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사상은 쌍놈들 개수작? 엄청난 자가당착"

[이 사람, 10만인] 민중사상 특강 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등록 2014.11.18 08:42수정 2014.11.1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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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따끔한 한 모금'은 굶어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뜨거운 눈물이다"며 "인류를 망치고 있는 자본주의 문명을 쓸어내기 위해 우리 모두 따끔한 눈물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오는 21일 조계사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나는 왜 따끔한 한 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 주제로 민중사상 특강을 열 계획이다. ⓒ 유성호


"따끔한 한 모금, 그건 뜨거운 눈물이야."

오는 21일 오후 7시30분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민중사상 특강을 여는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81)의 말이다. 이번 특강은 문화다양성포럼 등 16개 시민단체들이 공동 주최하는데, 백 소장이 잡은 제목은 '나는 왜 따끔한 한 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이다. 부제는 여든을 넘어 혼자 일어서기도 힘에 겨운 백발 투사가 '기쁨도, 분노도, 꿈도 모두 통속화된 세상에 던지는 벼락같은 말씀'이다.

'민중'이란 말이 나오면 아직도 가슴이 뛴다는 백 소장을 지난 13일 서울 대학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만났다. 민중과 함께 민중 사상을 나누고자 하는 그에게 특강 참석을 요청하는 홍보 동영상을 부탁했다. 그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직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종교와 철학을 공부한 전문가들, 예술가들을 민중특강에 초대했다.   


계급의식은 있는데 민중사상은 없다? 자가당착

"글 좀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민중의 역사적 실재는 인정해. 모든 생산관계에서 민중이 주체라는 걸 안다는 얘기야. 그런데 민중에게 사상이 있다고 말하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봐. 민중의 사상은 없다는 거지. 진짜 아무리 책을 찾아봐도 계급의식은 있는데 민중 사상은 없어. 이건 엄청난 자가당착이자 모순이야."

백 소장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중사상 특강을 여는 까닭이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민중사상을 정립한 것일까? 배가 고파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보챘던 어릴 적, 어머니와 친척들이 들려줬던 이야기 속에 민중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들어 있었다고 했다. 또 독재와 온몸으로 부딪쳐왔던 길거리에서 민중들과 함께했고, 자본의 횡포에 거리로 쫓겨난 노동자들의 몸부림을 보면서 민중사상을 세워나갔다고 한다.  

"지배계층과 자본은 민중을 '부셔'(적)으로 봤어. 수천 년동안 민중사상은 쌍놈들의 개수작으로 본거지. 자본주의 씨앗이 커지기 시작한 3백 년 전부터 민중 사상을 때려 부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어. 민중사상은 죽임을 당해온 거야. 그런데 모든 생산의 주체인 민중에게 사상이 없다고? 몸부림치고 생각하고 웃고 우는 것이 바로 사상이야. 논리를 세우고 이론을 만들어서 글로 정리해야만 사상인가?"


그는 "글이 아니라 말 속에, 수천 년동안 입으로 전해 내려온 이야기 속에 민중 사상이 들어있다"면서 어릴 적 '돼지 기름떼이를 먹고 싶다'고 울던 그를 달래면서 큰아버지가 들려준 '꼴굿떼'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줬다.

아직도 꼴굿떼는 산골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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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중사상 특강을 여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꼴굿떼의 '꼴'은 꼴리는 놈들이야. 꼴린다는 것은 화가 났다는 말이야. '굿'은 꼴리는 놈들이 모여서 굿을 한다는 거지. 그러니까 옛날 머슴들은 눈이 펄펄 내리는 날, 사랑방에 모여서 새끼를 꽈. 그 때 배도 고프고 심심하니까, 늦게 꼬는 놈이 남의 집 장독대에서 동치미를 훔쳐오는 내기를 했어. 동치미는 개도 안 먹으니 개도 짖지를 않아.

그런데 동치미를 먹으면 배가 부르나? 빈속이 더 쓰려. 머슴들이 약도 오르고 절망할 때, 샥~샥~샥~하면서 창호지 문을 뚫고 화살이 날아들었어. 그 화살 끝을 보니 쪽지가 붙어 있더란 말이야. 머슴들이 그 쪽지를 펴보니, 이런 말이 적혀 있어.

