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 겉표지.
길벗어린이
은비 엄마는 직장맘. 오늘도 아침 일찍 은비를 깨워서 씻기고 입히고 먹이기 바쁘다. 은비는 "빨리빨리 하라"고 다그치는 엄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엄마, 오늘 회사 안 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가 괜히 혼만 난다.
서둘러 유치원에 은비를 데려다주고 지하철을 탄 엄마. 그제야 은비랑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헤어진 게 마음에 걸리는데... 속상한 건 은비도 마찬가지. 서둘러 회사에 간 엄마도, 텅 빈 유치원에서 혼자 친구들을 기다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출근길 이야기를 시작으로 퇴근 후까지 책은 엄마와 은비의 하루를 비교하며 보여준다. 책 속 은비 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점심시간 후 산책길에서 유모차 끄는 엄마들을 보면서 아이들 어릴 적 일을 떠올려 보는 것도, 아침의 일이 마음에 걸려 정시퇴근 하려 애쓰는 모습까지. 또 일하는 딸을 대신해 아이를 돌봐주는 엄마에게 괜한 일로 화를 내고 후회하는 것까지도.
그런데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친구들 앞에서 주말에 있었던 일을 발표할 때, 급식을 맛있게 다 먹은 걸 자랑하고 싶을 때, 친구랑 다툼이 생겨서 선생님한테 혼났을 때, 종일반이 아닌 다른 아이들이 반쯤 집에 일찍 갔을 때, 놀이터에서 더 놀고 싶을 때, 제일 좋아하는 토끼 바지를 입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을 때, 할머니에게 떼쓰다가 혼났을 때 엄마가 보고 싶었던 은비. 그제야 우리 아이들도 이럴 때 내 생각이 났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책장을 덮자마자 "너희들도 할머니에게 혼나면 엄마 생각났어?" 물었다. 그렇단다. "왜 말하지 않았어?"라는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왔지만, 속마음은 미안했다. 똑같은 일로 혼이 나도, 나한테 혼나는 거랑 할머니 혹은 다른 사람에 혼나는 건 기분이 좀 달랐을 텐데... 좀 서럽지 않았을까 싶어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누가 더 먼저 빨리 말하나 내기라도 하듯 두 아이가 동시에 떠드는 것을 막아 서며 "조용히! 한 사람씩"이라고 말한 것도 못내 미안했다. 이미 오래 기다렸고 참고 참았던 말이 폭발한 것일 텐데 몰라준 것 같아서. 제일 미안했던 건 이 대목을 읽고 난 뒤다.
"엄마는 회사에서 뭐 했어?""엄마? 우리 은비 생각했지!"아, 왜 나는 은비 엄마처럼 센스 있게 말하지 못했을까. 출근 후 12시간 만에 만난 딸들에게 똑같은 질문을 받고 "회사에서? 일했지"라고 말한 나는 뭔가... 직장맘에게 수시로 찾아오는 죄책감이 엄마나 아이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지만, 그분이 한 번 오시면 벗어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다시 아이가 "엄마는 회사에서 뭐 했어?" 물으면 이렇게 말해야겠다.
"엄마? 우리 다다 생각했지! 커피 마시다가 예쁜 스티커 발견하면 우리 큰 딸 생각하고, 맛있는 거 먹을 때면 우리 작은 딸 생각하고... 그런데 회사에서 다다만 생각하면 월급 주는 사장님이 싫어하니까 일도 많이 했지요. 이것 볼래? 엄마는 이런 일을 한단다." ps. 직장맘 은비 엄마가 혼자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은비 아빠는 어디에 있는 걸까? 엄마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 건가? 책 표지 사진 속에 있는 은비 아빠가 책 속에서는 단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 것은 참 아쉽다.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 해?
김영진 글.그림,
길벗어린이,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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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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