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비하 교수 "오래 기억하게 정성껏 만든 것"

홍대 총학생회 교수 해명글 전문 공개... 역대 총학생회장 "공개 토론회 열자" 제안

등록 2015.06.19 11:09수정 2015.06.1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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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홍익대학교 총학생회가 지난 11일 공개한 시험 지문.

홍익대학교 총학생회가 지난 11일 공개한 시험 지문. ⓒ 홍익대학교 총학생회


기말고사 지문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듯한 영문 표현을 출제해 논란이 됐던 홍익대학교 교수가 해명글을 올린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홍익대학교 총학생회는 류병운 법학대학 교수가 지난 15일 수업 온라인 게시판에 올린 해명글 전문을 18일 밤, 공개했다.

류 교수는 '출제 문제에 대한 담당 교수의 변'이란 제목의 글에서 "기말시험에서 지문의 일부 '정치적' 언어에 불쾌감을 느꼈다며 이의를 제기한 비 법학생 1명이 비공개 지시사항을 무시하고, 그 '정치적' 언어들을 언론에 노출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이 과목의 본질은 '정치'가 아닌 '계약법'으로, 교수는 그 법을 가설적 사례, 예시, 과장, 풍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효과적 교수법을 통해 잘 가르치는 것이라는 해명을 외면했다"고 썼다.

또 "교수의 교실 내에서의 강의는 '학문의 자유'로 더 강하게 보호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며 "또한 교수가 교실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가 모든 학생의 선호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 부합할 수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외부의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필자는 물러설 수도 없다"고 알렸다.

"전직 대통령 비하 아냐... 정성껏 만든 것"

또한 문제가 된 표현들은 전직 대통령을 비하한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시험문제들은 압축된 계약법 사례에, 집중력을 높이고 기억에 오래 남도록, 시사적 사건에 옷을 입혀 정성껏 만든 것"이라며 "특정인과도 관련 없고 더욱이 그 비하도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어 "부엉이바위, Roh, Dae-Jung 등의 고유성의 일부를 차용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마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을 마치 실존 나폴레옹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1985년 이후 홍익대학교 역대 총학생회장단 모임인 '순홍'도 18일 성명을 발표하고 "SNS 게시글, 언론보도 등에 따르면 시험문제에 등장하는 두 전직 대통령을 암시하는 비유적 표현들은 '정치적 자유'의 수준을 넘어섰다"며 교수와 학생 등 전 구성원이 참여하는 공개 토론회를 제안했다.


이들은 "후배들이 비교육적 위험에 노출되는 것에 심각한 우려와 한국사회의 일부 저급한 수준의 정치인식과 표현이 학원으로 침투되는 것에 위기 의식을 느낀다"며 "6월 중 학생, 교수, 직원은 물론 평생 홍익의 이름을 안고 사는 동문들이 참여해 질 높은 교육 환경 확보와 한국사회에서 대학의 역할을 고민하는 공개토론회를 열자"고 제안했다.

앞서 류 교수는 2015학년도 1학기 '영미법' 교과목 기말고사 문제 지문에 "노무현(Roh)은 17세이고 69의 지능지수를 보인다, 그는 6세에 부엉이 바위(rock of owl)에서 낙상한 이후 뇌 발달 장애를 겪고 있다", "인생낙오자 대중(Dae Jung Deadbeat)은 그곳에 흑산도(Black mountain Isle)라는 홍어(hong-o) 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다" 등의 표현을 넣어 학생들로부터 교수직 사퇴를 요구받는 큰 반발을 샀다.


다음은 류 교수가 올린 해명 글 전문이다.

출제 문제에 대한 담당 교수의 변

얼마 전 외신들은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가 뉴욕대 졸업식에서 명연설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정작 관중들의 폭소와 함께 박수 친 부분만을 떼어 놓고 보면 그저 욕이다: "너희는 X됐다." "치대, 외대, 비즈니스스쿨 졸업생들은 모두 직업을 얻고 로스쿨 졸업자들은 취업을 못해도 변호사다. 그러니 예술을 전공한 여러분들은..."이라는 이 연설의 본질은 예술전공 졸업자들에게 예상되는 향후 험로와 그에 대한 용기 있는 대처를 진솔하게 강조한 것이다.

지난주 필자가 강의한 미국계약법 비공개 기말시험에서 지문의 일부 '정치적' 언어에 불쾌감을 느꼈다며 이의를 제기한 비 법학생 1명이 있었다. 결국 그 학생은 비공개 지시사항을 무시하고 그 '정치적' 언어들을 언론에 노출시켰다. 이 과목의 본질은 '정치'가 아닌 '계약법'으로, 학생의 목적은 그 법을 잘 배우는 것이고 교수는 그 법을 가설적 사례, 예시, 과장, 풍자를 포함하여 다양한 효과적 교수법을 통해 잘 가르치는 것이라는 필자의 해명을 외면한 채 말이다.

그 결과 필자는 여론의 뭇매를 맞아 그야말로 "X됐다." 여기서 드니로의 연설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로서 보호되고 교수의 교실 내에서의 강의는 '학문의 자유'로 더 강하게 보호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또한 교수가 교실에서 사용하는 모든 언어가 모든 학생의 선호와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에 부합할 수도 없다. 그리고 외부의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필자는 물러설 수도 없는 것이다.

물론 "교수 자질이 의심된다"는 새정치민주엽합의 논평과 같이 교수는 영화배우인 드니로보다 품위 있는 언어와 표현을 써야 한다는 이른바 '상식적'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글의 품격을 강조하며 연암 박지원의 문체를 너무 자유분방하다고 비판했던 정조의 저서를 현재 흥미 있게 읽거나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반면 연암의 열하일기, 특히 독점가격구조를 설명하면서 치부 수단으로 매점매석을 선택하겠다면 일반백성이 고통을 받는 쌀과 소금이 아닌 당시 그 소비가 양반에게 집중돼 있던 과일이나 말총과 같은 품목을 선택할 것을 권고한 허생전은 요즘 경쟁법 교과서로 사용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명저가 아닐 수 없다.

문제가 된 이번 시험문제들은 압축된 계약법 사례에, 집중력을 높이고 기억에 오래 남도록, 시사적 사건에 옷을 입혀 정성껏 만든 것들로 특정인과도 관련 없고 더욱이 그 비하도 아니다. 더구나 '홍어'를 보통명사로 이해하는 필자는 특정지역을 폄훼하는 말로 사용하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필자의 처와 모시고 사는 장모님이 그 지역 출신이다.) 가설적 사례에 사용된 부엉이바위, Roh, Dae-Jung 등의 고유성의 일부를 차용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마치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의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을 마치 실존 나폴레옹으로 간주하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가설적 고유성 차용에 대한 특정학생이 특정 실존인물에 대한 감정을 편치 않게 했다면 유감스럽게 생각하며또한 교수가 학생들의 모든 정치적 선호를 고려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헤아려 주기 바란다.

(일부 언론에 마음이 편치 않아 정답을 제대로 표기하지 못한 학생이 있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님으로 확인되었다.)

행복하고 건강한 여름방학 보내길!

법과대학 류병운 교수

○ 편집ㅣ최은경 기자

#홍익대 기말 시험 #노무현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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