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수녀님은 '윤경이가 엄마 병이 걸렸다. 데려가려면 일주일씩 데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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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족이 힘을 모아 입양을 했기에 얼마든지 윤경이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저 잘 먹이고 잘 입히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장애가 뭐고 현실이 어떤지도 알지 못했다.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는 윤경이를 위해 가까운 지방으로 일 주일에 세 번씩 일 년을 다녔다. 시설에서 소개해 준 곳이었다. 뒤늦게 사는 곳에서 가까운 물리치료실을 찾았고 지금까지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매일 다녔다. 월요일 감각작업, 화요일 미술심리, 수요일 작업물리, 목요일 언어하고 물리, 금요일 작업물리. 그렇게 윤경이를 데리고 다니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윤경이의 머릿속에 있는 호수관에는 항상 물이 차는데 수압조절을 해야 했다. 윤경이가 태어나고 처음 수술했던 곳까지 찾아가 왼쪽에 있던 호수관을 오른쪽으로 다시 꼽는 재수술을 했다. 뇌수술을 위해 머리를 깎은 윤경이 모습에 또 한 번 한 바가지 눈물을 쏟아냈다. 윤경이 다섯 살 때였다.
십 년 병수발을 했던 시어머니의 빈자리를 윤경이가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 삶은 누군가를 위해서 빈틈없이 시간을 보내야지만, 살아지게 되어 있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순간 윤경이로 시작해서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윤경이로 마감이 되는 일상을 살았다.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은 그런 엄마를 이해하지 못했다. 애들도 다 잘 키워 놨고 십 년 죽도록 몸 고생만 시켰던 시어머니도 돌아가신 마당에 어린 아이를 그것도 장애까지 있는 아이를 데려다 만날 따라다니면서 허청허청 뒷수발 드느라 옴짝달싹 못하는 '미친년'이라고 했다.
한 번은 윤경이와 함께 길을 걷다 큰 딸 아이 학교 학부모를 우연히 만났는데 '혹시 이 아이 큰 딸이 사고 쳐서 낳은 아이 아니'냐는 는 말까지 들었다. 처음 윤경이를 입양할 때, 조심스럽게 우려했던 부분이었는데 역시나 사람들의 저급하고 천박한 호기심에 진저리가 처진 적도 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듣기 고통스러운 말은 윤경이가 나중에 크면 학교생활도 사회생활도 못할 건데 무슨 그렇게 지극정성을 하느냐는 말이었다. 윤경이가 내게 온 순간부터 엄마로서의 삶과 모든 시간은 윤경이를 위해 존재하기 시작했는데 이런 말을 듣는 순간은 정말이지 가슴에 커다란 대못이 박히는 기분이었다.
윤경이를 키워오는 지금까지 사람들의 이런 편견과 가벼운 호기심에 지쳤다. 윤경이를 향한 가족들의 삶과 진심된 마음을 알아주는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적어진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편견과 호기심과는 무관하게 두 살 반에 와서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배밀이나 겨우하던 윤경이는 무럭무럭 잘 커주었다. 오랜 기간 끈질긴 물리치료 덕분인지 읽고 쓰는 거 빼고는 모든 게 훨씬 좋아졌다. 신생아 때 있었던 뇌병변은 완치 판정을 받았고 뛰는 데는 조금 무리가 있지만, 걸음은 곧잘 걷고 계단도 잘 오른다.
물리치료에 드는 비용과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영상물 판독으로 지적장애 2급으로 장애등록을 했지만, 말도 잘 하고 잘 돌아 다니고 대소변도 혼자 다 처리한다.
오히려 윤경이를 담당했던 신경외과 의사가 윤경이를 대상으로 논문을 쓰고 싶다고 할 만큼 뇌에서 보이는 소견과 윤경이의 실제 상태는 판이할 정도다.
미국에 있는 동생 제시카네 가족과는 트위터로 연락을 계속 하고 있다. 매년 생일이 돌아오면 선물도 주고받고 사진도 보내고 받는다. 제시카 양부모를 한국으로 초청해서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손발도 쓰지 못하지만,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제시카도 양부모의 넉넉한 사랑 속에 살아간다.
윤경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엄마가 참관해야하지만 한국에서 장애로 살아간다는 건 참으로 고단한 일의 연속이다. 그런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고통을 배로 감수해야 한다. 윤경이 초등학교 입학할 때 일이다. 유치원 다닐 때까지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윤경이 담임을 맡은 선생이 문제였다. 입학하기 전에 세 번이나 학교를 찾아가 윤경이 상태를 이야기 하고 입양 사실도 알리고 조심해야 할 사항도 전달을 할 만큼은 했다.
