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알바 여러분, 법으로 정한 대한민국 최저 시급은 5천 5백 80원, 이런 시급, 쬐끔 올랐어요. 쬐끔 (370원 올랐대...) 이마저도 안 주면, 이잉! 알바가 갑이다.
알바몬
예전엔 없었을까. 아니다. 결코 아닐 것이다. 요새 매스컴도 그렇고, SNS도 그렇고, CCTV도 그렇고 다양화, 다채널화한 알리미들이 발달해서 그렇다. 요샌 숨김과 비밀이 없다. 숨기려 해도 드러나고, 비밀을 유지하려고 해도 공공연하게 까발려진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숨어서 하던 갑질이 이제는 공개된 갑질이 된 것이다.
우리는 갑질은 권세 가진 자, 돈을 가진 자가 한다고 생각한다. 갑은 갑질을 하고 을은 갑질에 당한다는 등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만고불변의 진리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니 회장의 갑질, 사장의 갑질, 상사의 갑질, 손님의 갑질만 안다. 그러나 알바가 갑질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알바패밀리>(고은규, 2015)는 알바의 갑질을, 더 나아가 갑질의 순환을 말한다. 갑이 영원한 갑이 아니다. 을도 마찬가지다. 을이 갑이 되는 신분 전환은 통쾌하다. 갑이 을로 전락하는 상황은 슬프게 드라마틱하다. 갑과 을의 순환구조는 아마도 우리가 사는 사회의 복잡한 다양성과 접목되는 부분일 게다. 그런데 갑과 을의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 꽤나 냉소적이다.
너절하게 창조경제가 어떻고, 일자리가 어떻고, 대통령도 그러고, 정치인들도 그런다. 그러나 정작 창조경제와 일자리의 '창'자와 '일'자 근처라도 접근한 감각을 느낀다면 덜 서운하겠다. 서운함의 극치는 지금 경제가 잘 되고 있다는 이들의 서슬 퍼런 독설 때문이다.
이런 세상에서 알바도 갑질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가져 보면 여한이 없겠다. 그래서 작가 고은규가 나섰다. 작가는 꽤나 냉소적이지만 그래도 유머를 잃지 않은 채 독자들에게 '알바'를 '알바님'으로 알린다. 과거형이어서 아쉽긴 하지만 그 어떤 알바도 갑질하는 선수였던 때가 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을일 수 있음을 알라마트의 고객이었던 엄마, 무엇인가 불만이 있으면 마트 직원에게 속사포를 쏘았던 그 엄마가 마트 계산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갑질하던 시대의 자신과 똑같은 사람과 맞닥뜨렸다. 서툰 엄마에게 "환장하겠네. 뭐가 잘못된 거예요. 왜 줄이 줄지를 않아요....." 불평들이 쏟아진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딸은 자기 엄마가 한 성질 한다며 불평을 늘어놓는 고객들에게 날릴 멋진 펀치를 상상한다. 딸은 주먹을 쥔다. '당신은 이제 죽었어' 그러나 엄마의 반응은 전혀 다르다. 갑과 을의 자리 바뀜이 가져다주는 슬픈 해학이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익숙지 않아서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정말 죄송합니다.....""똑바로 하세요.""엄마, 왜 참았어? 진짜 실망이야.""어서 오세요. 고객님.""엄마......"엄마는 사라지고 마트의 친절마크가 방긋 거린다. 누굴까. 엄마의 표정을 가져가 버린 사람은. - <알바패밀리> 94~95쪽너나없이 우리는 절망의 시대에 희망으로 산다. 아니 희망을 구걸하는 시대에 절망을 길어 올리며 산다. 실은 절망이 희망이고, 희망이 절망이다. 그렇게 둘의 거리가 멀지 않다. 창조경제가 되었든, 일자리 창출이 되었든, 그렇게 넉넉한 웃음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차피 돈을 매개로 우리는 갑질과 을질을 주고받는다.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