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사회복지회 부산상담소 최정희 소장
김지영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서른두 살 입양기관에 입사해서 한 자리에서만 꼬박 20년을 입양전문가로 활동해 온 동방사회복지회 부산지부 최정희(51) 소장을 만나 인터뷰했다. 이 분은 8년 전 내게, 지금은 우리 집에서 가장 예쁘고 귀한 딸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소린이를 점지해 준 분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사회복지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입양 관련 일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한데요."대학 졸업하기 전부터 사회복지 시설에서 조금 근무를 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배운 거랑 많이 달랐어요. 단적으로 사회사업가와 사회복지사의 차이를 느낀 거죠. 시설 쪽 일은 저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 키우다 서른둘에 좀 늦게 입사를 했는데요. 원래 아동 쪽 일을 하고 싶었어요."
- 소장님 세대가 사회복지가 체계화되는 1세대인가요?"그죠. 졸업하고 1987년에 사회복지공무원이 처음으로 생겼죠. 당시에는 사회복지가 요즘과 달리 그냥 좀 퍼주는 개념이었죠."
- 동방사회복지회에 입사하셔서 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입양, 미혼모 쪽 일만 했어요. 근무도 여기 부산 상담소에서만 20년을 있었네요."
- 제가 2006년에 입양 문의하러 소장님을 여기서 처음 만났었는데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계시네요?"미혼모도 그렇고 입양도 그렇고요. 지역적인 특성이 있어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거든요. 사정이 그렇다 보니까 이렇게 한 지역에서 뿌리를 잘 내리는 전문가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입양부모나 아이를 입양 보낸 미혼모들 입장에서 입양 당시의 당사자가 이렇게 계속 한 자리에 있다는 것이 큰 위안도 되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 분들 입장에서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뿌리일 수도 있거든요."
- 굉장히 오랜 기간을 한 분야에서 일해 오셨는데요. 초창기 입양은 어땠나요. 요즘과의 차이도 함께 말씀해 주시겠어요? "1995년부터 일을 시작했는데요. 당시에는 가임(거짓임신)하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비공개로 부부만 안다거나 아니면 아주 최소한의 가족들만 아는 선에서 입양을 진행했죠. 그리고 자녀가 없는 난임 가정이 대부분이었죠. 그게 2000년대로 중반을 넘어서면서 양태가 많이 바뀌었는데요. 자녀가 있는데도 입양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요. 난임 가정이라도 입양하는 과정을 오픈을 하는 분들도 많아졌죠. 초기에 비하면 엄청 좋아진 거죠."
- 입양아동의 경우, 과거와 지금 발생하는 유형이 많이 바뀌었나요?"예전이나 지금이나 입양아들의 생모는 거의 대부분이 미혼모인 점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절대적이죠. 굳이 차이점이라면 과거에는 호적에 안 올린 아이들을 입양 시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입양특례법 이후로 법원 허가도 취득해야 하는 정도죠."
- 입양을 시키겠다고 생모가 직접 찾아오나요?"그런 경우가 많죠. 가끔 입양을 진행할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해요. 대체적으로 장애나 건강상의 문제이고요.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시설로 보내죠."
- 과거에도 요즘처럼 여아를 절대적으로 선호했나요?"예전에는 그렇진 않았어요. 통계를 보면 과거에는 남아 쪽이 더 많았어요. 대부분 난임 가정이다 보니 자기가 낳은 것처럼 해서 대를 잇는 그런 경향이 있었죠.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로 여아 쪽으로 완전히 돌아서 버렸어요."
- 그럼 남아는 입양이 안 되기도 하나요?"되기는 하는데 지역적인 특색이 좀 있죠. 여기 부산 경남은 여아 선호가 심하고요. 위쪽 지역으로 그러니까 서울 경기 지역은 아들 딸 개념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 가족을 만드는 의미에서 입양을 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물론 그 쪽도 여아 선호가 분명 있긴 하지만 여기 보다는 적은 편이죠."
"'아, 이 아이는 이 집에 가야 되는 아이구나' 느껴져요" - 소린이 입양할 때 소장님이 한 말씀 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는 게요.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애를 보면 대기하고 있는 입양부모들 중에 느낌이 오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요. '아 이 아이는 이 부모한테로 가면 좋겠다' 하는요. 그런 느낌이 정말 있는 거예요? "정말 있어요. 입양이란 게 가족이 되는 거잖아요. 부모에게는 자녀가 한 명 생기고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님이 생기는데 이게 죽어서도 후손으로 넘어가는 거잖아요. 어찌 보면 이건 영원으로 가족을 이어가는 굉장히 귀한 일인데, 제가 조금 더 신중하려 노력하고 약간이라도 선입견을 안 가지려 노력을 하지만요. 저도 사람이니까 편견이나 선입견을 안 가질 수 없더라고요.
