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위해 광화문 모인 교인들, 희망을 보았다

세월호 참사 1년, 시행령폐기, 선체인양, 배·보상일정중단 촉구를 위한 기독인 연합예배

등록 2015.04.15 18:23수정 2015.04.15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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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야고보 사도의 입을 통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약 2:14)임을 강조하셨다. 이때의 '행함'은 정의와 진리 그리고 약자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함은 두 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그 반대쪽을 위해 '행함'을 실천하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에 대한 반성이랄까. 나는 오늘(4월 1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예정된 연합예배에 참석할 계획을 일찍부터 잡아두고 있었다. 예배의 명칭이 좀 길다. '세월호 참사 1년, 시행령폐기 선체인양 배·보상일정중단 촉구를 위한 기독인 연합예배'(아래 연합예배). 몇 가지 약속도 파기하고 서울행 기차표를 예매했다. 이웃을 위해, 약자를 위해, 행함이 결핍되어 있는 나 자신을 일깨우는 기회로 삼기 위해서였다. 아내도 함께 동행했다.

비에도 불구하고 의자 가득 채운 교인들

a 연합예배 포스터 세월호 기독교 원탁회의 주관의 연합예배를 알리는 포스터

연합예배 포스터 세월호 기독교 원탁회의 주관의 연합예배를 알리는 포스터 ⓒ 이명재


어제부터 일기가 몹시 불순했다. 마치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듯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가 계속되었다. 행사가 있는 날, 그 시간대에 비가 온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먼저 사람의 회집(會集)에 차질을 빚게 된다. 연합예배를 알리는 광고가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나는 거기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내일 예배 시간에 비가 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밤새 비가 추적추적 내리더니, 14일 오전을 지나 오후까지 비가 이어졌다. 당장 내 마음에 갈등이 일었다. 이런 궂은 날씨에도 먼 지방에서 내가 꼭 참석해야 할까? 결단은 어려운 환경을 뚫고 나아갈 때 필요한 것이다. 이런 날씨이니 내가 더 올라가야지….

김천역에서 오후 3시 9분 무궁화호 기차를 타니 오후 6시 3분에 서울에 도착했다. 예배가 있는 광화문 광장에 닿으니 예배 시작 10분 전인 오후 6시 50분,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 우산을 쓰고 또 비옷을 입고 듬성듬성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나지막한 단상이 준비되어 있고, 플라스틱 의자 200개가량이 앞뒤와 좌우로 열을 맞춰 놓여 있었다. 과연 이 의자들을 채울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 마음을 짓눌렀다.


a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 동참하며 희생자 가족들의 바람대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였다.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들 비가 오는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의 슬픔에 동참하며 희생자 가족들의 바람대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모였다. ⓒ 이명재


​하지만 정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예배 시작을 전후하여, 의자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의자가 모자라 많은 사람이 서서 예배에 참석했다.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를 추산할 때, 1000만 명을 운운한다. 그 1000만 명 중 예배 참석자 몇 백 명을 두고, 가느다란 교계의 희망을 읽은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구약의 선지자 엘리야는 갈멜산 대결 뒤 손바닥만 한 구름에서 팔레스틴 지역 해갈(解渴)의 희망을 보았다. 오늘 광화문 광장에 모인 많지 않은 그리스도인에게서 교계의 희망을 발견했다면 지나친 말일까.

이날 예배의 주관은 세월호기독교원탁회의가 맡았다. 예배 순서지 표지 중간에는 아이들을 의미 없이 보낸 기독인들의 마음을 담은 구호가 명기되어 있었다.


미안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이 구호는 예배에 참석한 기독인들의 마음뿐 아니라 온 국민의 마음을 표현해 놓은 것이리라.