'야! 이, 무식한 무지렁이들아. 너희들은 배알이 안 꼴리냐? 낫을 들고 나서라. 우리랑 함께 싸우자. 그러면 고기에 이팝(쌀밥)은 실컷 먹여줄게.'

그 쪽지를 보고 산으로 올라온 놈들이 있어. 이 놈들에게 차례로 물어봤지.

'넌, 뭐가 꼴려서 왔냐?'
'가슴이 꼴려서 왔습니다. 사랑하던 계집을 주인한테 빼앗겼어요.'
'그럼 넌, 어디가 꼴렸니?'
'눈깔이 꼴렸습니다. 주인은 소 돼지 잡아먹고, 갈치 구워 먹는데 나는... 고기 실컷 먹을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그럼, 넌?'
'머리가 꼴려서 왔어요. 나라에 명주를 짜주는 일을 하는데, 놈이 자를 속여서 열 필을 다섯필이라고 우기잖아요.'

그런데 이듬해 봄에 이 놈들이 들고 싸우던 죽창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가겠다는 거야. 가슴이 꼴린 놈은 멀리서라도 옥녀를 봐야겠다, 눈깔이 꼴린 놈은 먹을 것 못 먹어도 농사 짓는 놈은 농사를 지어야겠다, 머리가 꼴렸던 놈은 나라님이 자를 고쳐주겠다고 편지를 보내왔다는 거야. 그런데 끝까지 남은 놈들이 있어. 발가락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온몸으로 꼴리는 놈들이지. 지금도 그 놈들, 꼴굿떼는 산골짝에서 싸우고 있어.

이봐, 요즘 다들 월급 좀 받는다고 안주하면서 살아가고 있잖아. 발로 톡 차면 무너질 독점 자본주의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잖아. 난, 이들에게 민중사상의 원형이 서려 있는 옛 이야기를 하고 싶어. 이 이야기를 깨우치고 난 뒤에 그렇게 울었어."

초등학생 구두닦이가 준 시커먼 가래떡

이 이야기를 들려줬다는 백 소장의 큰아버지는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3년, 그 뒤에 진보운동을 하다가 9년을 옥살이한 분이라고 한다. 큰아버지는 일제 때 감옥에서 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두 손바닥이 뚫려서 매달렸는데, 그가 죽을 때까지 한쪽 손바닥은 구멍이 뚫려 있었단다. 손바닥으로 한쪽 눈을 가린 뒤에 그 구멍으로 어린 백 소장을 들여다보면서 "기완아, 깨꿍! 기완아 깨꿍!"하면서 웃기곤 했던 그가 전해준 이야기, 즉 민중 사상은 글이 아니라 옛 이야기의 가슴 속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 선생님이 그토록 먹고 싶다는 따끔한 한 모금은 무엇인가요?
"어릴 적 배고프다고 하는 말을 '따끔한 한 모금'이라고 했어. 따끈한 미역국 한 그릇에 기름이 찰찰 흐르는 쌀밥 먹고 싶다고 하지 않았어. 거지새끼들이 만날 '따끔한 한 모금'을 달라는 말만 하고 다녔어.

난 어릴 때 북쪽에서 서울로 왔는데, 7년 동안 1전도 못 써봤어. 지금 돈으로 100원이야. 길을 가는 데 한 초등학생이 양놈 구두를 닦다가 얻어맞고 있더라고. 잘못 닦았다는 거지. 그래서 내가 그 양놈을 두드려 팼어. 그 놈이 도망을 간 뒤에 초등학생이 시커먼 손으로 자기가 먹으려고 남겨뒀던 구두약 묻은 시커먼 가래떡을 주더라고. 눈물이 났어. 그게 바로 따끔한 한 모금이야. 뜨거운 눈물이지."
  
자본주의의 썩은 늪에 던진 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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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소장은 "민중 사상의 관점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는 몇 점이냐"는 질문에 "빵에 빵점, 즉 빵점의 제곱이다"고 점수를 매겼다. ⓒ 유성호


- 요즘 시대에 무엇을 상징하나요?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게 뜨거운 눈물이야. 이걸 형상화한다면 한 잔 술이지. 한 잔을 마시면 피가 돌고 몸은 약간 풀리지만 그 몸을 꽁꽁 묶고 있는 역사적 현실은 안 풀려. 내 몸만 풀리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역사적 현실을 변혁해야 진짜 우리 몸이 풀리는 거야.
 
