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시간 무한도전, '아파트 브랜드 미술관' 막는다

수미네, 수원의 문화와 공성성을 지키려는 100시간 무한도전 시작

등록 2015.05.18 16:35수정 2015.05.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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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시간 무한도전 캠프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수원화성행궁 광장에 캠프를 차렸다. ⓒ 양훈도


일요일인 17일 오후 2시 수원 화성행궁 광장 한 귀퉁이에 작은 텐트 두 개가 쳐졌다. 탁자 하나 의자 몇 개로 즉석 시민 카페도 차렸다. 풍선 불어 장식도 하고 비눗방울도 날리기 시작했다. 수원의 문화와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100시간의 '무한도전'은 그렇게 막을 올렸다.

무한도전 캠프를 차린 주체는 '수원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일명 수미네). 수미네는 21일(목) 수원시의회 본회의 전까지 100시간 동안 유쾌한 놀이판을 벌일 심산이다. 수원시의회는 21일 본회의에서 이른바 '수원시립 아이파크미술관'이라는 가칭을 공식명칭으로 하는 미술관 조례를 처리한다.


현재 버젓이 팔리고 있는 상품명을 이마에 내건 공공미술관은 세계를 통틀어 한 곳도 없다. 더구나 수원시가 이런 이름을 붙여주려고 안달을 하는 미술관은 세계문화유산 화성과 화성행궁 바로 앞 공간에 자리 잡고 있다. 수원시는 이 미술관에 왜 이런 얄궂은 이름을 붙이려 애면글면하는지 시민들에게 속 시원하게 내막을 털어놓은 적이 없다.

공론에 부쳐 논의해보자는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이 진작 제기됐지만 한 번도 성의 있게 응답하지 않았다. 기부문화 확산 차원에서 기부채납 당사자(현대산업개발)에게 약속했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수미네가 '무한도전 100'시간에 나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론장에 한 번도 부쳐지지 않은 요상한 이름

무한도전 캠프가 들어서기까지 상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자. 수미네는 전신 수미사(수원공공미술관을 고민하는 사람들)가 활동을 시작한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수원시에 거듭 공개적인 토론과 협의를 요청했다. 하지만 수원시는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2월 하순이 돼서야 염태영 시장과 수미사 대표 5인이 처음으로 자리를 같이 했다. 그러나 염 시장은 수원시의 입장만 되풀이해 강조하면서 수미사의 공론화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미사는 3월 들어 수미네로 개편했는데, 때를 맞춰 수원시는 아파트브랜드 명칭을 가칭 떼고 공식화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수미네는 4월 하순 수원시와 수원시의회를 항의방문하고, 수원시-시의회-현대산업개발-수미네가 4자 협의를 갖고 시민 공모의 방식으로 새 이름을 짓는 방안을 논의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수원시는 5월 12일 현대산업개발을 제외한 3자 협의를 하자고 통보해왔다.

수원시는 SIMA라는 영문 약칭을 제1대안이라며 제시했다. SIMA는 'Suwon Ipark Museum of Art'의 약자라고 했다. 더구나 조례에는 영문 약자를 풀어 명기하겠다는 것이다. 수원시는 아파트 브랜드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논리였지만, 누가 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수원시는 2안이라며 포니정미술관을 제시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 창업주를 기린다는 이 이름은 이미 수원시와 현대산업개발의 협의 초기에 논의됐다가 수원시에서조차 거부한 이름이라고 한다. 당사자들도 미술관에 걸맞지 않다고 퇴짜 놓은 이름을, 브랜드가 빠졌다는 이유로 다시 거론하니 대화가 더 진전될 수 없었다.

무한도전 100시간 캠프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수원화성행궁 광장에 캠프를 차렸다. ⓒ 양훈도


한 가지 분명히 해둬야 할 점이 있다. 수원시는 수미네를 이름 협상의 당사자로 오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수미네는 수원시와 이름을 협상할 위치에 있지 않다. 다만 공공성을 거스르고 문화적으로 문제가 많은 이름을 바꾸자고 요청하는 시민과 시민단체의 느슨한 연합체일 따름이다.

수미네의 요청을 받아들일지 말지, 새 이름을 공모할지 아닐지 정해야 하는 것은 수원시의 임무다. 수미네를 향해 대안 이름을 내놓으라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발상이다. 수미네는 공공성 살린 이름 제정을 촉구할 권리가 있고, 줄기차게 그걸 주장해왔을 뿐이다.

