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 피카소를 죽이다

'마크 로스코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6월 28일까지

등록 2015.04.13 20:27수정 2015.04.1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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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학파'라 불리는 '추상표현주의'는 1940년 전후 미국에서 일었던 사조로 미국이 처음으로 세계에 영향을 준 미술운동이었다. 이는 세계의 미술수도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옮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때부터 미국은 경제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유럽보다 우위에 서게 되는데 그 한가운데 '마크 로스코'가 있다. - 기자 말

로스코, 미국미술의 전성기 열다


a  로스코 전시장 작가소개란에 사용된 그의 사진 근접촬영

로스코 전시장 작가소개란에 사용된 그의 사진 근접촬영 ⓒ 로스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초동)에서 6월 28일까지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전이 열린다. 워싱턴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로스코 작품 50편이 소개된다. 마크 로스코는 '잭슨 폴록(1912-1956)'과 함께 미국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추상표현주의' 대가이다.

이 사조는 1929년 '알프레드 바 2세'가 한 대학에서 강의한 제목 '칸딘스키와 독일표현주의'에서 유래한다. 정적이고 명상적인 '색면추상'과 동적이고 격정적인 '액션추상'로 나뉘는데 로스코는 전자를, 폴록은 후자를 대표한다. 2차 대전 후 미국미술이 전 세계미술을 선도하는 결정적 계기를 맞게 되는데 두 작가의 역할이 컸다.

이번 전시 제목에서 스티브 잡스와 로스코를 연결시킨 건 "조금 다르게 생각하자", "단순함이 최고의 가치이고 아름다움이다", "몰입·묵상·명상을 깊이 하자"(Think different, Simple, Contemplation)와 같은 두 사람의 비슷한 철학에서 연유한다.

로스코는 또 "정치로는 문화를 만들 수 없지만 문화로는 정치를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이는 문화야말로 가장 위대한 정치이며 문화를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는 신념을 드러낸 말이다. 실제로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를 경제적 측면 이상으로 문화적 측면에서도 최고수준으로 올려놓았기에 그의 말이 더 설득력 있다.

신령한 색채에 숭고한 생명력을 불어넣다


a  로스코 I '무제(시그램 벽화스케치) 캔버스에 혼합재료 182.6×450.2cm 1959

로스코 I '무제(시그램 벽화스케치) 캔버스에 혼합재료 182.6×450.2cm 1959 ⓒ 김형순


로스코 회화의 특징은 많은 선이 숨겨진 색면(色面)에 미묘한 색감의 색채를 담아 강력한 생명력을 분출시키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의 유럽식과는 다르게 그 사이즈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다. 그래서 로스코가 의도하는 숭고미를 더 효과적으로 구현한다. 그렇게 보면 색면과 색채란 그에게 종교 그 이상의 것이다.

미술용어인 '다층형상'이라고 하는 사각형 색면에 쓰인 선은 선이 아니고, 면은 면이 아니다. 선과 면이 뚜렷한 경계 없이 뒤섞여 착란을 일으키는 그의 색채는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어 있어, 멋지다는 뜻의 '엣지'라는 요즘 유행어도 연상시킨다.


하여간 그의 색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상호적으로 침투하거나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서로 겹쳐지고 번지고 스며드는 독특한 색채방식, 이건 서양적이기보다 오히려 동양적인 기법이다. 그래선지 관객의 시선을 더 많이 끈다.

로스코의 이런 색면추상이 세계미술시장에서 가치는 어떨까 궁금하다. 2012년 뉴욕 크리스티경매에서 '오렌지·레드·엘로(1961)'가 약 850억 원에 낙찰돼 최고치를 경신한다. 왜 그런가. 로스코는 "생생한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에는 관심이 없다"고 했는데 그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그런 강렬한 생명력을 느끼기 때문이리라.

