도 김창준의 집도 자취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의 후손들도 마을을 떠난 지 오래되었는데다가, 연락조차 끊겼다. 아마도 1894년 김천동학농민혁명군의 궤멸이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김천에는 해월이 다녀간 유적지가 한 곳 더 있다. 어모면 다남리 참나무골이 바로 그 곳이다. 이 마을에 해월이 다녀간 때는 1893년 7월로 알려진다. 복호리보다 약 3년 뒤에 방문한 셈이다. 복호리 방문을 마치고 나오며 필자도 "오늘은 해가 어두워가니 참나무골에는 다음에, 꼭 가보아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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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형이 어린이 존중과 남녀평등 사상 가르친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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