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일곱에 중학교를... 가장 행복해 보였던 엄마

[부모님의 뒷모습 ⑥] 못 배운 게 한이었던 엄마의 소원

등록 2015.06.19 21:27수정 2015.06.19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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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노트과 교과서 엄마는 좋아하는 시를 노트에 옮겨 적고 자주 읽었다. ⓒ 강정민


엄마가 입학했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학교에 들어간 엄마. 엄마는 건물 청소일을 팔 년을 했다. 그 일을 그만두자 송파구에 있는 한림여자중학교에 들어갔다. 일을 그만두기 전 엄마는 한글을 배우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야학 그런 데 다니면 되겠네" 하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엄마는 내 예상을 깨고 교육부가 정식으로 학력을 인정해주는 학교에 입학한 거다. 그나마 이 학교가 친정에서 가까웠기 망정이지 멀었다면 엄마는 등하교하느라 꽤 고생 했을 거다.

32년생인 엄마는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읜다. 그리고 서울 서빙고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글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엄마가 입학했을 때는 일제강점기로 한글을 배우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학교에서는 일본어만 가르쳤다. 그 시기 학교에 대한 엄마의 기억은 이렇다.

"1학년서부터 일본어를 배웠어. 집에서는 우리 말만 했잖아. 일본어를 못해도 일본어만 해야 해. 애들끼리도 우리말을 하며는 걸리는 거야. 그래가지고 표(벌금쿠폰)를 돈을 주고 10장인가를 사.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우리말이 나오면 표를 빼앗기는 거야."

40년이면 일제가 민족말살정책을 폈던 시기다. 학교 교장은 긴 칼을 허리에 차고 교실에 들어왔다. 학생들은 아침마다 기미가요를 불렀다. 우리말을 한마디라도 하면 벌금을 물어야 했다. 학교에서 벌금을 안 내려면 입을 닫는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끼리 수다도 떨지 못했다.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된 엄마에게 기회가...


"그리고 오 학년인가 육 학년 됐는데 해방이 됐어. 그러니까 엄마는 한글을 모르는거지."

해방되기 한 해전 엄마의 큰 오라버니가 일본군 징용에 차출되어 대동아 전쟁에 끌려갔다. 엄마의 엄마는 남의 나라 전쟁에 끌려간 큰아들 걱정을 하다 시름시름 앓게 된다. 그렇게 앓다가 내 외할머니는 45년 4월에 돌아가신다. 해방되기 넉 달 전이다.

"일본 놈들이 넉 달 뒤에 망할 줄 알았으면 할머니가 그렇게 일찍 돌아가시진 않으셨을 텐데."

엄마는 안타까워했다. 해방은 되었지만, 엄마의 큰오빠에게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도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 내 외삼촌은 거지꼴로 한국에 돌아왔다. 학교가 다시 열리고 엄마의 친구들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부모 없는 엄마는 학교에 갈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은 중학교 가고 그랬어. 그런데 엄마는 가난하고 부모님이 없으니까 학교를 가지 못한 거야. 못 배운 게 한이 된 거야.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아침이면 교복을 입고 우리 집 앞을 지나갔어. 우리 집 앞이 행길이야. 그럼 나는 마주치기가 싫어서 집으로 막 뛰어들어와. 그때 나는 너무 슬프고. 나는 죄진 것도 아닌데 걔들을 마주 보기가 싫었어. 교복 입은 걔들이 안 보일 때까지 문틈으로 끝까지 지켜봤어. 그때 엄마가 든 생각이 뭐냐면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였어."

그런 엄마에게 다시 기회가 온다. 엄마는 동네 분의 소개로 영등포의 방직공장 '고려방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려방직은 공장 안에 기숙사와 학교까지 갖추고 있었다. 엄마는 운이 좋았다. 꿈에 그리던 교복을 입고 공장 안 학교에 다니게 되었으니.