제가 미혼모를 직접 만나서 우리 쪽 시설에 입소를 시키고 입양부모를 연결해 주기도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 추천을 부탁 받아서 아이를 데려오는 경우도 있는데요. 실제로 가서 아이를 딱 보면 '아, 이 아이는 이 집에 가야 되는 아이구나' 딱 느껴질 때가 있어요."
- 우리 입양부모 입장에서는 영특하신 삼신할머니잖아요? "제가 다리를 놓아드리는 건 맞는데 저도 놀랄 때가 사실 지금도 많아요. 입양된 아이가 엄마나 아빠를 닮아가는 모습도 신기하고요. 저는 요즘도 매일 아침에 눈 뜨면 기도를 해요. 우리가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잘 지내다가 빨리 가정을 찾아가면 좋겠다고요. 그렇게 기도를 열심히 하다 보면 태몽을 꿔주는 경우도 있어요.
보통은 부모님이 아들이 있으면 좋겠다. 아니면 꼭 딸이 있어야겠다 그래요. 제가 상담을 해 보고 집에도 가보고 계속 보면 어떤 집은 분명히 아들이 가야 되는 집이 있어요. 부모님들 성향이나 가족들 구성이나 이런 걸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는 거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럴 때는 딸은 없고 아들만 대상아동으로 들어와요. 한 번 (아들로 입양) 해보시라고 권하죠. 나중에 사후관리 하면서 만나면 그 때 소장님 말씀대로 아들을 (입양)한 것이 너무 잘 한 것 같다고 그런 적도 있었어요."
- 저는 소린이 입양을 할 때 입양부모 자격 심사를 통과하면 아기는 제가 고르는 건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어느 날 소장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런 아기가 있는데 하실 겁니까, 라고 물으시더라고요. 근데 그 앞에서 어떻게 '안 할래요'라고 대답을 할 수 있어요? 하겠다고 했죠. 그래서 가서 보니까 소린이가 딱 있는 거죠. 모든 경우에 다 그런 방식으로 아이하고 연결이 되나요?"일차적으로 제가 선택을 하는 거죠. 저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이미지는 함께 살면 많이 닮아가요. 근데 성향은 좀 (기본적으로) 닮은 게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엄마의 성향이 중요해요. 24시간 같이 있으니까. 물론 저도 아이를 셋을 키우다 보니까 그 중에 저랑 안 맞는 아이도 있어요. 부모는 그걸 참아내고 인내해야 하는 입장이죠. 그걸 할 수 있는 부모님이 있는 반면에 아이가 서로 호흡을 해서 잘 맞춰가야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성향은 그런 것 같아요. 우리는 생모를 직접 만나니까. 아이가 이런 부모님한테 가면 더 잘 크겠다고 생각이 드는 아이가 있거든요."
- 저는 솔직히 소린이 처음 봤을 때 좀 낯선 느낌이 있었거든요. 지금도 생각하면 소린이한테는 정말 미안한데요. '아, 얘가 지금부터 내 딸이구나' 하는 생각은 드는데 뭐랄까요, 잠깐이긴 했지만 좀 이물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저는 첫 애를 스물일곱에 낳았는데 그 때도 사실은 결혼을 하고 애기가 생겼으니까 낳고 키워야 된다고 생각했지 한 달 정도는 제가 엄마 같은 느낌이 안 들었어요. 입양부모들이 상상하시기를, 애를 처음 보면 필이 확 하고 올 것 같지만 그런 것 없어요. 필 같은 거 없거든요. 밤잠 못 자고 키우면서 정이 새록새록 드는 거죠.
입양부모들이 처음에 아이 보러 오실 때는 잠도 못 주무시고 두근두근(하며) 오시거든요. 진짜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많으시고요. 한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사후관리를 하러 가면 할머니들이 애 데리러 온 거 아니냐고 얼굴이 새파래지는 경우도 있어요. 벌써 자기들한테 없어서는 안 될 가족으로 받아들인 거죠."
"입양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 일부러 많이 보여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