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고공농성... 집에선 몰라요"

[사람들이 만난 사람들 ③] LG유플러스·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고공농성자 강세웅·장연의

등록 2015.03.16 16:56수정 2015.04.08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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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사회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사람들, 그리고 잊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고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기획하여 인터뷰로 연재하고 있습니다. - 기자말


땅 위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월 6일 새벽, 두 명의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가 서울중앙우체국 앞 15m 높이 광고판 위에 올랐다. 작년 5월 27일에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차광호씨가 오른 구미 공장 굴뚝을 시작으로 씨앤앰 하청업체 노동자 강성덕·임정균씨가 오른 서울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 씨가 오른 평택 공장 굴뚝에 이은 네 번째 고공이다.

예정에도 없던 고공에 오른 두 사람, LG유플러스(이하 LGU+) 전남 서광주 고객센터 소속 강세웅(46) 씨와 SK브로드밴드(이하 SKB) 인천계양 행복센터 소속 장연의(43) 씨는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들은 ▲ 불법 하도급 근절 ▲ 장시간 노동 근절 ▲ 고용 보장 등을 요구하고, 원청인 LG유플러스와 SK브로드밴드가 적극적으로 교섭에 나서 이를 해결하라고 촉구하기 위해 고공행을 택했다. 지난해 12월 31일, 농성 50일만에 씨앤엠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땅을 밟은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 선택한 고공농성

서울중앙우체국 앞 광고판 내부 전경 서울중앙우체국 앞 광고판 안 좁은 공간에 두 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살고 있다. ⓒ 강세웅


- 두 분의 고공농성이 오늘(3월 13일)로 36일을 지나고 있습니다. 현재 농성장 상황은 어떤가요?
강세웅(아래 강) "건강은 아직까진 괜찮은 편이고요. 광고탑 안은 폭이 1m, 길이가 10m 정도예요. 그래서 좀 좁긴 한데요. 좁은 거 말고는 그런대로 지낼 만하고요. 좀 어둡고 그래서 랜턴을 쏘고 있고. 그런 상황입니다."

장연의(아래 장) "전체적인 이곳 농성장 분위기는요. 현재 SKB 복직투쟁으로 가 계신 조합원분들이 계셔서 인원이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잘 싸우고 있습니다."

- 두 분께서는 어떻게 통신 노동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저는 10년 전쯤 KT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고요. 4년 전쯤 SKB로 옮겨 왔어요. 일단은 일하는 상황 자체가 열악해요. 1주일에 70시간 이상 일하고, 휴일도 한 달에 2~3회 정도밖에 못 쉬어요. 그마저도 어떤 때는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쉬고요. 임금 같은 경우에는 건바이건(건by건; 업무 한 건당 그에 따른 보수나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보니까 일감이 없을 때는 임금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런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싶어서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게 됐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일을 시작한 지는 1년이 넘었는데 처음엔 너무 근무여건이 열악해 일을 그만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긴 근무시간에 비해서 저희들 급여는 계획을 세워서 미래를 설계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간신히 안 죽고 먹고 살 수 있을 정도? 시작하고 3개월 정도는 한 달에 한 번 쉴 정도로 일했고, 그렇게 일을 해도 유류비, 통신비 다 개인이 부담하다보니까 실제로 남는 게 없죠. 죽어라고 일은 하는 것 같은데 실질적으로 월급통장 보면 허탈한 기분이 들어요. 이렇게 회사가 근로 여건이 안 좋아서 그만두려고 했던 시점에 서울에서 노조가 새겼다는 말을 들었고요. 우리도 노동조합이란 걸 만들어서 근로여건을 개선해보자. 그렇게 같이 뜻을 함께 하는 기사들이 모여서 오늘까지 오게 된 거예요."

- 어떻게 고공농성까지 하게 됐나요?
"LGU+ 같은 경우 LG트윈빌딩 앞에서 총파업하기 전부터 노숙농성을 하고 했었죠. SKB도 마찬가지로 노숙농성을 해왔고요. 총파업에 들어와서 계속 집회도 갖고 교섭요구도 했었는데 전혀 진척이 없었어요. 교섭대리로 나선 경총이나 하청업체 사측은 정작 자신들은 책임이 없고 권한이 없다며 원청이 해결해줘야 된다고 미뤄요. 원청은 센터장이나 경총하고 얘기를 해라는 식으로 회피하고요. 그러다보니 교섭이 진전이 없었죠.

