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진 '제주 게스트 하우스' 로망

[30일, 제주를 달리다 ②] 그 첫째 날

등록 2015.07.17 19:37수정 2015.07.27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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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국제공항에 내려 짐을 찾고 밖으로 나오니 오후 6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다. 드디어 제주에 왔다고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내 것 같지 않게 가볍다. 한 달이란 기간 때문일까. 제주의 파랗고 하얀 하늘을 바라보는데 저절로 안도의 한숨이 훅 하고 새어 나온다. 적어도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저 하늘과 함께 아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을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힘도 불끈 솟는 것 같다. 

힘차게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캐리어 손잡이를 끌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몸과 마음이 너무 가벼워진 탓일까. 갑자기 캐리어의 무게가 온몸으로 전해져 온다. 필요한 것만 갖고 온다고 짐을 줄이고 줄였음에도 24인치 캐리어는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무게가 되어 있었다. 어찌어찌 끌 수는 있겠지만, 들거나, 또 당연하게도 들고 뛰지는 못할 무게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책을 다섯 권이나 가지고 갈 필요는 없었다. 두 권도 못 읽고 왔다. 옷도 반은 줄일 수 있었다. 나중엔 입던 옷만 계속 빨아가며 입었으니까. 나는 수건을 왜 네 개나 챙겨 갔을까. 두 개면 충분했다. 헤어드라이기도 놓고 갈 걸. 내가 간 게스트하우스엔 모두 헤어드라이기가 비치돼 있었다.

치약도 쓰던 걸 가지고 갈 걸 싶고, 샤워용품도 더 줄일 수 있었을 것 같고, 이제 와 돌아보면 이것저것 무게를 줄일 수 있는 게 꽤 됐다. 하지만 이것도 다 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든 생각이었다. 어쨌건 30일 동안 나는 이 무거운 캐리어를 책임지고 지고 다녀야 했다.

30일 동안 '진짜 짐'이 된 무거운 캐리어

문제의 그 캐리어 ⓒ 황보름


사실, 제주에 도착해 버스 정류장 앞에 서기 전까지는 캐리어 무게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버스를 이용할 때는 짐칸에 넣었다가 빼면 될 거고, 또 이동 중 걸어야 할 때는 끌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웬걸. 그게 아니었다. 제주 버스의 짐칸은 그렇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내 캐리어를 슬쩍 쳐다보고는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오른 손을 들고는 손가락 몇 개를 살짝 까딱거리는 거였다. 아저씨의 손짓은 분명한 어조로 내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들고 타!'


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최대한 착한 목소리로 (짐칸을 강하게 가리키며) 아저씨에게 물었다.

"짐칸을 이용하면 안 되나요?"

아저씨는 말없이 본인이 버스 기사로 있는 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러니까 기분이 상한 표정으로 고개를 다시 한 번 거칠게 흔들더니 이내 정면을 바라봤다. 망연자실할 수밖에. 이걸 들고 타라니. 혹시 몰라 캐리어를 한 번 들어보긴 했다. 내가 그러고 있는 사이 한 아주머니는 무려 4개의 짐을 버스 안으로 빠르게 올려 놓고 있었다.

내 캐리어는 10센치미터도 들어 올려지지 않았고, 아주머니는 버스에 가뿐히 올라탔다. 기사 아저씨는 계속 정면을 보고 있을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캐리어를 끌고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버스는 갔다.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긴 분명 공항이고,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나처럼 캐리어를 들고 있을 터였다. 그렇다면 버스 짐칸은 우리 승객들을 위해 열려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지난 시절, 나는 집에서 공항까지, 또 공항에서 집까지 버스 짐칸을 잘도 이용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제주도에선 버스 짐칸을 이용할 수 없는 것인가!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여러 번의 버스 이용과 사람들에게 주워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였다. 버스 때문에 당황했던 사연은 이후에도 여러 번 있었으니, 버스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기로 하고.

이제 내게 남은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캐리어에 들어있는 물건 중 일부를 메고 있는 가방에 옮겨 담아 캐리어의 무게를 최대한 줄여본다. 그리고 나서 한 번 들어본다. 들 수 있으면 버스를 탄다. 둘째, 택시를 탄다. 나는 두 번 생각하지도 않고 택시정류장으로 향했다. 공항 한복판에서 캐리어를 열어젖힐 수는 없었으므로.

택시 기사 아저씨는 고맙게도 내 캐리어를 트렁크에 손수 실어주셨다. 나는 너무 미안해 같이 캐리어를 들어올리며 캐리어가 이렇게나 무거워 죄송하다는 의미로 '무거워요, 무거워요'라는 말만 연발했다. 택시 뒷자리에 올라타자 안도의 한숨이 후욱 하고 새어 나온다. 뭔가, 한 고비를 넘긴 느낌이다.

