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번이 무시당하는 글... 이렇게 써 봐라

[서평]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등록 2015.04.27 11:00수정 2015.04.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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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012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올린 기사들 중 교육 관련 글들을 따로 모아 한 꿰미로 엮는 글 쓰기 작업을 시작했다. '시스템'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교육 문제를 짚어보자는 취지를 담아 한 권의 책으로 펴낼 요량에서였다.

올 2월 말, 200자 원고지로 1천 쪽이 넘는 원고를 수차례 수정·보완한 끝에 원고를 완성했다. 곧장 출판사 몇 군데의 문을 두드렸다. 모두 퇴짜를 맞았다.


주제 의식이 명확하다느니 내용이 깔끔하게 잘 정리되었다느니 하는 호평이 없지 않았다. 문제는 '이야기'에 있었다. 우리 교육의 현실적인 측면들을 잘 짚었지만 독자를 유인할 살아 있는 목소리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현장 이야기를 짚은 책들이 이미 많은 현실에서 시스템을 짚어보자는 취지로 쓴 원고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맥이 빠지고 좌절감이 밀려왔다. 내 글에 문제가 있나?

글 쓰는 사람은 안다. 독자들 앞에 '끌리는 이야기'를 써 내놓아야 한다는 것을. 그렇지만 아무나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글 쓰는 사람은 쓰고 싶은 글을 쓴다. 적어도 그때는 글 쓰기를 향한 뜨거운 욕구의 지배를 받는다. 놀라운 아이디어가 펜을 쥔 손 끝을 이끈다고 믿는다. 그는 확신한다. 장차 이 글이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리라.

사람 두뇌, 얘기에 반응하도록 설계돼 있다?

지난 몇 달 간 나도 그랬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이미 예견된?) 일이 일어났다. 독자들(출판사 편집자)이 글을 외면했다. 혹평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욱 의구심이 들었다. 그 시원찮은 반응들은 대체 어디서 비롯된 거지? 베테랑 출판 편집인이자 스토리 컨설턴트인 저자 리사 크론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 신경과학계는 사람의 두뇌가 이야기에 강하게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훌륭한 이야기를 듣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인간을 유혹하여 그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게끔 하는 자연의 방식이다. (5쪽)


저자에 따르면 우리는 세상의 이치를 가르쳐주는 이야기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사람들이 논픽션보다 픽션을 선호하고, 역사서보다 역사 소설을 즐겨 읽는 것도 우리의 신경 회로가 이야기를 갈구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강력한 이야기가 공감 등을 통해 독자의 뇌를 재설계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도 이런 점과 관련될 것이다. 살아 있는 '이야기'의 힘을 간과한 내 원고가 편집자들의 시선을 끌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이야기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야기를, 달성하기 어려운 어떤 '목표'(독자가 품게 되는 가장 중요한 질문)를 위해 노력하는 '누군가'(주인공)에게 '일어나는 일'(플롯)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주며, 나중에 그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키는가'(실제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이야기란 플롯이나 줄거리가 아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아닌, 우리 자신의 변화에 관한 무엇이다. 이야기가 우리가 플롯을 따라 나아가게끔 허락해야만 우리는 그것을 경험할 수 있다. 따라서 이야기는 결코 외부로의 여행이 아니다. 이야기는 내면으로의 여행이다. (24쪽)

이야기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방법은 '변화'다. 저자는 "모든 소설은 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라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그 한 문장 속에서 독자들이 기대하는 바는 바로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느낌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이야기가 우리를 사로잡으려면 이야기에 신경을 써야 할 이유를 찾는 독자의 눈 앞에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으며 예상할 수 있는 결과가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끌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서사의 규칙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써야 할까. 저자는 '불'과 '수학'의 비유를 든다. 옮긴이의 해석을 빌리면 '불'은 아마추어의 영역이고 '수학'은 프로페셔널의 영역이다.

모든 이야기의 첫 번째 재료인 '불'은 열정이나 영감을 의미한다. 그것은 쓰게 하고, 말하고 싶은 짜릿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수학'은 '불'을 독자의 머릿속에 점화시키는 데 필요한 어떤 틀이다. 이야기를 진짜 삶처럼 느껴지게 하는 이야기 자체의 짜임새 같은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모든 매혹적인 이야기를 읽을 때 그 이야기 이면에 복잡한 그물처럼 연결되어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 요소들"이 이와 관련된다.

'불'과 '수학'만으로 끌리는 이야기를 쓸 수는 없다. 저자는 모두 12개 장에 걸쳐 끌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서사의 규칙을 살핀다. 첫 페이지의 중요성, 주인공의 감정, 내면적 목표와 외면적 목표, 구체성의 영향과 갈등 구조, 인과관계의 중요성, 복선과 결과, 서브플롯 등이다.

첫 페이지의 중요성을 다룬 대목을 잠깐 살펴보자. 저자에 따르면 첫 페이지에서 독자들이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다. '누구의 이야기인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무엇이 위태로운가'이다. 각각 주인공, 사건, 갈등으로 부를 수 있는 것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좋은 이야기를 쓰는 데 천재적인 영감이나 뜨거운 열정이 부차적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틀을 '수학'적인 방식으로 완벽하게 짠 뒤 이야기에 불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면 끌리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사쓰기에 스토리텔링이 활용되는 까닭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도 잘못된 믿음처럼 다가온다. 저자는 좋은 이야기가 반드시 아름답고 선명한 이미지나 통찰 가득한 은유, 생생하게 펼쳐지는 세부 묘사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글은 모든 것을 이긴다"라는 잘못된 믿음 대신 "이야기가 아름다운 글을 이긴다. 언제나"를 강조한 이유일 것이다.

'끌리는 이야기'가 서사를 주된 바탕으로 하는 소설에만 적용되는 주제는 아니리라. 세상 일에 바쁜 독자를 사로잡는 모든 매혹적인 글에는 '이야기'가 있다. 최근 들어 엄정한 객관성을 지향하는 기사 쓰기에 '스토리텔링' 기법이 즐겨 활용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출판사 편집자들로부터 퇴짜를 맞은 내 원고는 지금 대대적인 보완 작업을 당하고 있다. '끌리는 이야기' 쓰기를 강조하는 이 책이 지침서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글을 쓰기 위해 이들에게 일독을 권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 지식하우스 / 2015. 2. 16. / 283쪽 / 1만6800원)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5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리사 크론 #불과 수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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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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