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밥이 어떻게 선택사항이냐고

[중국어에 문화 링크 걸기 99] 飯

등록 2014.12.23 15:11수정 2014.12.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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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반(飯, fan)은 거울에 비쳐진 사물, 동작이 반대(反)로 비쳐지듯 두 사람이 마주앉아 식사(食)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 漢典


한국인의 식탁에서 밥은 지배적 패권을 지닌다. 모든 요리가 밥을 먹기 위해 만들어지고 또 존재한다. 밥은 '요리'라는 수많은 신하를 거느린 황제다. 밥이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요리는 비로소 식탁에 와 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요리를 주문하고 공깃밥도 함께 달라고 하면, 의아해하며 정말 함께인지 확인해 되묻을 때가 많다. 중국인들은 요리 자체를 밥처럼 생각하며 충분히 즐기고, 그래도 좀 부족하다 싶으면 마지막에 밥이나 면을 추가하는 정도다. 아니 밥이 어떻게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란 말이야 하고 화가 난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길들여지는 입맛은 가장 보수적인 문화현상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밥을 주식으로 먹지만, 면이나 빵이 주식인 사람들도 많다. 중국에서도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남방은 밥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쌀밥을 떠올리지만, 밀을 주식으로 하는 북방에서는 밥하면 식사의 의미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밥 반(飯, fàn)은 의미부인 먹을 식(食)에 소리부인 되돌릴 반(反)이 결합된 형태이다. 식(食)은 뚜껑이 있는 그릇에 담긴 밥을 나타낸 상형인데, 두 번째 획까지가 뚜껑이고 세 번째 획은 밥에서 김이 나는 모양을 나타낸다. 반(反)은 절벽(厂)을 손(又)을 뒤집어 잡으며 기어 올라감을 나타내다가 점차 '되돌리다, 반대'의 의미가 생겨난 걸로 보인다. 그러니까 밥 반(飯)은 거울에 비쳐진 사물이나 동작이 반대(反)의 모습으로 비쳐지듯이 두 사람이 마주앉아 식사(食)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 셈이다.

밥과 관련하여 한신(韓信)의 일반천금(一飯千金)이 유명하다. 한신이 어려서 부모를 여위고 몹시 가난해 밥을 구걸하며 살았다. 낚시를 해서 허기를 채우곤 했는데, 그런 한신을 가엽게 여긴 빨래터의 한 할머니가 밥을 주며 돌봐주었다. 한신은 나중에 초나라의 왕으로 금의환향하여 자신에게 밥을 주었던 할머니를 찾아 금 천 냥으로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

두보(杜甫)도 <위자승에게 바치는 스물 두 번째 시(奉贈韋左丞丈二十二韵)>에서 "늘 은혜 갚을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그 생각만 품은 채 대신의 곁을 떠납니다(常擬報一飯, 況懷辭大臣)"라고 하고 있는데, 불우한 자신의 30대를 돌봐 준 위자승 위제(韋濟)의 곁을 떠나면서 한신의 보일반(報一飯)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밥은 사소한 일상이면서 동시에 치명적인 일상이다. 밥은 우리 삶에서도 여전히 지배적 패권을 쥐고 있는 듯하다. 누군가의 사소한 일상이 궁금하면서도 행여 그 삶의 치명적인 것을 건드릴까봐 조심스럽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문득 생각난 듯 묻는가 보다. "밥은 먹고 다니냐?" 하고 말이다.
#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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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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