근데 또 총파업 들어가서 3개월 지나다보니 벌이가 없어 생계에 타격을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계속 시간끌기를 하니까 답답했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민들에게 알리려고 다른 시민단체나 노조원들하고 같이 하는 '오체투지 행진'을 계획했어요. 근데 그것조차 경찰들이 막아서니 달리 저희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죠. (관련 기사 : 오체투지단 막아선 경찰, 술냄새에 민간인 행세까지)

최후의 코너로 몰려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쌍차 분들도 그렇고 스타케미칼도 그렇고 이것저것 다해보고 나서 할 게 없으니까 올라오는 거예요. 올라올 수밖에 없어요. 현재 한국 분위기로서는 올라간다고 해결이 된다는 보장이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올라가야 매스컴에서 조금이라도 관심 가지고 보고 그렇더라고요."

- 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좋지 않다고 들었어요.
"일의 특성상 고객과 대면할 수밖에 없으니까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마찰이 생기게 되면 기사가 거기에 대해 책임져야 해요. VOC(Voice of Customer; 고객의 소리)를 통해서 클레임이 들어오면 적으면 10만원, 많으면 30만원까지 기사 임금에서 차감을 해요.

또 회사는 회사대로 영업이 필요하니 우리 기술자들한테 영업을 시키기도 해요. 영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긴 해서 덤으로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해요. 문제는 한 달에 한 건도 영업을 못하면 8만원, 10만원 또 임금 차감을 해요. 거의 강제죠, 강제. AS기사는 고정급체계인데요. 고정급이라서 한 건당 임금을 받진 않지만 시간으로 많이 압박당하죠. 원래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일하고, 야간근무를 하면 초과수당을 지급하는 게 맞는데 제대로 정산을 안 하죠."

"현장의 일을 좀 더 말씀드리면 SKB 같은 경우 전주(전신주 작업)를 많이 하게 되는데 원래 일몰 후나 악천후에는 작업을 하면 안 돼요. 근데 그것도 상관없이 9시, 10시까지 전주를 한다거나 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와도 할 때가 있어요. 센터에서 무조건 시키죠. 그래서 다치는 경우도 많아요. 안전장비 같은 게 지급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조차 지급이 안 되고요.

작업 환경이 열악한 것도 있지만 모뎀이나 셋톱박스는 폐기되어야 할 제품이 계속 교체장비로 나와요. 연한이 지났거나 현재 쓸 수 없는 것들이요. 고장률이 굉장히 높아요. 근데 결국 이 장비로 교체해야 하니 가입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게 돼요. 잦은 고장 때문에 클레임이 걸리면 어쩔 수 없이 현장 기자들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하죠."

- 이번 농성에서 LGU+, SKB 비정규직지부의 요구안은 무엇인가요?
"일단은 재하도급을 금지하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근로기준법 준수하라는 것.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기본급 지급하라는 것."
"헌법에 쓰여 있는 노동 3권 정당하게 인정해달라는 거. 이 정도입니다."

"집에서는 모르죠... 연대 올 때 가장 힘이 돼"

비오는 중에도 광고탑 위로 지난 2월 16일 LGU+·SKB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당 연대문화제에서 강세웅·장연의 씨가 우천 중에도 광고탑 위에 올라 연대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 노동당


- 고공농성이 장기화되면서 싸우는 이들도, 지켜보는 이들도 점점 힘이 들 텐데요. 농성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인들, 특히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건 어디 주변 분들에게 말하고 올라올 수 없죠. 약간 욱하는 심정이 있었어요. 2월 5일에 3차 오체투지 행진이 있었는데 기자회견 때부터 경찰들이 기자회견장 자체를 못 가게 건널목부터 차단시켜 버렸어요. 이건 엄연히 경찰들이 불법을 저지른건데, 불법을 저지르면서까지 막아버렸어요. 심적으로 억울했고, 분했고…. 그리고나서 2월 6일 새벽에 올라온 거라 주변에서는 아무도 몰랐죠. 집에서 언제 내려오냐 물어보시긴 한데 다행히 집이 광주라 그런지 제가 광고탑에 올라가 있는지는 모르고 계세요.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모르셨으면 해요."

"저도 올라오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고요. 얘기할 부분이 아니라 혼자 결정을 한 거였고요. 올라오기 전 날 어머니한테는 '멀리 가니까 설 전에는 못 들어갈 것 같다'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다음 날 바로 아시고 전화를 하셨는데 센터장하고 소사장하고 집에 찾아와서 제가 광고탑에서 저러고 있으니 내려오라고 해달라며 선물을 가져오고 그랬대요. 말씀드려서 택배로 다시 돌려보냈고요.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되셨고 통화는 자주하는 편이에요. 그땐 걱정도 많이 하셨지만 이제 담담해 하세요. 당장 해결될 문제도 아니고 기다리시는 거죠. 건강하니 물으시고 상황을 인정하고 계시고 그렇죠. '이길 때까지 잘 있어라, 건강하게 있고' 그렇게 말씀하시고."

