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앉아서 본 '수심 15m'의 풍경

[당신에게, 실크로드 29] 앗쌀람 알레이쿰, 아랄- 아랄해

등록 2015.07.10 14:04수정 2015.07.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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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실크로드 29] 앗쌀람 알레이쿰, 아랄- 아랄해 ⓒ 정효정


우즈베키스탄의 서쪽 끝 사막 마을 무이낙. 아랄해에 가기 위해 다른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관련기사: '하얀 금' 캐려다 최악의 재앙이 닥쳤다). 마을을 아무리 돌아봐도 할 일이 하나도 없다. 매일 오후에는 버스정류장에서 가서 외국인이 오지는 않을까 어슬렁거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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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낙의 영화관 무이낙의 전성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지금은 폐쇄되었다 ⓒ 정효정


한 번은 합승택시에 탔는데 택시 기사가 아랄해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2만솜. 한국 돈 8천 원 정도다. 이 돈만 받고 200km가 넘는 아랄해에 데려다준다니. 의심스럽다. 그런데 합승택시에 함께 탄 가족들이 수영하러 가는 차림새긴 하다.


속는 셈치고 데려다 달라고 하니까 마을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물구덩이에 도착했다. 여기가 아랄해란다. 바닷물이 증발되다가 남은 작은 웅덩이인데, 현지인들은 여기서 소금찜질을 하거나 수영을 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더운데 하얀 소금의 복사열 때문에 더 덥다. 짜증을 내봤자 말도 안 통할 거고, 그냥 웃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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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증발하며 남긴 물웅덩이 현지인들인 이곳이 건강에 좋다고 믿고 소금찜질을 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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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증발하고 남은 소금 소금이 하얗게 남아있어 가뜩이나 속에서 천불이 나는데 복사열로 더 더웠다. ⓒ 정효정


결국 떠나야하나 생각할 때, 무함마드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미국 여행자들이 두 명 올 거야. 아랄해에 간대." 그렇게 린지와 데이비드 커플과 만났다.

미국 환경연구원인 그들은 자전거로 아시아를 여행하며 기후변화도 함께 연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이들의 신혼여행이다. 우리는 함께 지프를 빌려 아랄해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수심 15m를 달리는 기분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건전한 커플과 나, 그리고 가이드역의 무함마드, 운전사 이렇게 5명이 아랄해로 향했다. 중간 중간 가스관만 보이고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가 펼쳐졌다. 우즈베키스탄은 아랄해를 다시 복원하기보다 이 일대의 가스와 유전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한국 기업들도 이곳에 진출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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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 화학단지 국내 기업도 이 지역에 진출해 있다고 한다 ⓒ 정효정


여기까지는 그래도 흙길이긴 하지만 편편한 도로가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계속 오프로드다. 달리던 중 운전기사가 한마디 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바다 안으로 들어가는 거야."

그 말을 끝으로 우리는 15미터 깊이의 바닷물로 들어갔다. 물론, 달리고 있는 곳은 사막이다. 하지만 한때 이곳은 수심 15미터의 바다였다. 잠시 차를 세웠을 때 바닥을 살펴봤다. 조개껍데기가 보인다. 아, 정말 바다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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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15m의 풍경 이런 길을 3시간 달리면 아랄해가 나온다 ⓒ 정효정


아랄해에 남은 실크로드의 기억 

차를 더 달리다보니 협곡이 나온다. 물이 가득 찼을 때는 이곳이 해안선이었을 거다. 섬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랄 해는 '섬들의 바다'라는 뜻이다. 1000여개의 섬이 있었다고 한다. 중간 중간 가스관을 건드리지 말라는 표지판들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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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섬이었을 이곳 빨간 표지판은 가스관이 지나간다는 표시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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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 가는 길 깊은 협곡이 패여있다 ⓒ 정효정


출발 후 80km 정도 지점에서 뜻밖에 무덤군을 만났다. 무덤에는 각기 다른 언어로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과거 이 지역을 지나던 대상들의 무덤이라고 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교역의 길(실크로드)에는 초원길, 오아시스길, 바닷길이 있었다. 그중 초원길은 유럽에서 출발해 카스피해, 아랄해 연안을 지나 카자흐스탄, 고비사막, 몽고고원으로 가서 중국 화북지역으로 향했다고 한다.

한때 이 일대에 번성한 도시가 있었을 거다. 무덤에서 멀지 않은 곳에 꽤 큰 규모의 성채도 있었다. 대상들은 물을 얻기 위해 이 도시에 들렀을 거다. 그리고 길을 떠돌다 죽은 사람은 이곳에 묻혔다. 묘비에 새겨진 여러 나라 문자를 보니 착잡하다. 한때 이곳은 번영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환경재앙의 길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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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군 대상들의 무덤이 모여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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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식물 손바닥만한 작은 식물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 정효정


서쪽으로 향한지 3시간. 사막 너머로 푸른 물빛이 보인다. 아랄해다. 바다를 본 우리는 감동했다. 우리는 각자의 언어로 아랄해에 인사를 했다.