"비극적 감정이 내 예술의 유일한 원천"

a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아크릴 혼합재료 75.2×166.4cm 1963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아크릴 혼합재료 75.2×166.4cm 1963 ⓒ 김형순


로스코는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10살 때 미국 서부 오리건주로 이민왔다. 그는 중학교 때 월반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해 링컨고에 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예일대 장학생으로 선발돼 이 대학이 있는 동부 코네티컷주 뉴헤이번으로 이사한다.

그는 예일대에서 철학, 역사, 경제 등을 전공하고 니체 철학과 고대신화에 심취했다. 또 노동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대학생활에 별 재미를 못 붙이고 미국의 천재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처럼 명문대를 과감하게 그만두었다.

1923년 다시 뉴욕으로 가 비전공자에게도 비교적 개방적인 미술학교 '아트 스튜던트 리그(Arts Students League)'에서 2년간 실기를 공부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지 않아 틀이 없기에 오히려 그는 더 독창적인 작가가 된 것 같다.

또 로스코는 "평생에 한 번이라도 인간적이 되어보자"라는 말을 남겼는데, 휴머니스트로서의 일면을 보인 말이다. 그런 그가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외면당한 소수자에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하다. 위에서 말한 대로 그는 대학 때부터 노동운동에도 관심이 높았고 뉴욕에서 '예술가노조'를 만들 정도로 좌파적 면모도 보였다.

그는 이민 초기에 미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자살의 유혹을 받는 사람처럼 표정이 어둡고 우울하다. 미국에 온 지 20년이 지난 35살에 시민권을 탔고, 38살에 이름을 '마크 로스코'로 바꾼 것도 그가 오래 방황한 증거다.

30대 후반에 그는 유럽에서 일어난 2차세계대전의 참상을 보고 몸서리친다. 또 인간의 존엄성이 여지없이 짓밟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는다. 이런 경험이 그로 하여금 "비극적 감정(Pathetic)이 내 예술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말을 낳게 한다. 그러면서 그는 2차세계대전의 비극을 그리지 않으면 그건 화가로서 직무유기라고도 말한다.

침묵의 공간 속에서 사색의 시간 만들다

a  로스코 I '무제(오렌지와 황갈색)' 캔버스에 오일 206.4×160.6cm 1954

로스코 I '무제(오렌지와 황갈색)' 캔버스에 오일 206.4×160.6cm 1954 ⓒ 김형순


로스코는 "말(言)은 감상자의 상상력을 마비시키기에 침묵이 더 정확하다"라고 했는데 이런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명이 '무제'인 건 납득이 간다. 거기에 어떤 제목을 붙이면 어떤 선입견에 갇혀 감상의 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또 자신의 작품은 스스로 이야기하기에 굳이 설명이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위 작품을 보면 황갈색은 우리 마음을 감싸주는 것 같고, 노란색은 우리 영혼을 들뜨게 하거나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 같다. 이런 대비되는 색채의 교묘한 결합은 관객을 자신도 모르게 사색의 신비한 숲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는 이렇게 작품을 통해 관객이 침묵의 공간 속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도록 유도한다. 그런 과정 속에서 색채가 주는 분위기가 사람들 마음을 움직여 때로 사람들 눈시울을 적시게도 한다. 이에 대해 작가는 "내 작품 앞에서 눈물을 흘린다는 건 내가 작품을 하며 느꼈던 종교적 경험을 동일하게 체험한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로스코는 미의 진정한 '유혹자'

a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228.9×112cm 1949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228.9×112cm 1949 ⓒ 김형순


단순한 다층의 색면 속에 복잡한 인간내면을 담은 그의 추상은 불안한 현대인의 심경을 건드린다. 관객이 일단 그의 작품에 빠지면 거기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그는 관객의 내면을 읽을 줄 하는 '미의 유혹자'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 대해 "관객이 그림을 깊이 응시하면 마치 음악이 그런 것처럼 당신은 그 색이 될 것이고 전적으로 그 색에 젖게 될 것이다"라고 작가도 한마디 던진다.