예배는 2시간 여에 걸쳐 진행됐다. 박득훈 새맘교회 목사가 전체 예배를 인도했다. 카랑카랑하면서도 절제된 목소리는 분위기를 한 곳으로 모으는 힘을 갖고 있었다. 사전 공연으로 향린교회 '얼쑤'가 사물놀이 공연을 했고, 가수 송정미가 여리면서도 강한 음조로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박영민 평신도시국대책위의 장로가 대표 기도를 했으며, 이어 유경근 4·16세월호 가족협의회의 집행위원장의 증언이 있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짐, 젊은 교인들에게서 희망을 보다

a 말씀을 전하는 문대골 목사 '살아있는 제물'이라는 제목으로 문대골 기독교평화연구소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말씀을 전하는 문대골 목사 '살아있는 제물'이라는 제목으로 문대골 기독교평화연구소 목사가 말씀을 전하고 있다. ⓒ 이명재


​오늘 설교는 문대골 기독교평화연구소 소장이 맡았다. 그는 '살아있는 제물'이란 제목의 말씀을 전했다. 문 소장은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의 95%는 사회자와 유경근 위원장이 이미 말했으니 저는 나머지 5%만 전하겠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살아있는 제물이란 목숨을 산 채로 바치는 것"이라며 "못다 피고 희생된 어린 영혼들을 위해 우리가 산 제물이 되자"고 설교를 마무리했다.

NCCK 세월호 참사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이승렬 목사의 기도, 예수살기 총무 양재성 목사의 봉헌기도에 이어 NCCK 총무 김영주 목사의 연대사가 있었다. 기도와 말씀으로, 또 연대사와 노래로 죽은 자들에게 부끄러운 사회를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한 세월호를 인양하고 정부 시행령을 폐기할 것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정의와 진리 그리고 슬픔을 함께 하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호소이다. 동시에 뻔뻔하고 무지한 권력 집단에 대한 항의이다. 이러한 뜻은 예배 말미에 낭독된 '성명서'에 오롯이 담겨 있다.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이 세월호 참사 1년을 맞이하여 행사 일정을 소개했다. 그는 4월 16일(목요일) 오후 7시 시청 앞에서 문화제가 있다는 것과 4월 18일(토요일) 오후 3시 역시 시청 앞 광장에서 전국 규모의 집회가 있을 것이라고 고지했다. 또 지금 정부 시행령 폐기와 수용을 두고 인터넷 국민투표를 진행 중이니(4월 16일 오후 6시까지) 많이 참여해 줄 것도 부탁했다. 이어 어린이, 청년, 평신도, 목회자 등 각 영역을 대표하는 네 사람이 나와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날 예배는 박경조 전 대한성공회 의장주교의 축도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a 기도하는 우리 멀리서 올라간 우리 부부도 예배의 시종을 함께 하며 '행함이 있는 믿음'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기도하는 우리 멀리서 올라간 우리 부부도 예배의 시종을 함께 하며 '행함이 있는 믿음'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다. ⓒ 이명재


옛날부터 문제를 푸는 방법을 이야기할 때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을 썼다. 일을 만든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월호는 개인 또는 일개 회사가 만든 일이 아니다. 수많은 인명이 죽어가는 것을 방치한 국가의 책임이 크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무가 있는 국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국가의 최고 책임자라고 하는 대통령은 그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죽어가는 사람을 방치했나. 목회자들이 앞장서고 평신도들이 뒤를 따랐다. 우리의 주장(성명서)을 대통령에게 전달하기 위해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를 향했다.

경찰의 물리력에 막혀 더 이상 행진을 할 수는 없었지만, 청와대는 이런 국민의 요구와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에 노력해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년이 되는 바로 그날(4월 16일) 남미 4개국 순방을 떠난다고 한다. 치졸한 처신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바람을 철저히 외면하고 회피하는 짓이다. 정부에서 발의한 시행령을 폐기하고, 세월호 인양을 약속한 후 외국 순방에 나서는 게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다..

성결교회 목사로서 늘 답답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개인 구원이 중요한 만큼 사회 구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그동안 사회 구원과 거리를 두어왔다.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사회로부터 극우 보수 교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불의와 비진리에 반대하는 것을 신앙적인 것이 아니라고 곡해했고,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는 것에는 종북의 딱지를 즐겨 붙여 왔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 교단을 계속 지배한다면 발전은 요원하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무한한데 '우물 안 개구리'식의 신앙에 갇혀 있게 된다. 오늘 광화문 기독인 연합예배에 교단 젊은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만난 것은 분명 희망이다. 예배 현장에서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세월호 참사 1년 #기독교인 연합예배 #세월호 기독교 원탁회의 #성결행동 #살아있는 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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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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