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이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바로 당신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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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로 포장해도 이건 살인입니다. 그것도, 의식이 없는 아버지를 죽인 패륜 범죄입니다. 재판장님, 그리고 배심원 여러분, 피고인들에게 법이 얼마나 엄중한지를 일깨워주시기 바랍니다."2014년 3월 의정부지방법원 제1호 법정. 날이 선 목소리에 단호한 어조, 검사는 마치 철퇴라도 내리치는 듯했다. 그 모습이 잔뜩 위축된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피고인들과 대조적이었다. 배심원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 아버지를 죽였다고? 선량하게 생긴 사람들이?
여기서 '아버지'는 박진석(가명)씨다. 박씨에겐 아내 나순자(가명)씨와 2녀 1남의 자식이 있었다. 자식들은 차례로 맏딸 현미(가명), 둘째 딸 현희(가명), 아들 현승(가명)씨였다.
이 중에서 나씨와 현미, 현승씨 세 사람이 법정에 섰다. 세 사람은 이전까지 경찰서 한 번 가본 적이 없다. 그런 이들이 왜 아버지와 남편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까? 돈 때문에? 가정폭력을 못 이겨서? 그것도 아니면 누명이라도 썼을까?
"판사님, 억울합니다. 어쩔 수 없었어요. 아버지를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현미씨의 호소였다.
"차라리 나를 감옥에 넣으세요. 얘들은 죄가 없어요." 이번엔 나순자씨의 절규가 이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3년 1월로 돌아가보자.
박씨 가족은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는 머리가 어지러워 병원을 찾았다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뇌암, 그것도 말기. 의사는 길어야 8개월이라고 했다. 이제 50대 후반에 말기암이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충격은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맏딸 현미씨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왔다. 그리고 병수발을 도맡았다. 생활력이 강한 현미씨는 월 150만 원의 수입으로 아버지 병원비, 어머니와 동생 생활비까지 감당해야 했다. 긴병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반년이 지나자 현미씨와 가족들은 지쳐갔다. 박씨는 차도도 없이 고통과 신음만 늘어갔다. 진통제도 이제 약발이 잘 듣지 않았다.
박씨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8개월을 넘어 9개월째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자니 돈이 문제였다. 아버지를 지켜만 보는 일은 고통스럽고, 그렇다고 병원에 입원시킬 형편은 안 되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상 가장이 된 현미씨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었다. 현미씨는 안방에서 아버지를 근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보던 어머니 나씨와 동생 현승씨 앞에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우리, 할 만큼 했어. 나도 힘들고 아버지도 힘들어. 아버지, 그냥, 우리가, 이제…… 보내드렸으면 좋겠어." 나씨와 현승씨는 고개를 저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현승아, 이제 보내드리자."떨리는 현미씨의 목소리 뒤로 작심한 듯 나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왕 할 거면 빨리해라. 그리고 너희 아버지 아프지 않게……."두려웠다.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죄송해요.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요. 편히 가세요.'현승씨는 큰누나와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버지의 목을 졸랐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의식이 없는 듯했던 박진석씨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그것도 잠시, 이내 박씨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제 그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되었을까. 가족들은 가난과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 소리 내어 울었다.
내막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단 세 명뿐. 사람들은 투병생활을 오래했던 박씨의 죽음을 병사로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둘째딸 현희씨도. 가족들은 박씨를 화장하고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죄책감에 시달리던 현승씨가 영문을 모르던 현희씨에게 모든 걸 털어놓으면서 가족들은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안락사인가, 살인인가다시 법정. 검사의 목소리가 법정에 울린다.
"누군가 살날이 하루 남았다고 칩시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그 사람 목숨을 앗아갈 권리가 있습니까. 이건 명백한 살인입니다. 피고인들, 할 말 있으면 해 보세요." "아버지가 계속 괴롭다고,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너무 아프다면서…" 현미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변호인이 말을 받아서 이어갔다.
"맞습니다. 피고인들,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박씨는 거듭 현미씨에게 고통을 호소하면서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가족들로서는 더 이상 가망도 없고 치료할 길도 없는 아버지를 어떻게 해드려야 했을까요. 이들의 수입은 고작 월 150만 원입니다. 그 돈으로 다섯이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았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병원비까지…. 이들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아버지 고통을 줄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안락사와 다름없습니다. " 법은 사회통념에 비추어 허용될 수 있는 행위를 '정당행위'라고 하여 처벌하지 않는다. 이들의 행위도 정당행위인가, 관건은 이것이었다. 비근한 예로 치료 목적으로 환자의 몸에 칼을 댄 의사나 시합 도중 상대에게 주먹을 날리는 권투선수는 정당행위가 인정되어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버지 고통을 없애기 위해 목을 조른 행위는 어떨까? 법원(의정부지법 제12형사부 재판장 한정훈)은 현승씨의 행동이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았다. 박씨가 죽여달라고 했다는 증거도 없었고, 설사 그랬더라도 그것이 진심으로 나온 의사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의사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감행한 행동은 안락사가 아니라 살인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법원은 더 필요한 치료법을 찾아볼 수도 있었고, 설사 회복이 불가능하더라도 진통제 투여로 고통을 줄여주는 방식으로 임종을 맞게 하는 길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치료비가 더 필요했다면 가족들이 십시일반 모으거나 친인척들로부터 도움을 구할 수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재판 결과 세 사람은 살인 공범이 되었다. 1심은 현승씨에게 징역 7년, 현미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회복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아버지의 목을 조른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병간호를 해왔고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아내 나순자씨는 자식들을 말리지 않고 남편의 죽음을 지켜본 죄(존속살인방조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집행유예로 실형은 면했다. 배심원들의 다수 의견도 판결과 거의 일치했다.
현미씨와 현승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3년6월로 형이 줄었다. 이들이 전과가 없었고 경제적 궁핍으로 제대로 된 치료를 해줄 수 없는 상황에서 현명하지 못한 판단을 한 점을 참작한 것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고통을 호소하고 임종을 앞둔 불치병 환자를 가족들이 목 졸라 죽인 것이 법적으로 허용될 수 있느냐, 즉 안락사로 인정할 수 있느냐였다. 법원은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살인이라고 답했다.
말기암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사치에 가깝다. 사회적으로 호스피스 제도 활성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그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현승씨와 가족들의 행동은 법으로도 용납할 수 없었다. 법원은 안락사로서 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안락사 혹은 존엄사가 허용된 경우도 있었을까.
[판결 2] 세브란스 병원 존엄사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