그런데 담임선생이 무조건 엄마가 옆에 앉아 학교 마칠 때까지 함께 있는 참관 수업을 하라고 했다. 읽고 쓰는 거 말고 다른 건 큰 문제가 없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참관 수업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윤경이는 학교에서 친구들을 마음껏 사귀고 즐겁게 학교를 다닌다. 몸무게 17kg으로 얼굴도 귀엽고 예쁜 윤경이는 주위 사람들에게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능력이 있다. 어딘가 모자라면 다른데서라도 제 생존능력을 키울 줄 아는 윤경이다.
그런 윤경이가 말하는 다섯 가족에 대한 평가를 보자. 아빠하고 오빠는 윤경이가 예뻐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제 서른 살 큰 언니는 안 봤으면 하는 무서운 사람 훈육대장이다. 스물여덟 작은 언니는 가장 만만한 사람이다. 스무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있지만, 집에서 싸울 때 거의 비슷한 수준의 대화로 싸움을 하는 유일한 사람이 작은 언니다. 그리고 엄마는 그냥 아무렇게나 놀다가 무심코 뒤를 돌아 봤을 때 항상 제 뒤에 있는 사람이다. 대체 누가 이렇게 뻔한 속마음을 지니고 있는 윤경이를 보고 장애라고 놀리고 업신여길 수 있단 말인지.
이제 남은 문제는 초등학교 2학년 윤경이의 미래다. 엄마 나이가 벌써 오십대 중반을 넘었다. 큰 딸은 엄마 아빠가 언젠가 가고 나면 윤경이는 자기들의 몫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시내에 시어른들이 남겨 준 3층 단독주택을 개조해 일층에는 카페를 내서 윤경이 몫으로 남겨 줄 예정이다.
2층과 3층에는 언니 둘을 함께 살게 할 생각이다. 큰 딸은 그걸 즐겁게 각오하고 있는 것 같다. 결혼 상대의 첫째 조건이 윤경이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다. 다만 큰 언니는 윤경이가 지나치게 과보호되는 그런 어른으로 성장하는 걸 반대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하도록 도움을 주는 게 가족들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윤경이 앞으로 장애연금과 입양수당을 합쳐 매달 나오는 80만 원을 가급적 축내지 않고 저축하고 있다. 부모로서 쓸 수 없는 돈이다. 능력이 안 되면 그 돈이라도 헐어 병원비네 물리치료비용으로 써도 무방한 일이지만, 가능한 그 돈 만큼은 손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모르는 사람들은 돈을 받아 아이를 키우네 어쩌네 하지만 어디 그 돈 받고 한 번 키워보라고 하고 싶다. 길바닥에 뿌리는 돈도 모자라는 실정이라는 것을 며칠 만에 알게 될 것이다.
사십대 후반에 윤경이를 딸로 맞았다. 삼십대와 사십대를 고스란히 시어머니 병수발에 바쳤고 시어머니 돌아가시고 우울증이 찾아왔지만 윤경이가 그런 나를 구원했다. 이제 남은 인생은 윤경이를 위해 살다 갈 것이다. 다른 자식들이야 다 커서 더 이상 엄마 손이 필요하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 자식들 덕에 요즘은 한 숨을 덜고 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깨어 일어나 잠들 때까지 온종일을 윤경이와 함께 했지만 학교를 보내고 나니 엄마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화, 목요일은 학교에 보내고 네 시까지 자유다. 토요일은 아침에 도자기 공방에 갔다가 성당 다녀오면 하루가 간다. 일요일에는 언니들한테 윤경이를 맡기고 바람 쐬러 줄행랑을 치기도 한다.
지금 윤경이는 저를 중심으로 하는 다섯 식구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중이다. 윤경이를 윤경이 엄마에게 내주었던 원장 수녀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
다섯 명이 주는 다섯 개의 사랑이 온통 윤경이에게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로 본 장애입양 |
통계청 지표로 2010년 장애입양은 모두 252건이었다. 이 중 국내입양은 47건 해외입양은 205건이었다. 2011년 장애입양은 국내가 65건 해외가 그보다 세배를 웃도는 210건이었다. 2012년 역시 국내장애입양은 52건에 그친 반면 해외장애입양은 148건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비장애아동의 국내입양은 해외입양에 비해 두 배를 웃도는 통계를 보여주었다. 아직 우리사회에 뿌리 깊은 장애에 대한 편견이 그렇지 않아도 편견을 벗지 못하고 있는 입양에 대해서도 예외를 두지 않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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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유목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을 거쳤다가 서울에 다시 정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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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딸이 사고쳐서 낳은 아이? 이젠 지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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