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 표지
책읽는곰
아이는 말이 좋았어. 말은 굳센 다리로 어디로든 갈 수 있으니까. 자유로운 말과 달리 아이는 고삐에 매인 말처럼 집에서 동생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왔어. "가시나가 글은 배워 뭐 하노!"라며 아버지가 학교에 보내지 않았거든.
그러던 어느 날, 이웃 총각이 말을 타고 왔어. 처녀가 된 아이는 총각을 따라 길을 나섰지. 그리고 망아지 같은 아이 다섯을 낳은 엄마가 되었어. 하늘과 아주 가까워 볕이 잘 드는 집도 마련했지. 아이들 웃음만으로 배가 부르던 나날이었어. 그 해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그 해 여름, 엄마의 망아지 한 마리가 바다로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어. 엄마는 가슴을 쥐어 뜯으며 슬퍼했어. 하지만 마냥 슬퍼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지. 남은 망아지들을 지켜야 하니까. "안녕, 아가야. 언젠가 다시 만나자" 볕 좋은 어느 날, 엄마는 바다로 떠난 망아지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어. 그 후 엄마는 남은 망아지들이 멋진 말이 되어 떠날 때까지 온 힘을 다해 키웠어. 시간이 더 흘러 할머니가 된 엄마는 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 굳센 다리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말을.
언제쯤 "재밌는" 내용이 나오나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코끝이 빨개졌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해 여름 대목을 읽으며 세월호 참사로 아이들을 잃은 엄마들을 떠올리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이 책이 작가의 자전적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책의 첫 장에 작가가 '이 책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해 준 울 엄마 강봉선님께'라고 밝혔건만).
세월호 참사 이틀 후인 지난해 4월 18일 나는 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부모 잃은 6살 여자 아이를 대통령이 위로하는 사진을 보며 한 선배는 울었다고 했고, 후배는 지하철에서 울었다고 했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픈 이 느낌이 참 싫다는 선배도 있었고 확인 없이 기사를 쓴 후배는 자기 반성글을 SNS에 걸어놓기도 했다. 학교 카톡방에 모인 엄마들은 어른으로서 부끄럽다고 했고, 부모로서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 말도 건넸다.'이 글에서 나는 '열 달 동안 한 몸이었던 우리 아이들, 꼭 만나자'라고도 썼다(관련기사 :
김밥 옆구리도 터지고, 내 울음도 터지고). 그러나 모두의 바람과 달리 아이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달 1주기를 맞는다.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이들 영정사진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도 하고, 궂은 날 안산에서 전남 진도 팽목항까지 걷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해외에도 찾아가 세월호 참사의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실종사 수색 그리고 온전한 인양을 위해 도와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유가족들의 이런 절통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세월호 진상규명 및 피해지원 특별법 통과에도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끌더니, 어렵게 꾸려진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는 아직 출범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언제쯤이면 이들이 "안녕, 아가야. 언젠가 다시 만나자"며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을까. 그 '볕 좋은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ps. 비록 딸아이가 느낀 '재미'는 찾을 수 없었지만, 뜻하지 않게 세월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노년까지 한 여자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읽었던 나와 달리 딸은 날개가 없던 말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는 장면이 좋다고 했다. 마치 페가수스 같다면서. 페르세우스가 타고 다닌 말이라고 아는 척까지 하며 말이다(이게 다 도서관에 갈 때마다 줄기차게 읽은 만화 <그리스로마신화> 때문인데...). 너희들도 먼 훗날 엄마가 되면 알게 되겠지. 자식 잃은 엄마 마음.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그 마음을. 그때 엄마랑 함께 읽은 이 책도 좀 생각해 주려나.
엄마의 말
최숙희 글.그림,
책읽는곰, 201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