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된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은행 본점에서 안심전환대출 가입 희망자들이 전용 창구에서 상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례① 1억 3500만 원 변동 금리... '제2금융권'이라 안돼경기도 수원에 사는 이진옥(44·가명)씨는 2년 전 1억 8500만 원짜리 빌라를 사면서 신협에서 변동 금리, 만기 일시 상환 조건으로 1억 3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이씨는 시중 은행에 가서도 상담해 봤지만, 대출금이 많다는 이유로 거부 당해 제2금융권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금리는 연 5~6%대에 3년 만기였다. 매달 120만 원 벌이에 이자만 65만 원을 내고 있지만, 원금 상환은 엄두도 낼 수 없어 대출 기간 연장을 고민하던 차였다. 마침 금리가 연 2%대인 안심전환대출이 출시됐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신협에 전화했지만, 제2금융권은 대상이 아니라는 대답만 들었다. 안심전환대출이 '흥행 대박'이라는 뉴스가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사례② 시중은행 1억 원 대출... '고정 금리'도 안돼경기도 용인에 사는 김아무개(39·여)씨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김씨는 3년 전 아파트를 사면서 우리은행에서 30년 상환, 고정 금리 연 3.6%대로 1억 원을 대출받았다. 김씨도 이번에 안심전환대출로 갈아타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고정금리 분할 상환 대출자는 대상이 되지 않기 때문. 김씨는 "설날 아기 세뱃돈까지 모아 아등바등 원금에 이자까지 갚으며 살았는데 정부에 뒤통수 맞은 느낌"이라며 하소연했다.
'차(제2금융권) 떼고 포(고정금리) 떼고.' 연 2%대 고정 금리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이 연일 논란이다. 갈아 타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애초 이 상품을 내놓은 이유는 위험 부담이 높은 변동 금리·일시 상환 대출 구조를 고정 금리·분할 상환으로 바꾸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기준 금리가 연 1%대에 돌입하며 사람들은 금리에 더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저금리일 때 대출 이자를 낮추려는 중산층의 '빚 테크' 수요가 안심전환대출로 몰린 것이다.
덕분에 안심전환대출은 지난달 24일 출시 나흘 만에 20조 원 한도를 모두 소진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놀란 금융 당국은 20조 원 추가 공급에 나섰다. 그러나 가계 부채 불안 해소를 위해 만든 안심전환대출 혜택이 서민 같은 위험 계층보다는 상대적으로 원리금 상환에 여유가 있는 중산층 시중은행 대출자에 쏠려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 '안심전환대출' 현상의 허와 실을 짚어봤다.
[허와 실①] 제2금융권 대출자는 왜 제외했나? 정작 가계 부채의 뇌관으로 지적되는 저소득층 서민들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꾸기 어렵다. 시중 은행 대출자들만 대상으로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신협·상호금융·새마을금고·보험·카드 등 제2금융권은 원금 상환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대상에서 아예 빠졌다.
상대적으로 신용 등급이 낮고 소득이 낮아 제2금융권으로 밀려난 서민들은 2%대 저금리 시대에도 결국 계속 고금리를 감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제2금융권 대출자들이 창구를 찾아서 "나는 왜 안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제2금융권 관계자는 "농협이나 수협의 경우 중앙회는 되지만 지역 단위는 해당 되지 않는다"며 "이를 모르고 나이 드신 분들은 안심전환대출로 바꾸기 위해 창구를 찾았다가 실망하고 돌아간다"고 전했다.
이 같은 불만에 금융 당국은 "제2금융권까지 통일된 전환 상품을 만들기 어렵다"며 선을 그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제2금융권의 경우 검토 결과 금리, 담보 여력, 취급 기관 등이 너무 다양해 해당 금융 회사들이 통일된 전환 상품을 협의해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제2금융권 이용자 중에는 생계비를 위해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경우가 상당수다. 또 은행권보다 담보인정비율(LTV)도 높아 부실화될 위험성도 크다. 안심전환대출이 금리를 낮춰 분할상환을 유도해 가계부채를 개선한다는 긍정적인 목적을 가졌지만, '더 급한' 서민들을 외면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허와 실②] 고소득자를 위한 특혜인가?안심전환대출 수혜가 부채 위험이 상대적으로 덜한 고소득자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금융위원회가 1차 판매를 분석한 결과 수혜자들의 연 평균 소득은 4100만 원이다. 특히 연 소득 6000만 원을 초과하는 고소득자가 30%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제2금융권 대출자들이 박탈감을 느끼는 대목이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접수 상황을 들여다보니 안심전환대출의 수혜를 받는 사람들의 평균 소득이 4000만 원에서 5000만 원 사이"라며 "다중채무자나 저소득층이 아닌 이미 상환을 잘하는 중산층에게 혜택이 가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형평성 문제가 계속 불거지자, 여야 지도부들도 제2금융권 대출자 확대 등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임 위원장은 "서민 금융 지원에 집중하겠다"면서도 제2금융권 대출로 확대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대해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금융당국이 제2금융권으로 확대하기 어렵다는 것은 행정 편의적인 발상으로 핑계일 뿐"이라며 "이들을 위해 별도로 10조 원을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국장은 "지원이 절실한 중소서민보다 은행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이자를 부담하는 중산층 이상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 형평성이 떨어진다"며 "제2금융권은 리스크가 높은 대출만 남아 서민 금융이 아니라 고리대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허와 실③] 뒤통수 맞은 고정 금리 대출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