새뚝이(현상 타파의 주인공)라는 말이 있어. 썩은 늪에 솔방울을 한 개 던지면 퐁당~ 하면서 썩은 늪의 현상은 타파돼. 박근혜 정부는 침묵까지 삼키는 자본주의의 썩은 눈물이자 늪이야. 이 썩어 문드러진 늪을 깨뜨리는 게 새뚝이인데,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려야 해."  

- 민중 사상의 관점에서 봤을 때 역대 대통령에게 점수를 주자면?
"가릴 것 있나? 그냥, 모두 빵점이지 뭐."

- 박근혜 정부는 어떤가요?
"빵에 빵점, 즉 빵점의 제곱이야."

- 통일을 열망하는 마음으로 연구소 문을 여셨는데, 통일 대박을 외친 박근혜 정부는 이번에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을 연기했습니다. 민중사상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우선 통일대박은 도박장의 말이야. 돈 놓고 돈 많이 따는 게 통일이 아냐. 분단선은 우리가 그은 게 아냐. 정확하게 말하면 침략상황에서 그어진 거야. 지금이라도 이걸 물리쳐야 하는 거야. 통일은 이 상황에서 자주성을 획득하는 일이지. 그런 걸 이야기하지 않고 통일 대박? 그런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범죄야. 그런데 말이지, 우리 사회는 돈 있는 놈과 돈 없는 놈이 딱 갈렸어. 남북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분단이 내재화됐어. 이걸 보편화하는 게 통일의 된깔(본질)이야.

그리고 군대는 이 땅의 사람들 생명과 평화, 번영을 지켜야 해. 자기 나라가 군사 작전권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미국은 자기 나라의 번영을 위해 작전권을 갖고 있는데 전쟁이 나면 우리나라 이익을 위해 싸우나? 우리나라 군대는 군대이기를 포기한 거야."

밤꽃에 맺힌 이슬 한 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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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중 "작품을 살 사람이 있는지 찾아봐달라"며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자신의 일대기에 실었던 뿔로살이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백 선생은 "얼마나 형상화가 잘 됐냐. 화가 나서 핏대(뿔대)로 사는 짐승을 뿔로살이라고 한다"며 "뿔로살이는 아무나 들이 받지 않는다. 사람을 못 살게 굴고 짐승을 못살게 굴고 자연을 못살게 구는 놈만 들이 받는 짐승"이라고 작품을 설명했다. ⓒ 유성호


- '따끔한 한 모금'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따끔한 한마디'가 있다면?
"민중의 사상은 이슬이야. 그냥 이슬이 아니라 하얀 밤꽃에 맺힌 이슬이야. 밤은 혼자 먹는 게 아니지. 다람쥐도 먹고 사람도 먹어. 또 이웃끼리 나눠먹지. 밤꽃에 맺힌 이슬같이 모든 것은 통합해서 한 개를 만드는 게 민중사상이야. 우리 모두가 자본주의의 탁류를 거스르는 밤꽃에 맺힌 한 방울 이슬이 되자는 거야."

이번 특강에서 '버선발 이야기' '쇠뿔이 이야기' '달거지 이야기' 등을 나누면서 민중해방의 된깔을 풀어놓겠다는 백 소장은 인터뷰를 마친 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으로 가입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료로 보는 오마이뉴스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자발적 유료 구독회원으로 가입한 것이다. 그는 8300여명의 10만인클럽 회원 중 두 번째로 최고령자이다. 

"요즘 보면 언론이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 써. 옛날 임금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띠따 소리(폭력적인 명령)를 냈는데, 언론은 거짓말 대행업자가 돼선 안 돼. 거짓말을 갈라 쳐야 해. 이런 걸 괏따 소리라고 하는 데 언론은 터무니없는 명령을 깨뜨리는 우리 민중의 아우성을 전해야 해."

 
첨부파일 15.jpg
#백기완 #민중사상 특강 #따끔한 한모금 #10만인클럽 #이사람, 10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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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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