어쨌든 어렵사리 성사된 3자 협의도 무산되고 말았다. 더 어이가 없는 일은 그 직후 벌어졌다.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계속 협의하자던 수원시는 이틀 후(14일) 개최된 시의회 해당 상임위에서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조례를 통과시켰다. 3자 협의 자리에서, 자신은 이 이름에 반대한다던 시의원조차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과 반대 표수는 5:4. 시장과 같은 당 의원들은 모두 찬성을, 상대당 의원들은 모두 반대한 것이다. 철저한 진영논리다.

더욱이 수원시의 담당국장이 상임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수원시와 현대산업개발이 체결한 미술관 양해각서에는 이름 관련 조항이 명문화돼 있지 않다고 한다. 이 말은 수원시가 현대산업개발에 한 '구두약속'을 이행하려고, 시민사회 일각의 반대와 공론화 요구를 무시한 채 원안을 밀어붙였다는 뜻이 된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유쾌한 놀이판을!

수미네가 '무한도전 100시간'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데는 이런 배경과 맥락이 작용했다. 수미네는 장시간의 고민 끝에 이렇게 결정했다. 첫째, 이름 바로잡기 운동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운동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도 그러했듯이 철저히 문화적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그동안 3차례 진행한 도시락 퍼포먼스('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요상한 이름 말립시다'), 예술가들이 중심이 돼 1개월간 매일 진행한 1인시위 퍼포먼스처럼 문화적 방식을 고수한다.

둘째, 유쾌한 놀이판을 펼친다. 어차피 칼자루(권한)를 쥔 것은 수원시다. 그동안 경과가 보여주듯이 수원시는 때때로 대화의 제스처를 보여주는 듯하다가는 자신들의 원안을 강행하곤 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좀 더 많은 시민이 함께하면서 아파트 브랜드 미술관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발상인지 웃음 속에서 드러내는 수밖에 없다.

셋째, 시의원과 일부 공직자들의 양식에 마지막까지 호소한다. 이들이 무엇 때문에 '브랜드 이름이면 어떠냐'는 태도를 보이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으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저 명칭의 문제를 짐작 못할 리 없다. 이들의 마음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려면 수미네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하지만 시일이 너무 촉박해 일단 텐트 치고 카페부터 차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정을 어떻게 진행할지 아직은 확정된 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날 진행된 카페는 휴일을 맞아 행궁광장에 나들이 나온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린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모들은 풍선 불고, 비눗방울 날리는 데 끌려 무한도전 캠프를 찾아왔다. 이들 시민들은 왜 이런 도전이 이뤄지는지 설명을 듣고, 흔쾌히 서명을 하곤 했다. 저녁 요가 시간엔 많은 시민들이 들러 구경을 하고 갔다.

100시간 무한도전 캠프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수원화성행궁 광장에 캠프를 차렸다. ⓒ 양훈도


월요일부터는 이런저런 모임들이 무한도전 캠프에 와서 밥 같이 먹고, 회의를 하겠다고 알려왔다. 수원여성회 영상팀은 무한도전 100시간 중 24시간을 촬영하겠다고 밝혔다. 수요일엔 거리의 인문학자 최준영씨가 자발적으로 거리특강을 하기로 했다. 월요일과 수요일 특강도 섭외를 진행하고 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즉흥 토론회도 구상 중이다. 그밖에도 다양한 놀이 아이디어가 제출되기만 하면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이번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도전이 지역운동의 역사에 새 장을 열어젖힐지 누가 알겠는가. 명맥이 끊어진 지역 문화운동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동력과 활력을 많이 잃어버린 자치운동, 시민운동에 새 바람을 불러넣을지도 모른다. 진영논리로 꽉 짜인 숨 막히는 구조에 숨구멍 하나 크게 뚫는 송곳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수원시가 진정한 대화와 참여의 정신을 되찾아가는 터닝 포인트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제 밤에 생각보다 춥진 않았어요. 오늘 하루도 당당하게!"

어제 캠프에서 밤을 보낸 활동가가 방금 올린 카톡이다. 그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 뜻을 같이하는 시민은 누구나 수원 화성행궁 광장으로 오시면 된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수원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 공동대표입니다.
#수원 #미술관 #아이파크 #현대산업개발 #염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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