"앗살람 알레이쿰, 아랄"

무이낙에서 나고 자란 무함마드도 2003년 다큐멘터리 팀과 함께 바다를 보고, 이번이 두 번째 보는 바다라고 했다. 우리 일행들은 수영을 했다. 바닥은 발이 푹푹 빠지는 미끈미끈한 검은 진흙이고, 물 온도는 적당히 따뜻했다. 염도가 높아 몸이 둥둥 뜰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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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에서 수영하기 염도가 높아서 힘을 빼고 누워있으면 몸이 저절로 떴다 ⓒ 정효정


수영은 즐거웠지만 한편 기분이 묘했다. 나중에 린지의 말을 듣고 그게 뭔지 깨달았다.

"즐거워서 바다에 미안했어. 죄의식이 있는 즐거움(guilty pleasure)이랄까"

신혼여행을 온 이 환경연구원들은 끊임없이 물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나도 그렇고 린지, 데이비드 커플도 계속 사막을 여행했기에 바다만 봐도 좋았다. 하지만 이 바다는 이미 생명을 품지 못하는 죽은 바다였다. 염도는 예전보다 5배나 높았고, 이런 염도에서 생명이 살 수 없는 건 당연했다.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운하를 만들어 신나게 물을 써댄 결과였고,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 대가였다.

바다를 그리워하는 노인

아랄해의 일몰은 로맨틱한 분홍색이었다. 해가 지고 밤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우리는 모여앉아 서로 생수를 부어주며 고양이 세수를 했다. 내 가방 속에는 물이 한 병 따로 들어있었다. 혹시나 물이 모자랄 경우에 대비해서였다. 우리는 상대방 언어의 '물'을 배워 그 단어를 사용했다.

"'워터'가 얼마나 남았지?"
"거기 '물' 있어?"
"'수' 좀 건네줘 봐"

'수'는 우즈베키스탄어로 물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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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저녁식사 운전기사가 요리를 잘해서 생각 외로 풍족하게 먹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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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의 일몰 일롤은 로맨틱한 분홍색이었다 ⓒ 정효정


물. 물. 물.

물은 얼마나 우리 삶을 지배하는가. 이 곳 사람들은 카라칼팍스탄 공화국이 독립을 하지 못하는 현실적 이유 중 하나가 물 때문이라고 했다. 모든 물이 우즈베키스탄에서 흘러오는데 그쪽에서 물줄기를 끊어버리면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그저 쉽게 아랄해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고 말하지만, 복잡한 이야기다. 무이낙 사람들은 자조적으로 그런 말들을 하곤 했다. 아랄해에 물이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이 딱 하나 있단다.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에 있는 사례즈 호수가 지진으로 무너지면 그 물이 아무다리야 강을 따라 이곳까지 올 거라고 한다.

사례즈 호수는 1911년 지진으로 만들어진 신생 호수다. 다시 강한 지진이 일어나면 대규모 산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최소 600만이 넘는 파미르 고원의 사람들이 그 물에 휩쓸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순박하던 파미르 사람들 얼굴을 생각하자 눈앞이 캄캄해진다. 그렇게 바다가 돌아오면 누가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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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레즈 호수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에 있다. 세계에서 가장 생성연대가 짧은 젊은 호수다. ⓒ 위키피디아


그날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 아래서 캠핑을 했다. 바람이 제법 거세어 자다가 여러 번 깼다. 부스스하게 일어나 아침엔 아랄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봤다. 태양이 부드럽게 바다를 감싸는 걸 보며 생각했다. '이곳에 다시 오게 될 수 있을까?' 다음에는 무함마드의 아버지를 모시고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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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에서 하룻밤 텐트에서 본 아랄해의 밤하늘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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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랄해의 아침 죽은 바다 위로 아침해가 떴다. ⓒ 정효정


그의 아버지는 우리가 아랄해에 간다고 하자, 자신도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단다. 무함마드는 그 이야기를 아랄해에 도착해서 해줬다. 린지와 나는 비명을 질렀다.

"왜 진작 이야기를 안 해줬어!"

무함마드는 덤덤하게 답했다. 

"우리 아버지가 앉을 자리가 없잖아"
"무슨 소리야! 자리야 껴서 앉으면 되지!"

우리는 바다를 그리워하는 노인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다음에 무함마드의 아버지와 함께 아랄해에 올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까지 아랄해는 남아있을까. 우리는 아쉽게 아랄해와 작별했다.

"굿바이, 아랄해, 다음에 또 올게."
"안녕, 아랄해, 이제 멀리가지 않기를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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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랄해 다음에 또 만나자 ⓒ 정효정



○ 편집ㅣ최유진 기자

덧붙이는 글 2014년 4월부터 10월까지의 여행 중, 실크로드- 경주, 중국,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터키, 로마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동쪽과 서쪽을 잇는 실크로드의 과거 이야기와 현재 진행형 이야기입니다. 더불어 히스테리가 극에 달한 노처녀의 한풀이이기도 합니다. 실크로드에서 건져낸 이야기를 점과 점으로 이어, 글을 읽는 당신의 마음에 또 하나의 실크로드가 그려졌으면 합니다.
#실크로드 #아랄해 #무이낙 #우즈베키스탄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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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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