우리가 그림을 감상하는 평균시간은 몇 초뿐일 텐데 로스코는 관객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며 그의 작품 앞에 오래 잡아둔다. 이런 것은 그가 평상시에 그의 작품과 관객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고대비극을 바탕으로 한 초기 '신화'시대

a  로스코 I '지하철 환타지' 캔버스에 오일 87.3×118.2cm 1940

로스코 I '지하철 환타지' 캔버스에 오일 87.3×118.2cm 1940 ⓒ 김형순


그의 작품시대를 여러 방식으로 구분하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신화시대', '색감시대', '황금시대', 벽화시대', 부활시대' 등 5섹션으로 나눈다.

'신화시대'는 그의 데뷔기다. 작가는 이 시기에 그리스신화, 니체사상과 함께 프로이드의 무의식세계도 담겨 있다. 그래서 초현실주의 풍이다. 그는 당시에 만연한 인간의 허위성, 현실의 폭력성, 세계의 비극성 같은 시대정신을 주제로 삼는다.

위 작품은 뉴욕지하철을 소재로 한 것으로 그물망 같은 지하세계에서 서성거리며 수동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익명의 사람들, 그들의 답답한 표정이 담겨 있다. 어린 시절 작가자신도 미국사회의 적응하지 못한 경험과 거기서 받은 우울함과 마음의 상처와 고통을 이 작품 속에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작가가 쓴 작품후기를 보면 "나는 2차 대전의 참혹한 비극을 경험하면서 현실의 폭력과 그것 앞에서 나약할 수밖에 없다는 인간의 비극을 고대신화를 통해서 그림으로 전하려고 했다"라고 요약정리해서 말하고 있다.

추상으로 가는 '색감시대', '황금시대'

a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126×111cm 1947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126×111cm 1947 ⓒ 김형순


작가 자신은 구상과 추상의 구분을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누구도 형상을 훼손하지 않고는 사용할 수 없는 때가 왔다"며 그때부터 확연하게 추상적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이 때를 오히려 '멀티폼(multiform)'시기라고 규정한다.

그러면 '멀티폼'이란 뭔가? 이건 예술에서 두 유형이 합쳐진 것을 말한다. 무슨 유형인가? 바로 격정적인 '디오니소스' 유형과 지성적인 '아폴로' 유형을 말한다. 당시 평단에서는 폴록은 '디오니소스'를, 로스코는 '아폴로'를 대변하는 유형으로 봤지만 정작 로스코는 자신 안에 두 가지 요소가 다 있다고 반박했다.

이 시기 후반기에는 그의 색채미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래서 색채의 황금시대가 된다.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 같은 자연의 형태는 사라지고 도시적이고 기하학적인 구도로 바뀐다. 그런 단순한 구도 속에 비극미가 배어나오고 황홀한 숭고미와 관능미까지 느끼게 하니 그런 색채의 구사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원시적 종교성으로 돌아가는 '벽화시대'

a  로스코 I '무제(로스코 채플)' 캔버스에 오일 157×176cm 1969

로스코 I '무제(로스코 채플)' 캔버스에 오일 157×176cm 1969 ⓒ 김형순


이런 과정 후 '벽화시대'을 맞는다. 이때부턴 상업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직 원시적 생명감이 넘치는 종교성만이 중요하다. 그때 나온 작품이 '로스코 채플' 연작이다. 그렇게 21세기에는 예술이 종교를 대신하는 시대임을 그는 예견한다.

이 연작은 현재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이 전시장 안에는 다양한 문화권의 경전이 나란히 놓여 있다. 그 어떤 종파의 강연도 예배도 공연도 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여기선 그 어떤 종교도 신앙도 다 존중받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길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곳이라 부르나 보다.

로스코도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여기에 온 사람은 자신의 심장소리를 들을 정도로 고요와 침묵을 체험하게 된다. 벽에 걸린 작품의 색채는 검은색, 회색, 고동색 등이 뒤섞인 독특한 색으로 동양의 묵화나 서양의 성화와도 또 다르다. 그리고 주변이 어두워질 때 더 잘 보이는 경험도 하게 되리라.

