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하면 '펍'... 여기 못 가면 후회합니다

[아일랜드 여행 스케치 ⑧] 템플바가 어디에요?... "여기가 모두 템플바!"

등록 2014.11.30 19:27수정 2014.11.30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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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템플바(Temple Bar) 모습. 원색으로 칠한 붉은 페인트 벽에 고색창연한 그림과 간판들. 기네스 맥주의 이름이 새겨진 벽, 상점 곳곳에 달아둔 녹색 꽃 화분, 낡은 나무 테이블까지 템플바 주변에의 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이다. ⓒ 김현지


새로운 곳을 여행하면 으레 그곳의 유명한 장소부터 찾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정형화된 여행의 특징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기네스' 맥주의 나라로 더 알려진 아일랜드. 아일랜드 여행을 와서 펍(Pub, 맥주 가게)을 가지 않는 것은 파리에 가서 에펠탑에 가지 않고, 런던에 가서 빅벤을 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아이리시 펍은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블린을 비롯한 아일랜드에는 다양한 펍이 있다. 어쩌면 기념품 가게보다 펍을 찾기가 더 쉬울지도 모른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에 이런 말이 나온다.


"펍을 피해서 더블린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퍼즐게임을 벌이는 것과 같다."

아이리시들도 한국 사람처럼 맥주를 비롯한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아이리시들의 이런 성향을 반영하듯 아일랜드엔 펍 문화가 발달했다. 세계에서 술을 가장 많이 마시는 나라를 꼽으면 항상 상위권을 달리기도 한다.

템플바라는 이름을 가진 다양한 펍들 ⓒ 김현지


아일랜드의 문화가 숨 쉬는 곳, 펍

아일랜드에서 이야기하는 펍은 'Public house(퍼블릭 하우스)'의 약자로 맥주와 음식을 판매하는 곳을 말한다. 한국의 일반적인 주점과 비슷한 개념이지만, 이곳에서의 펍은 훨씬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단순히 술을 마시고 음식을 먹는 것을 넘어서 우리나라의 카페에서 커피를 시키는 것처럼 술 한 잔 시켜 놓고 몇 시간씩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독서 토론회를 하기도 한다.

또 축구 경기가 있는 시즌에는 아일랜드의 펍은 축구를 응원하는 장소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는 아이리시 전통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젊은이들이 많이 가는 트렌디한 펍에서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 연주회가 열리기도 한다. 더블린 어디를 가든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지만, 펍의 실내에서는 기본적으로 금연이 원칙이다.


더블린의 어느 곳이나 아이리시 펍을 만날 수 있지만 '템플바' 구역은 유난히 전통 아이리시 펍들이 많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펍은 붉은 벽돌로 지은 템플바(Temple Bar)라는 곳이다.

처음 템플바를 찾으면서 겪었던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유명한 곳은 한 번 가봐야 될 것 같아 지도를 보며 템플바를 찾아갔다. 그런데 내 생각과는 달리 지도에 표시된 구역에 들어가니 템플바라는 이름이 하나가 아니라 여기도 템플바, 저기도 템플바가 있지 않겠는가? 분명히 내가 아는 템플바는 모퉁이에 있는 붉은색 건물이었는데 말이다. 그 근처를 한참 헤매다가 안 되겠다 싶어 한 술집에서 나온 여자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다.

"템플바가 어디에요?"
"엥? 여기가 템플바인데?"
"아니, 아일랜드 관광 엽서에 많이 나오고, 붉은색 벽돌 건물에..."
"그런 곳이 있어? 잘 모르겠는데?..."

템플바 푸드 마켓 ⓒ 김현지


이런 황당한 경우가! 그 구역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아일랜드의 유명한 관광 명소를 모르다니! 처음에는 '내가 길을 잘못 들어왔나?'라고 생각했고, '그 종업원이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나?' 라는 의문도 들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외국인들은 다 아는 템플바를 그 근처에서 일하는 사람이 모를 수가 있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만난 사람을 통해서 그 의문은 풀렸다.

여기서 말하는 템플바는 어떤 한 술집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그쪽 구역을 전부 통틀어 템플바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토록 찾던 템플바는 17세기 초, 트리니티 대학의 학장이었던 윌리엄 템플의 집과 정원이 있었던 곳에 지어진 술집이라 유명해진 것이라는 걸 알게됐다. 그 여종업원의 말대로 그쪽이 모두 템플바인 게 맞았다. 

유명세와 달리 짧은 역사를 가진 템플바 구역

더블린에서 가장 활기가 넘치는 템플바 구역. 울퉁불퉁한 자갈이 깔려 있는 길이 보이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의 언어가 섞인 곳을 찾으면 템플바의 중심 구역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시각, 청각, 촉각으로 느낄 수 있다. 전통 아이리시 펍과 정말 잘 어울리는 템플바의 자갈길은 중세 시대에 말들이 지나다니던 길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아 이 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템플바 구역의 역사의 시작은 1980년대 초반으로, 오히려 더블린의 유명한 구역들 중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이곳은 19세기 동안 천천히 쇠퇴해가던 곳으로 20세기 초반에는 버려진 건물들과 함께 도심의 슬럼화가 가속화돼 희망이 없던 곳이었다.

1980년 초반 CIÉ(Córas Iompair Éireann)라는 회사에서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버스 터미널 건립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주민의 항의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그 대신 템플바 부흥을 위한 주민 조직이 결성됐다. 더블린 문화의 중심으로 템플바를 부활 시키려는 계획이 추진된 것이다. 그 결과 현재의 템플바가 탄생했고, 세계 각지로부터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더블린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다.

더블린의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거리

템플바 북 마켓 ⓒ 김현지


템플바 구역에는 많은 펍들과 함께 관광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볼거리들이 다양하다. 중앙광장에서는 주말마다 다양한 이벤트를 열리는데, 토요일마다 문을 여는 템플바 푸드 마켓은 작은 규모이지만 "여기가 유럽이야!"라고 외치듯이 소박한 멋과 재미를 선사한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오는 날씨 탓에 템플바 오픈 마켓 위에 설치된 자이언트 엄브렐라(Giant Umbrella)라고 불리는 커다란 나뭇잎 모양의 천막은 아일랜드 건축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그 사실을 모르면 '그냥 천막치고는 좀 특이하네?'라는 느낌이겠지만, 알고 보면 훨씬 더 멋져 보이는 신기한 현상도 경험하게 된다.

그 밖에도 중앙광장 근처에서는 주말마다 책, 골동품 등을 판매하는 북 마켓과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디자이너 마트도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주말의 템플바 구역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아이리시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다면, 거리의 공연과 재래시장, 갤러리, 독립영화 등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솔직한 모습의 더블린을 느끼고 싶다면 템플바로 가자. 주말 하루의 반나절 정도, 아니 하루는 이곳의 매력에 흠뻑 빠질 수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템플바 구역 정보: http://www.templebar.ie/markets
템플바 푸드 마켓(Temple Bar Food Market): Every Saturday, 10:00 – 4:30 pm @ Meeting House Squre
템플바 북 마켓(Temple Bar Book Market): Every Saturday and Sunday, 11:00 – 6:00 pm @ Temple Bar Square
템플바 디자이너 마트(Temple Bar Designer Mart): Every Saturday, 10:00 – 5:00 pm @ Cow’s Lane
#아일랜드 #더블린 #템플바 #아이리쉬 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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