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돈의 위력 보여줬다"

[인터뷰] 양훈도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 네트워크' 공동대표

등록 2015.03.27 10:16수정 2015.03.2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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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훈도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 네트워크’ 공동대표 ⓒ 유혜준


염태영 수원시장이 시립미술관 이름을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확정했다. 25일, 수원시는 정례브리핑을 통해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확정해서 개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수원 화성행궁 앞에 현대산업개발이 건립하고 있는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은 이름 때문에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다.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은 "수원시립미술관에 아파트 브랜드가 들어가면 수원의 정체성이 훼손된다"며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들은 '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 네트워크(수미네)'를 구성, 24일 미술관 건축현장 앞에서 출범식을 열었다. 그런데 출범식을 하고 하루가 채 되기 전에 수원시에서 미술관 이름을 확정한다는 발표를 한 것이다.

수원시, 논란에도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확정

25일 오전, 홍사준 수원시 문화예술국장은 정례브리핑에서 "미술관 사업을 시작하면서 현대산업개발과 약속했고, 300억 원이나 기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만큼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미술관 명칭을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홍 국장은 수미네의 미술관 이름 반대운동을 의식해 "시민·사회단체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공감한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수원시가 시민·사회단체와 문화·예술인들의 미술관 이름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묵살하고 미술관 이름을 확정하자, 수미네를 포함한 수원지역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관련기사] 수원시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명칭 확정해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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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저녁,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 이름 바꾸기 운동을 지속해 온 양훈도 수미네 공동대표를 전화로 인터뷰 했다. 양 대표는 수원시가 미술관 이름을 지으면서 "자본의 힘, 돈의 위력이면 문화고 공공성이고 다 필요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며 "수원에서 이런 선례, 안 써도 되는 새 역사를 썼다는 게 무참하다"는 심경을 솔직하게 밝혔다. 양 대표는 "다양한 방법의 문화적 퍼포먼스와 축제 형식의 항의 운동을 꾸준히 펼쳐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양 대표와 한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이다.

- 25일, 수원시에서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으로 명칭을 확정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마침 25일 오후, 수원의 시민단체들이 모여 수원시정이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해 포럼(수원지역운동포럼 2015)을 하고 있었습니다. 미술관 명칭, 북수원 민자도로, 삼성전자 물고기 떼죽음, 미등록이주자 범죄예방 대책 등 지난해 가을 이래 불거진 현안들을 짚어보는 자리였습니다.

제가 사회를 보았는데, 발표자들이나 토론자들이나 방청객이나 한결 같이 수원시의 거버넌스 행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더군요. 포럼이 끝나고 나오다가 미술관 명칭 확정 발표 소식을 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서요. 그 자리엔 수원시 관계자들도 와 있었는데, 사전에 귀띔조차 해주지 않았더군요. 수원시 거버넌스 행정에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걸 이보다 더 피부로 느끼게 해 줄 수 있을까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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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네(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가 출범했다. ⓒ 유혜준


- 수미네(수원 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 네트워크) 출범 기자회견을 하고 딱 하루 만에 수원시에서 명칭을 확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무시당한 느낌일 것 같은데요.
"25일 저녁에 어느 인터넷 매체 기자가 전화를 해서 알려주더군요. 오전 정례 브리핑 때 보니 시의 관계자들이 제 동향 자료를 갖고 있더라구요. 저와 수미네가 어떻게 움직인다는 걸 뻔히 알고 있었으면, 전화라도 한 통화 미리 해 주는 게 예의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말 한 마디 없었습니다. 아예 싹 무시하기로 결정했다는 얘기지요. 순간적으로 속에서 뭔가 욱 하고 치밀어 오른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수원시로부터 무시당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 데다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이기도 해서 괜히 헛힘 빼지 말자고 마음 추스르고 나니 편해졌습니다. 우리끼리 웃으면서 포럼 뒤풀이를 했습니다."

-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이름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세 가지 명칭을 예시해 보지요. 첫째, 수원시립 미술관 행궁의 뜰, 둘째, 수원시립 현대산업개발 미술관, 셋째,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 어느 게 가장 마음에 드십니까?

사실 세 이름 모두 문제가 있지요. 첫 번째 것은 수미네의 전신 격인 수미사(수원시민미술관을 고민하는 사람들)가 시민공모를 해서 상당히 호응을 받은 이름입니다. 하지만 이 이름은 모든 시민들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물어 결정한 이름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지요.

두 번째 명칭은 그래도 세 번째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시가 선경도서관이라든가 SK아트리움 같은 선례를 자꾸 들먹이니까 그저 생각해 본 겁니다. 물론 수미네는 이런 이름에도 반대합니다. 하지만 현대산업개발이라는 기업명을 전면에 내세운 게 아이파크라는 아파트 브랜드를 정면으로 내세운 것보다는 훨씬 정직해 보입니다.