그의 '부활'시대, '레드'가 '블랙'을 삼키다

a  로스코 I '무제(레드)' 캔버스에 오일 206.4×160.6cm 1970

로스코 I '무제(레드)' 캔버스에 오일 206.4×160.6cm 1970 ⓒ 김형순


로스코는 말년으로 갈수록 선도 없고, 형도 없는 오직 색으로만 끝장을 보려고 했다. 오직 색채, 색조, 색면만 남는 극단의 방식이다. 아무도 해보지 않는 이러한 모험을 시도하려면 그에게 굉장한 용기와 확고한 철학이 필요했으리라.

이 시기는 온통 '레드'시대였다. 돈의 압력이나 종교의 틀에서 벗어나 또한 지식의 허영마저 버리면서 오로지 회화의 순수성만을 지키려 한다, 이 말년기가 '부활시대'가 된 건 죽음을 상징하는 '블랙'을 삼킨 부활을 뜻하는 '레드'시대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러면서 '레드'컬러를 이런 것에 비유한다.

"심장박동, 열정, 동맥혈, 마당에 세워둔 자전거에 슨 녹, 폭풍처럼 번지는 불, '루소'의 태양, '들라크루아'의 깃발, '엘 그레코'의 예복, '피렌체' 대리석, 원자의 섬광, 면도하다가 벤 자국, 면도거품 속의 피, 러시아 국기, 나치 깃발, 중국 국기, 용암, 갯가재, 전갈, 내장 불꽃, 죽은 '야수파'화가들, 손목 긋기, 싱크대에 피, 사탄."

최전성기, 비극으로 생을 마감하다

a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173×111cm 1949. 로스코 작품 앞에 관객이 서 있는 시간은 상당히 길다

로스코 I '무제' 캔버스에 오일 173×111cm 1949. 로스코 작품 앞에 관객이 서 있는 시간은 상당히 길다 ⓒ 김형순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보면 스승을 죽이라 뜻이 담긴 '살불살조(殺佛殺祖)'라는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는 그에게 넘지 못할 스승이 없음을 피력한 것이다. 로스크도 "자식은 부모를 존경하나 그들을 제거해야 한다"며 당시 최고의 거장인 피카소를 미술적으로 살해한다.

로스코는 이제 '입체주의'시대는 가고 '추상표현주의'시대가 왔음을 선포했다. 그가 피카소의 작품에서 인정하는 건 한 가지 그가 그림에 움직임을 줬다는 것뿐이다. 이제 세계미술의 축은 유럽을 넘어 미국으로 재편됐음을 알린다.

1968년 그는 예일대에서 명예예술학 박사학위를 받는 등 사회적 명성은 높였으나 그런 게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결국 그는 1970년 2월 작업실에서 자살한다. 그의 자살을 어찌 보면 매우 예술적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작품이 더 이상 진전이 없을 때는 언제라고 죽을 각오를 했고 그걸 실행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번 전시에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관객은 비싼 요금을 내고도 손님대접을 못 받는 것 같다. 물론 주최 측에도 사정도 있겠으나 지금은 '레드'작품 앞에서만 사진을 찍게 하는데 이걸 두세 곳 더 확장하면 관객도 두세 배로 늘어나리라. 그래야 관객과 작품과 긴밀한 소통을 원했던 작가의 의도와도 맞는다.
덧붙이는 글 로스코전 요금, 시간, 전시안내 등 모든 정보: www.markrothko.co.kr/guide/guide.php 전화: 02) 532-4407 이번 로스코전 공식 홈페이지: www.markrothko.co.kr / 로스코 채플 공식 홈페이지: www.rothkochapel.org
#마크 로스크 #잭슨 폴록 #추상표현주의 #뉴욕학파 #로스코 채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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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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