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아이들의 미소밍글라바 한마디에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전병호
나는 유치원을 검정고시로 나왔다. 1970년대, 충청도 칠갑산 언저리 산골 마을에 유치원이 있을 리 없었다. 형,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유치원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산과 들에서 온몸으로 배웠다.
딱 한 번 유치원 과정과 비슷한 경험을 맛본 적 있다. 6살 때쯤 어느 겨울날로 기억한다. 이웃 마을에 교회가 생겼는데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다며 동네 꼬마들은 모이라 했다. 곤궁했던 시절 누군가 선물을 준다는 것은 일상의 큰 사건이다.
수줍음 많이 타는 산골 꼬마들도 선물 준다는 말에 없는 용기를 냈다. 동생 손을 잡고 아이들이 모인 마을 회관으로 갔다. 회관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릴 때 누군가 우리를 불렀다.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힐끗 보니 천사같은 여자 선생님이 웃고 있었다.
"꼬마 친구들, 어서 오세요. 괜찮아요. 들어 오세요."서울말이 신기했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는데 선생님이 우리 손을 잡고 이끌어 못 이기는 척 들어갔다. 그곳에 이미 동네 꼬마들이 선녀같은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노래를 따라 배우고 있었다.
"루돌프 사슴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어떤 뜻인지는 몰랐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배웠다.
"안녕하세요?" 서울식 인사법도 배웠다. 노래는 그럭저럭 따라 하겠는데 서울식 인사말은 영 어색했다. 왠지 얼굴이 화끈거리고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종갓집의 종손이자 조선의 마지막 선비라 불렸던 할아버지는 늘 어린 손자에게 본관은 담양이고, 뇌은파 28대손이라며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가르쳤다.
특히 상놈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며 어린 시절부터 어른을 만나면 "진지 잡수셨슈?"하며 인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런 우리에게 "안녕하세요?"는 참 어색하고 낯부끄러운 서울식 인사말이었다. 참 수줍음 많은 촌놈들이었다.
미얀마 사람들의 인사 방법
▲따웅지에서 만난 빠오족 아저씨밍글라바 인사를 했더니 무엇인가 많이 설명해 주셨다.. 아마도 따웅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던 것 같다, 미얀마말이라 다 못알아 들었어도 고마운 아저씨다.
전병호
"밍글라바."처음 배운 미얀마 말이다. 밍글라바(Mingala-Ba)는 우리말로 "안녕하세요?"쯤 되는 인사말이다. 미얀마어 선생님은 이 말을 가르쳐 주며 다른 말은 몰라도 이 말은 절대 잊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 덕분에 미얀마를 방문해 자연스럽게 이 말을 가장 많이 썼다. "밍글라바"라고 인사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환하게 웃으며 우리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해주는 게 신기하고 기분이 좋았다.
하루 이틀 지나면서 사람을 만나면 자동으로 "밍글라바"를 던졌다. 그런데 얼마 뒤, 미얀마 사람들끼리는 "밍글라바"를 잘 안 쓴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끼리는 다른 말로 짧게 한마디씩 던지거나 고갯짓을 하며 웃고, 손을 올려 반갑다는 표시를 했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호기심 천국형'인 나는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는 현지 미얀마 사람들끼리는 인사할 때는 "밍글라바"를 거의 쓰지 않는다고 했다. "밍글라바"는 마치 문어체처럼 공식화된 말이고, 실생활에서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사찌 삐비라(밥은 먹었어?)"같은 가벼운 말로 인사를 한다고 한다.
더 친한 사이에서는 이마저도 안 쓰고 눈짓, 몸짓으로 인사한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뒤로 자세히 관찰해보니 미얀마 사람들끼리는 눈짓, 몸짓으로 또는 수화처럼 간단한 신호로 대화하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에서 수줍음 많이 타던 어릴 적 내 모습이 보였다.