- 농성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 또 가장 힘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 있나요?
"직접적으로 힘든 건 날씨가 추워지거나 해서 힘들고요. 처음에 올라와선 좀 답답하고 막막한 심정이 많았죠.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래도 낮이나 저녁에 여러 군데서 연대오시고, 그런 것들을 보면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드니까. 저희는 갇혀있지만 주변에서 같이해주는 걸 보면 힘이 나죠."

"답답한 게 가장 힘들어요. 걸어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갇혀 있으니까. 안에는 공간이 별로 없잖아요. 또 하나는 돌아가는 상황이 그래요. 너무 정부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법원도 그렇고 고용노동부도 그렇고, 너무 노동자들한테 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변에서 다른 사업장 노사분규 판결나는 거 봐도 너무 일방적으로 노동자들만 당하는 그런 상황만 보이니까요. 그런 걸 볼 때 우리가 지금하는 총파업도 해결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들 때 가장 힘들어요. 올라올 때는 기대를 안고 왔는데 이게 과연 기대대로 풀릴까 그런 생각하면 제일 힘들고.

힘날 때는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관심 갖고 연대 오셔서 힘내라고 할 때죠. 여기 올라온 건 저희 문제 해결하려고 올라온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주고 염려해주고 필요한 물품 같은 거 하나씩 지원해주고 그런 거 볼 때 '저게 같이 사는 거구나, 이렇게 도우면서 사는 거구나' 싶고 힘이 나죠."

-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아…. 일단 목욕탕 가서 몸을 좀 담그고 싶고. 따뜻한 방에서 하루라도 자고 싶고. 그러고 나면 조카를 보러 가고 싶어요. 조카가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2월에 같이 놀러가기로 했는데 못 갔어요, 입학식도 못 가서 더 보고 싶고요. 고생한 조합원들, 못 보던 친구들 만나서 저녁에 소주 한 잔 하고 싶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목욕을 제일 하고 싶었는데요. 한 달 넘어가다 보니까 안 씻어도 적응이 되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조합원들하고 당구를 제일 치고 싶어요. 파업기간 때도 집회 끝나면 종종 저녁에 당구 한 게임 치고 술 한 잔하고 그랬었는데 그 시간이 제일 그리워요."

- 앞으로 이 문제를 사회에 알리기 위해 어떤 움직임을 해나갈 예정인가요?
"저희가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거는 딱히 더 없는 것 같고요. 그 동안에 사측에 잘못했던 관행들 있잖아요. 고객동의 없이 고객정보 유출해서 이용했던 것들에 대해 고소·고발을 진행할 생각입니다. (지난 2월 26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SK텔레콤,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의 불법행위를 검찰·방송통신위원회에 고발·신고한 바 있다.) 이런 LG나 SK, 두 원청의 문제들에 대해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홍보를 해서 상품을 이용하지 않는 불매운동 등으로 원청을 압박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고요.

고객의 정보를 이용했단 건 소비자들의 권리까지 침해한 거잖아요. 소비자들도 이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들도 부당하게 피해본 사항이 있으면 그 피해에 대해 시정할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뭔가 더 할 수 있다면 고객들한테, 또 시민들한테 알리는 그런 활동에 집중할 거 같아요. 그래야 잘못된 관행도 바로 잡히고 저희들의 근로 환경도 개선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 마지막으로 모두가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상의 사람들에게 한 마디 전해주세요.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고, 눈물을 흘리며 살고 있어요. 왜 그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왜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지 관심 가져주셨으면 해요. 가진 자만 계속 잘 살고 없는 사람은 계속 못 살게 되는 이런 사회구조가 바뀌어 우리 사회가 조금이나마 나은 사회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선 관심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발전은 관심을 가졌을 때만, 또 노력했을 때만 그렇게 나갈 수 있는 거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관심도 중요하지만 이해도 필요한 거 같아요. 엊그제 어디에다 댓글 달았더니 무작정 빨갱이다 뭐다 이런 댓글이 달리더라고요.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닌데…. 일단 서로 남의 얘기를 들어주며 이해하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심을 가지고 서로 공존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런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덧붙이는 글 김영길 기자는 <사람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사람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람들 #LG #SK #장연의 #강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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