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홍재
운전석 앞 유리 와이퍼에 노란 은행잎이 끼워진 줄 알았습니다. 얼마나 차를 몰고 갔을까요? 이면도로에서 큰 도로로 나와 제법 속도를 냈으니 낙엽이 바람에 밀려 도로 위로 제자리를 찾아간 줄 알았는데, 바람에 날리기만 하지, 계속 붙어 있더라고요. 세월의 아픈 자국이 가슴 한 편에 자리한 것처럼요.
한밤중이라 어두웠으니 낙엽인지, 메모인지 몰랐어요. 엑셀을 깊게 밟았던 내부 순환도로에서도 떨어지지 않고 잘 견뎠나 봅니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내려 거슬리는 그 무엇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도대체 저게 뭘까? 궁금증이 날 자극하더군요. 그런데 손바닥만한 노란 줄무늬 종이였습니다. 한 장도 아니고 그것도 두 장이 겹쳐 함께 있었습니다.
"어떻게 바람에 날리지 않고 이렇게 두 장씩 함께 붙어 있었지? 신기한 일이네!"
낙엽이 아닌 종이인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종이에 뭐가 쓰여 있을까?' 궁금증이 좁혀졌습니다. 궁금증은 더 깊어만 갔습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란 줄무늬 종이 위에는 "안녕하세요? 지나가다 메모를 남깁니다" 등 구구절절하게 차량 파손(경미한 정도였습니다)에 대한 상대방 차량 운전자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과 염려가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전 그 글을 읽고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습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멋진 친구도 있구나, 훨씬 감성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사람도 있어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세상이구나! 내가 참으로 멋진 세상을 살고 있구나!'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그 메모를 보여주며 함께 칭찬하기도 하고 떠들며 웃기도 했습니다. 그 일은 제게도 세상이 아직 멋지고 따뜻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 계기가 됐습니다. 메모의 위력이 그렇게 큰 줄 미처 몰랐습니다.
메모를 소중히 챙겨 가방 속에 넣고서야 그 자리를 뜰 수 있었습니다. 차량 앞 범퍼에 약간 긁힌 자국 있었기에 경미한 접촉이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됐지' 하고 며칠을 지나 보냈는데 가방 속에 담겨있던 메모를 다시 보게 됐습니다. 그 때 누가 이런 멋진 메모를 썼는지 또 궁금증이 발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메모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그래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통화를 하니 자연스레 보상 얘기를 꺼내더군요. 전 보상 때문에 전화를 드린 것이 아니라 누구인지 알고 싶었다고 하자 굳이 보상을 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꺼낸 얘기가 "그럼 메모를 남겨둔 분께서 이번 교통 사고로 보험 수가가 올라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험 처리를 하겠다. 보험 회사에서 보험 수가에 영향을 미치면 보험처리 요청하지 않고 그냥 차를 타고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보험 회사에 문의했더니 보험 처리 해도 가해 측 보험률 변동이 없고, 차기 년도 보험료에 전혀 이상이 없다고 해서 저도 보험 혜택까지 받아 범퍼 도색을 마쳤습니다. 참고로 저도 얼마 전 경미한 접촉 사고가 있었는데 똑같이 메모를 남겼더니 상대방이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메모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로 시작하시더군요. 선행은 파급 효과가 큰 거 같습니다. 메모하신 분에게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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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험을 많이 한 대한의 청년입니다. 매사에 적극적 사고방식과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이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어떻게 살아야 바른 삶을,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길인가를 고민하면서 베푸는 삶이야 말로 진정한 삶이라고 예찬하고 싶은 대한의 한 청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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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옆을 긁은 게 아닌가해서 메모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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