나는 지금도 친구를 만나면 충청도식 인사를 한다. 오랜만에 만나도 긴말보다는 어깨를 툭 치거나 손을 한 번 올리는 것이 인사의 전부다. 미얀마 사람도 이런 식으로 인사를 하니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 만달레이 어느 마켓에서 젊은 직원 둘이 서로 손가락 다섯 개 끝을 모았다 폈다 하면서 눈짓으로 웃는 것을 보았다.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나도 저런 몸짓 언어 하나쯤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찌 삐비라."
▲인레 호숫가에서 만난 할머니밍글라바 인사를 했더니 수줍은 미소로 우리 손을 잡아 끌어 방에 들이고 해바라기씨와 미얀마 과자를 먹으라며 권했다. ‘사찌 삐비라(밥은 먹었어?)’ 정서를 느끼게 했다.
전병호
"밥은 먹었어?" 정도로 해석되는 이 말. 설명을 들으니 "진지 잡수셨슈?"가 생각났다. 왜 하필 '진지 잡수셨냐'는 말이 인사말이 됐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밥은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것이다. 배고팠던 시절 한 끼 밥을 먹는 것은 '안녕'의 중요한 요소였다. 따라서 '밥 먹었냐"라는 인사는 사람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듬뿍 담긴 친근하고 정감 가는 인사말인 것이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거기서 거기이다. 친근한 일상의 인사말은 우리나 미얀마나 매한가지이다.
미얀마에서 수백 번을 듣게 될 "밍글라바"라는 인사말에는 예전 우리가 그랬듯이 수줍은 미소의 인사가 들어 있다.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 사는 모습을 들여다봐야 한다. 미얀마도 마찬가지다. '밍글라바' 속에 들어 있는 수줍은 그들의 속마음을 이해하면 미얀마를 훨씬 더 이해할 수 있다.
따웅지에서 생긴 일따웅지를 방문하니 도시 전체가 시장이었다. 거대한 시장을 종일 돌아다니며 미얀마 일상을 탐험했다. 양곤이나 만달레이보다 훨씬 작은 도시라 그런지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우리 일행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시선을 달고 다녔다.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하며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신기한 것은 용케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아봤다는 것이다. 그 후, 바간에서 마차 투어를 할 때 궁금해서 미얀마 현지인에게 한 번 물어봤다.
"중국, 일본, 한국 사람 모두 비슷하게 생겼는데 어떻게 단번에 한국사람을 알아보죠?"그랬더니 마차를 끌던 안내인은 살짝 짧은 영어로 한마디 흘렸다.
"모어 프리티, 모어 핸썸(더 예쁘고, 잘생겼어요)." 분명 좀 더 잘생겼다는 말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인을 알아본다는 것은 확실하다. 눈을 마주치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사람이 많다.
진짜다. 한 번 가보시라. 나중에 일행들과 이런 신기한 경험을 얘기해보니 일행 중에는 일본 또는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한두 번은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한 번도 그런 질문은 받아본 적이 없었다. 미얀마 사람들 눈에는 딱 봐도 내가 한국사람으로 보였나보다.
'그렇다면 내 얼굴이 '모어 프리티, 핸썸(more pretty, handsome)? 이거 미얀마에서 먹어주는 얼굴이라는 말인데, 미얀마에서 살아야 하나?'
▲바간에서 만난 자매밍글라바 인사를 했더니 “안녕하세요?” 우리말로 인사를 하며 반겨 주었다.
전병호
※알아 두면 유용한 미얀마어 기본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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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외국인이 우리말로 인사하면 호의를 갖는 것처럼 미얀마 사람들도 미얀마말로 대화하려는 외국인에게 더욱 호감을 표시한다. 미얀마를 방문한다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인사말 몇 마디를 배워 가면 큰 도움이 된다. 아래 표현 5개만 알고 가면 그 노력의 몇 배 대우를 받는다. 속는 셈치고 꼭 외워 보시길...
안녕하세요? = 밍글라바 감사합니다. = 째주띤바데 만나서 반갑습니다. = 뛔야다 완따바데 괜찮습니다. = 야바데 얼마입니까? = 벨라웃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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