"삼 교대로 근무를 했어. 기계는 24시간 계속 돌아가니까 사람이 8시간씩 일을 하는 거야. 사감 선생님도 있고 기숙사도 최신식이고 너무 좋았어. 거기 학교에서 처음으로 한글을 배우게 됐어. 그런데 조금 있다가 6.25 전쟁이 터진 거야. 그래서 한글을 다 배우지 못했지."

그렇게 엄마와 배움의 인연은 끝이 나게 된다.

시다로, 문방구 아줌마로, 청소일로... 엄마의 밥벌이

전쟁이 나면서 입에 풀칠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엄마는 우리 사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 오십 년간 손이 마를 날 없었다. 처음엔 시다(미싱사 보조)로 일을 시작해서 문방구 아줌마로 건물 청소일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예순여섯에 밥벌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엄마는 글씨를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난감해 했다. 쉬운 한글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받침이 있는 한글을 쓸 때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쩔쩔맸다. 은행 일을 보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청소 일을 할 때도 노안 때문에 작은 글씨를 읽지 못해서 사무실 직원에게 까막눈이라고 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 글을 몰라서 당한 설움은 평생 엄마의 가슴 속에 켜켜이 쌓였다. 그래서 일을 그만둔 엄마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거였다.

엄마는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등교해서 4교시까지 수업을 받고 하교했다. 점심은 집에서 먹고 집안일을 하고 숙제를 했다. 엄마는 다시 10대 여학생이 된 듯 활기차 보였다. 특히 국어 과목을 좋아했다. 교과서에 실린 좋은 시를 엄마는 노트에 옮겨 적었다.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다." 신세계를 만난 듯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도 기말시험을 준비하는 것도 힘겨워했지만 그 힘겨움을 즐기는 듯 보였다.

친정에 방문한 어느 날이었다.

"정민아, 엄마 이 문제 좀 가르쳐 줘라. 엄마는 어려워서 모르겠다."
"엄마, 먼저 구하려는 답을 엑스로 써 놓고 식을 세우는 거야."

내가 풀어주면 엄마는 나를 보면서 방글방글 웃었다.

"야, 그래도 나는 물어볼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좋으냐? 다른 엄마들은 학원에 다니기도 해. 우리 학생들만 다니는 학원도 있어. 다른 사람들이 엄마를 부러워한다. 학원 선생 했던 딸이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학교에서 만난 분 중엔 엄마 또래도 있었지만 택시 운전사을 하는 분도 삼사십대의 젊은 엄마도 있었다. 다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또는 딸이라는 이유로 배우지 못한 분들이었다. 학생들은 서로 형편이 뻔하니 서로 배려해주고 마음이 잘 맞았다. 해마다 한 번은 학예회도 했고 소풍도 갔다. 엄마는 신나고 행복해보였다.

학교 다닐 때의 엄마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우리 첫째 아이가 서너 살 정도 되었을 때 친정에 아이를 맡긴 일이 있었다. 엄마가 학교에 간 사이에 아버지가 아이를 봐 주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갑자기 상갓집에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엄마가 아이 때문에 결석하셨겠다 싶어 죄송스러웠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다른 일이 벌어졌다.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다녀왔다는 거였다.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엄마, 어떻게 아이를 데려갔어?"
"수선도 안 부리고 얌전하잖아? 그래서 그냥 데려가서 수업받았어."
"선생님들이 뭐라 안 하셔?"
"옛날에는 다 동생 업고 학교 다니고 했는데 뭘 그래? 엄마랑 엄마 짝궁 사이에 앉혀서 수업했어. 과자 하나 사주니까 아무 말도 안 하고 얌전해. 아줌마들이 얌전하다고 다 칭찬했어."

다른 분들에게도 선생님에게도 얼마나 민폐였을까? 무엇보다 엄마에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그런데 엄마가 학교에 가는 게 얼마나 즐거우면 아이를 데리고 수업을 받을 생각까지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중학과정을 무사히 다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나와 남편은 아이들과 함께 엄마의 졸업식에 참석했다. 엄마는 예쁜 꽃과 졸업장을 들고 행복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본 엄마의 모습 중 그때의 엄마가 제일 행복했던 거 같다.

○ 편집ㅣ최유진 기자

#부모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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