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와 땅 속에 파묻어 55년 동안 지켜온 '시'

시詩의 얼굴을 보고 사람을 보라!

등록 2015.03.17 10:13수정 2015.03.1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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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탄시장 골목을 나와 아주대입구, 아주대삼거리라 불리기도 하는 우리은행 매탄동지점 앞 버스정류장에서 출근버스를 탄다. 그곳에는 내가 수원과 인연을 맺고 살게 된 특별한 인연인 김우영 시인의 시가 있다. <산음山吟>이란 시는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아침을 여는 시가 되어 있다. 시인은 산을 읊는다고 했는데 내게는 나에게 읊조리는 느낌으로 나의 아침이 열린다. 그런 점에서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란 생각도 든다.


며칠 전 아침 출근길이었다. 멋지게 잘 조성된 시詩의 얼굴에 광고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꼭 지인의 시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특별한 의미로 조성한 수원시의 노력을 수포로 돌리는 일 같아서다. 잠시 후부터 냉정을 찾으려니 더 화가 났다. 버스정류장에서 10분 내외로 기다렸다 버스를 타는 나는 그 순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덕지덕지 달라붙은 광고물을 떼어내고 나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상쾌하게 세수를 한 느낌처럼 맑다.

맑은 시의 얼굴을 보는 느낌, 출근하는 날마다 보고 어떤 때는 좀 더 천천히 읽고 어떤 때는 인사를 하듯이 잠깐 살펴본다. 내게는 삶에 흔들림이 있을 때 스스로를 다독이는데 맞춤한 그 자리에 지인의 시가 들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보게 되는 시를 보며 시인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은 알고 지내는 인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날마다 이른 아침인 6시 10분에서 30분 사이에 e-수원뉴스 김우영 편집주간의 얼굴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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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에 조성된 김우영 시인의 시 산음 수원시 매탄동 우리은행 지점 앞 버스정류장에 조성된 김우영 시인의 시 산음에 붙은 광고물들과 광고물을 떼어낸 후 모습, ⓒ 김형효


나는 특별하게 종교를 갖고 있지 않다. 젊은 시절 교회도 나가 보고 천주교회에도 나가 보았다. 절간의 고요는 어린 날부터 경험해 보았으니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그 어느 공간에서건 경건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있고 난 후에 나는 사람이 종교라 말하고 최대한 사람 속에서 신의를 지키려 노력한다. 그리고 사람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믿으려 한다. 그런 점에서 내게 지인들은 어느 곳에서나 특별하다.

도심의 복판에서 벌어지는 이런 무자비는 따지고 보면 혹시 시음市吟은 아닐까? 도시가 몸부림쳐 읊조리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맨살에 영혼인 시詩의 얼굴에 곰보딱지를 붙이는 일은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버겁게 부딪히고 산다고 해도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것은 사람의 읊조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가장 낮은 소리로 읊조린 사람의 소리가 시라는 생각에 머리를 조아릴 때 사람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동병상련의 시인의 길에서 바라보는 소망이다.

맨살로 읊조리는 시인을 보호하고 시가 지켜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오늘의 이야기와 조금 다른 듯하지만 매우 특별하게 보호되고 보존된 시 한 편의 사연을 소개하고자 한다.  


2000년 7월 연변 조선족자치주 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민족의 민족적 서정의 시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는 연변의 시인들을 만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뜻밖에도 항일 민족시인 심련수 시인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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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심호수 선생을 찾아갔을 때 2000년 7월 심호수 선생을 찾아갔을 때 사진 가운데 시민기자 곁에 노부부가 심호수 선생과 부인이고 연변대 조선어문학부 학생들이다. ⓒ 김형효


당시 나는 한국 방송대학교 학보를 통해 심련수 시인의 존재를 알린 바 있다. 이후 본지를 통해 몇 차례 시인의 시를 소개하기도 하고 심련수 시인의 동생이자 항아리 속에 시를 넣고 땅 속에 파묻어 55년 동안 지켜온 동생 분 심호수 선생님을 용정시 길흠8대라는 곳에 직접 찾아가 만난 바 있다.

아래의 시가 바로 55년 동안 항아리 속에 묻혀 있었던 3백여 편의 시 중 한 편이다.

빨래 

빨래를 생명으로 아는
조선의 엄마 누나야
아들 오빠 땀 젖은 옷
깨끗이 빨아주소
그들의 마음 가운데
불의의 때가 있거든
사정없는 빨래 방망이로
뚜드려주소.

소박하고 정갈한 정이 배어 있는 시이다. 그러나, 그 절박한 시적 호소력은 빼앗긴 나라에 대한 구원의 마음이 너무나도 절절하게 스며 있다는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불의의 때가 있거든/사정없는 빨래 방망이로/뚜드려주소"의 부분에서는 식민지 조선의 청년 정신을 간직하고 살아가기 위해 식민지 조선의 청년들이 간직해야 할 뼈아픈 고통의 감수까지가 스며있는 것이다.

이는 엄마와 누나가 얼마나 절박하게 바라보는 광복에의 희망인가? 이는 자기 각성과 식민지 조선청년 모두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자기점검자적 요구를 시적으로 형상화해서 이야기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21세기 거리에선 우리들의 처지에서 시의 얼굴을 보는 자세를 다시 가다듬고 사람의 이야기, 사람의 읊조림에 귀 기울이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항아리 속에 묻어둔 시 #민족시인 심련수 빨래 #김형효 #김우영 시인 #산음山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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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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