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가다 동굴체험.
강은경
청년 같은 목소리의 아버지와 함께 떠난 7년 전 동굴 여행기억에 남는 동굴여행이 하나 더 떠올랐다. 7년 전, 부모님과 함께 떠난 동굴여행이었다. 당시, 연세 일흔일곱이셨던 아버지가 계획하고 준비한 여행이었다. 아버지는 조수석에 아내를, 뒷자리에 큰딸을 태우고 5일 동안 운전을 했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에 있는 석회암동굴을 찾아 다니셨다.
환선굴, 대금굴, 고씨동굴, 용연동굴, 화암동굴, 고수동굴…. 물론 안전을 고려해 전기나 계단, 다리 같은 설치물들이 친절하게 부설돼 있는 동굴들이었다. 그래도 눈이 휘둥그레지게 동굴은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부모님과 같이 다니는 그 여행이 즐거웠다.
아버지는 여행을 좋아하셨다. 젊어서는 바빴고, 환갑 지나고부터였나. 국내명소는 물론이고, 수십 개 나라를 여행하셨다. 엄마를 꼭 데리고. 문제는 아버지가 '짠돌이'라는 거였다. 외국여행은 하고 싶고 돈은 아깝고. 아버지는 머리를 썼다. 해마다 몇 차례 지인들을 모아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을 주선한 것이다.
동행들에겐 비밀로 부치고, 주선자인 아버지와 더불어 엄마까지 공짜여행을 하신 거다. 자식들이 경비를 대주겠다고 해도, 니 돈이든 내 돈이든 아깝다며 마다했으니. 엄마는 한 번도 여행지에서 선물이나 기념품을 사보지 못했다.
나랑 동굴여행을 한 그때도, 아버지는 4천 원짜리 백반에 2만 원짜리 여관만 고집하셨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잔머리를 굴렸다. 부모님에겐 차에서 기다리라 하고, 매일 저녁 도착한 여행지에서 여관을 찾아다니는 게 일이었다.
나는 세 명이 쉴 만한 넓고 좋은 방을 골랐다. 주인과 입을 맞췄다. 아버지에겐 2만 원이라 말하고 2만 원을 받으시라, 일렀다. 몇 만 원 더 비싼 숙박비는 내 돈으로 그때 미리 계산했다. 아버지는 "아, 이 방도 좋다! 봐라, 싸고 깨끗하고 넓은 방, 찾으면 있잖니? 아무튼 네가 수고가 많다!"라며, 여행 내내 홀딱 속아 넘어가셨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거뜬히 장거리운전을 할 정도로 정신도 몸도 정정하시던 아버지가… 여든셋인 지금은 장거리 운전은 뛰지 못한다. 여행도 등산도 끊었다. 어떤 지병이나 노인병을 앓으시는 것도 아닌데. 이젠 엄마가 가꾸는 텃밭 일을 살살 거들거나 텔레비전 보는 것으로 소일하신다.
"은경아, 여행 가자!" 지금도 자주 청년 같은 목소리로 말하시지만, 나서지는 못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늙을 동안, 나도 늙었다.
나는 아직 젊은 걸까? 이 시간마저 흘려 보내고 싶지 않다

▲ 지하강 입구에 들어서면...
강은경
유대교 랍비이자 시인인 '사무엘 울만'의 '청춘'에 대한 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틀렸다.
'청춘이란 마음의 젊음이다. 신념과 희망에 넘치고 용기에 넘쳐 나날을 새롭게 활동하는 한 청춘은 영원히 그대의 것이리다.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다.' 용기, 모험심, 이상이 가슴에서 아무리 부글부글 끓어오른들, 마음이 아무리 이팔청춘인들, 체력과 정신력이 따라주지 않는데 무슨 '청춘'이겠나? 그의 말은 '진짜 청춘'들에게 청춘처럼 살라고 던지는 말이거나, '늙은이'들을 애써 위로하는 공허한 말들이다.
그런데 늙어가면서도 유쾌한 기분과 활기를 유지할 수 있나? 결국, '마음이 젊으니 나는 아직 청춘이다' 같은 말을 붙들어야 하나? '자기 최면' 효과는 어느 정도 볼 수 있을 테니. 나는 어제보다 약해진 근력이라도 그만 뚤뚤거리고 알뜰히 쓸밖에. 아버지가 오늘 텃밭에 물을 주며 웃으시듯.
어쨌든 나는 용기고 열정이고 희망이고를 다 제치고, 앙드레 지드의 말처럼 '나의 말은 노래이고 나의 걸음걸이는 춤추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러니 나는 아직 젊은 걸까? 아파하며 이 시간마저 흘려 보내고 싶지 않다.
춤추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숙소로 돌아왔다. 곧장 프에르토 프린세사로 떠나려고 짐을 꾸렸다. 작은 가방에서 초콜릿 상자가 나왔다. 모양이 제각각인 손톱만 한 초콜릿 다섯 개. 냉장고 마그네틱이었다. 진짜 초콜릿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입에 쏙 넣으면 달콤하게 녹아내릴 것 같았다.
스위스에서 가져온 거라며, 사무엘이 어제 떠날 때 주고 간 거였다. 울컥, 또 그 아름다운 청년이 그립다.
○ 편집|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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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도 초월한 그 밤, 끝내 넘을 수 없던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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