아이파크는 예술과 전혀 무관한 상표일 뿐입니다. 이를 앞세운다는 건 300억 원이나 대고 미술관을 기부채납하겠다는 기업의 선의마저 의심하게 합니다. 그것도 화성과 화성행궁이라는 세계문화유산이자 수원의 역사이자 상징인 공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요.

아이파크 미술관이라는 명칭은 듣자마자 '우리가 거액을 내니까 큼지막한 홍보 수단을 다오'라는 계산이 확 느껴지지 않습니까? 수미네도 현대산업개발이 거액을 들여 미술관 지어 기부채납했다는 사실을 아예 알리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표지석도 좋고, 동판도 좋다 이겁니다. 단지, 계산속이 뻔한 광고용 명칭을 쓰지 말라는 겁니다.

입만 열면 정조대왕을 입에 올리는 수원시가 이런 간단한 사리조차 헤아리지 못했다는 게 한심합니다. 이름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못하는 수원시의 입장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하겠습니다."

- 염태영 수원시장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아이파크 미술관'을 명칭을 정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기부문화를 확산시키려고 뛰어다니는 시장의 노고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업적을 깎아내릴 생각도 없습니다. 오히려 앞으로도 기부문화를 확산시켜달라고 부탁하고 싶어요. 다만 이런 식으로 기업과 거래하듯 하지 말고, 문화는 문화로 존중하면서, 투명하게 하시라 이거예요. 시민운동 출신 시장은 그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기업과 흥정하듯 하는 시장은 누구나 할 수 있지요."

"자본의 힘이 공공성 누른 상징적 사건"

- 공공미술관에 기업 이름이 들어간 것은 수원시립미술관이 우리나라에서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자본의 논리가 우리 삶 구석구석을 장악해나가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지요. 문화가 자본의 논리에 침식되다 못해 종속 상태에 들어갔다는 사실 역시 두 말하면 입 아프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처럼 노골적으로 상품명을 앞세운 공공 미술관이 없었다는 건 그래도 자본과 문화 사이에 지켜야 할 금도라는 게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식이 조금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이번에 적나라하게 무너진 겁니다.

자본의 힘, 돈의 위력이면 문화고 공공성이고 다 필요 없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고나 할까요? 자칭 문화도시, 인문학도시를 내세우는 수원에서 이런 선례, 안 써도 되는 새 역사를 썼다는 게 무참합니다. 그래서 반대운동을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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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립미술관 이름 바꾸기 운동을 문화운동으로 확산시키겠다는 게 수미네의 계획이다. ⓒ 유혜준


- 미술관 이름이 확정되어도 계속해서 '이름 바꾸기 운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라고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이 운동을 하실 예정이신가요?
"사실 수미네는 두어 달 함께 갈 임시 네트워크 정도로 생각하고 모였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하면서 수미네 내부에서는 오히려 결속력이 굳어졌습니다. 오늘 나온 아이디어 가운데 10월 개관 때 시민 개관식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최소한 10월까지는 간다고 봐야지요. 이름 바로잡기 네트워크니까 이름이 바로잡힐 때까지 가야하지 않겠습니까?(웃음)"

- 앞으로 어떤 활동을 어떻게 벌여나갈 계획이신지요?
"수미네의 기본 기조는 재미있는 운동, 신나는 운동입니다. 미술관 명칭 바로잡는 일이 뭐 머리띠를 둘러매야 할 일도 아니고, 드잡이를 해야 할 일도 아니니까요. 시가 권한을 휘두르고 있으니까 최소한의 법적 자구책을 우리도 써야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우선, 명칭 결정 과정과 관련한 정보공개청구에 대해 영양가 전혀 없는 정보만 주었으니, 이의신청을 한 다음에 행정심판과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이름 결정 과정을 제대로 알 권리가 분명히 있으니까요.

확정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명칭사용중지 가처분신청'도 논의 중입니다. 수원시가 참여자치의 으뜸 사례처럼 자랑했던 시민배심법정에서 이 문제를 다루자는 수미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이렇게까지 가지는 않았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시민배심법정에 제기하는 게 무슨 실익이 있겠나 싶어 진짜 법정으로 끌고 가야 하지 않나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렸듯이 수미네는 문화운동 네트워크입니다. 다양한 방법의 문화적 퍼포먼스와 축제 형식의 항의 운동을 꾸준히 펼쳐나갈 작정입니다. 도시락 파티도 하고, 다양한 퍼포먼스도 계속 펼치고, 예술 축제도 구상중입니다. 기대해 주시지요."
#양훈도 #수원시 #염태영 #수원시장 #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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