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신한, 왜 경남기업에 걸려 들었을까

[取중眞담] 금감원 국장 저격하는 검찰... 한동우 회장과 배후 거물급 정치권 수사해야

등록 2015.05.17 19:26수정 2015.05.1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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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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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은행 지점 모습. ⓒ 유성호


"창립 이래 경남기업 같은 사태는 없었다. 외압이 안 통하는 신한의 전통이 깨져 버렸다."

최근에 만난 신한은행 현직 임원 A씨의 말이다. 신한은행은 평소 깐깐한 대출심사로 기업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그만큼 쉽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과거 금융권의 부실대출로 촉발된 한보와 대우그룹의 부도에도 신한은행만은 무풍지대였다. 최근 은행권을 강타한 KT ENS 대출 사기, 모뉴엘 파산에도 신한은행의 이름은 빠져 있엇다.

신한은행의 작년 대출 관련 손실 규모는 1조4352억 원. 3조 원에 달하는 다른 은행의 절반 수준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신한은 비 올 때 우산 뺏는 은행"이라는 볼멘소리를 할 정도다.

신한의 깐깐한 대출심사 전통은 IMF 때부터 시작됐다. 고위 임원들이 여신 심사에 참여하던 과거의 관행을 깨고 이때부터 전문 심사역으로 협의체를 구성했다. 신한은행 전직 고위임원 B씨는 "행장 등 고위층은 심사를 하지 못하도록 협의체가 독립적으로 운영됐다"며 "제도가 정착되면서 외압이 통하지 않자 다른 은행들도 신한을 따라할 정도였다"고 자신했다.

B씨는 "신한이 리딩뱅크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이러한 엄격한 대출심사 때문"이라며 "취직 청탁은 들어줘도 대출 청탁은 절대 못 들어준다는 말까지 있다"고 말했다.

"왜 악취 나는 경남기업에 돈 퍼줬는지 직원들 이해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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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지난 4월 8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원외교 비리 관련 의혹에 대해 해명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그랬던 신한이 경남기업에 무너졌다. 신한은행은 지난 2013년 이미 자본 잠식 상태였던 경남기업에 막대한 대출을 해줬다. 주채권은행이었던 신한은 채권단을 주도해 경남기업에 모두 6300억 원을 지원했다. 또 신한은 시중은행 가운데 가장 많은 1761억 원을 빌려줬다.


그러나 경남기업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경남기업은 2010년부터 매출액이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었고, 총 영업활동 후 현금흐름도 마이너스 상태였다. 이러한 이유로 2013년 3차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들은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가능성 자체가 의문스럽다"며 추가 대출을 반대했지만, 신한은 이를 무시한 채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보통 워크아웃 기업의 경우, 대주주의 보유 지분을 줄이는 감자를 요구하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예외였다. 오히려 신한은 성 전 회장에게 기업 회생 이후 주식을 먼저 살 수 있는 우선매수청구권까지 부여했다. 치밀한 기업대출을 하던 신한이 그야말로 '신한답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다.

B씨는 "정치권, 대기업에도 신한은 언제나 아쉬울 게 없이 당당했다"며 "그러던 신한이 왜 악취가 나는 경남기업에 돈을 퍼줬는지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불법계좌조회' 폭로 후... 경남기업에 우호적으로 돌변한 신한

신한의 이상행동은 2013년 10월 17일부터 시작됐다. 이날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신한은행의 '불법계좌조회'를 폭로하면서부터다.

불법계좌조회 사건은 2010년 4월부터 12월까지 신한은행이 정치인, 법조계, 금융당국과 금융권 고위 간부 등을 대상으로 자사가 보유 중인 고객 정보를 무단 조회했다는 의혹을 받은 일을 말한다.

불법계좌조회 사건은 신한으로서 큰 타격이었다. 특히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연임설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사건으로 발목이 잡힐 수도 있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약점이 잡힌 걸까. 신한은행은 이때부터 경남기업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신한은행은 대출을 요청하는 성 전 회장과의 만남을 외면해왔다. 그러나 불법계좌조회 사건이 터진 지 1주일 만에 서진원 전 당시 신한은행장은 성 전 회장을 신한은행에서 만났다.

그리고 다시 5일 후, 경남기업이 3차 워크아웃을 신청함과 동시에 주채권은행을 수출입은행에서 신한은행으로 바꾸었다. 부실이 여실히 드러난 경남기업에 대한 주채권은행을 모두 꺼리는 분위기에서 신한은행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당시 신한은행 소속 기업금융센터 실무자들도 경남기업에 대한 대출을 반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반대를 피하려고, 새벽 1시에 성 전 회장과 장해남 경남기업 대표이사가 신한은행에 직접 와 융자신청서에 자필서명을 한 뒤 대출을 받았다는 내부 직원들의 증언도 나왔다. 신한의 고위 경영진이 나서서 성 전 회장을 도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성 전 회장은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금융당국을 포함해 금융권에 미치는 영향이 막강했다. 경남기업에 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성 전 회장과 불법계좌조회를 조용히 묻으려는 신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국장 몸통 아냐... 한동우 회장과 그 배후세력 수사대상에 올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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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 이희훈


금융감독원도 한몫했다. 당시 금감원 기업금융구조개선국장으로 재직 중이던 김진수 전 부원장보는 경남기업 3차 워크아웃 때 특혜를 주도록 채권은행들에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김 전 부원장보와 담당 팀장이 채권은행 담당자들을 금감원으로 불러들이거나 전화를 걸어 성 전 회장에 대한 감자 없는 출자전환을 받아들이도록 요구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에 검찰은 김 전 부원장보와 담당 팀장의 자택을 압수 수색을 하고 당시 지휘체계였던 조영제 전 금감원 부원장을 수사대상에 포함했다. 검찰은 신한은행도 압수수색을 해 금감원의 은행 압박 근거를 확보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이 일개 금감원 국장의 외압으로 움직였다고 보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지금껏 대기업들의 숱한 압박에도 철저한 대출 위험 관리를 해왔던 신한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 칼끝은 신한은행과 금융당국 수장을 향해야 한다. 검찰은 최수현 전 금감원장을 수사 대상에 올리지 않고 있다. 그러나 최 원장은 성 전 회장이 주관하는 충청포럼의 회원이다. 두 사람은 같은 충청 출신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장이나 팀장급에서 개인적인 판단으로 움직였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또한, 신한은행의 경남기업 관련 대출은 그 규모와 성격상 신한금융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사안이었다. 이 때문에 한동우 회장의 지시 없이 출자전환과 수천억 원대의 대출이 실행되긴 어렵다. 한 회장을 움직일 세력은 거물급 정치권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경남 사태는 정치권, 금융당국, 그리고 금융회사까지 얽힌 권력형 금융비리사건이다. 지금까지 경남기업수사로 드러난 진실은 극히 일부일 수 있다. 앞으로 경남기업 부당 지원에 누가 관여했고, 청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가려내 책임을 물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신한은행 #경남기업 #성완종 #한동우 #서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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