"00게스트하우스로 가주세요."

총 2박을 묵게 될 내 인생 첫 게스트하우스는 제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한 이유는 연륜이 느껴져서였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여러 예약 사이트에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었고, 또 지금까지 꽤 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오래된 게스트하우스 중 하나였다. 방도 깨끗하고, 모르는 사람들끼리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분위기도 제공된다고 했다. 첫 경험인 만큼 이왕이면 사람들과 어울리며 게스트하우스의 분위기를 한껏 만끽하고 싶었다.

배려심 넘쳤던 중국인 모녀의 반전

택시는 나를 게스트하우스 정문 앞에 내려주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내리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섰다. 들어서자 바로 왼쪽에 데스크가 있었고, 더 안쪽을 들여다보니 식사를 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데스크에서 일하시는 분은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이름을 말하니 게스트하우스 이용방법과 키 하나, 그리고 수건 하나를 건네준다. 내 방은 2층에 있단다.

방에 들어서니 엉덩이를 보이는 2층 침대 하나가 정면에 보였고, 그 왼쪽으로 창문을 가운데 두고 두 개의 2층 침대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내 룸메이트들은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침대를 골라도 된다고 해서 창문 왼쪽에 있는 침대 1층에 수건을 올려 놓았다. 물어보니 오늘 우리 방은 꽉 찰 예정이란다. 룸메이트들을 기다리며 캐리어를 열었다. 짐을 대충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같은 시기에 유럽을 여행하던 친구 은정이는 중국인에 대한 일화 하나를 저 멀리 포르투갈에서 전해주었다. 같은 방에 있던 중국인 여자가 방 안에서 요리를 해먹었다고 했다. 우리 아버지들이 등산을 할 때 가져가는 그런 조리도구들을 챙겨와 지지고 볶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 방은 남녀혼숙이었는데, 급기야 두 명의 호주남자가 참다 참다 뭐라고 한 마디 했단다.

셋은 안 통하는 말로 말싸움을 했고, 결국 남자 두 명이 방을 박차고 나가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거다. 나는 중국인은 무섭군, 이라고 답했었다. 그러면서 중국인을 조심하자, 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중국인은 조심할 필요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중국인 중엔 방에서 지지고 볶고 요리를 하는 류의 사람은 한 명도 없었으니까.

짐을 챙기고 있는데 밖에서 누군가가 영어로 설명을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더니 두 명의 중국인이 방으로 들어섰다. 고개를 들어 살짝 눈인사를 하니 둘 다 보일 듯 말 듯한 인사를 되돌려준다. 엄마와 딸이 함께 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푸짐한 인상의 어머니와 새초롬해 보이는 딸이었다. 뭐라도 인사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괜히 쑥스럽고 민망해 나는 그냥 풀던 짐을 계속 풀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조심스러운 사람들은 본 적이 없다.

중국인 어머니와 딸은 걷고 있는데도 발소리가 나지 않았고, 내가 중국인이었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거의 음소거로 이야기를 했다. 나를 염두에 둔 그들의 행동은 내가 지금까지 받아본 배려 중 최고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 방 안에 세 명이 있는데, 다른 두 명이 나를 배려하느라 귓속말을 하고, 성대를 이용하지 않고 이야기를 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다 나 때문에 벌어지는 일 같았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할까도 싶었지만 어쩌면 게스트하우스에선 이렇게 말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그만뒀다. 나는 그저 이 신경 쓰이는 상황을 탈피하고 싶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방을 나가주는 것밖에 없었다. 짐 챙기던 것을 얼른 마무리 짓고, 조용히 방을 빠져 나왔다.

해질 무렵의 제주 하늘 ⓒ 황보름


제주엔 어느새 어스름이 살포시 내려앉고 있었다. 걷기에 딱 좋은 시간, 딱 좋은 날씨였다. 번화하지도, 그렇다고 낙후하지도 않은, 특별할 것 없는 제주 시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저 예전부터 죽 그런 모습이었을 것 같은 제주였다. 어디가 어딘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선 아무 방향으로나 걸어보기로 했다. 길을 잃는다 해도 아무렴 좋았다. 아무렴, 다 좋은 것 아닌가.

걷다 보니 유명 브랜드샵들과 카페,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게 됐고, 마침 배가 고파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간단히 김밥집에서 김밥 한 줄을 사 먹었다. 사실,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을까도 했지만, 혼자 먹는 게 아직은 영 익숙하지 않아 망설이던 끝에 김밥 집을 선택한 거였다.

귀여운 연인들이 떡볶이와 우동, 김밥을 맛있게 나눠 먹는 모습을 보며 후딱 배를 채우고 밖으로 나왔다. 배도 든든해졌으니 더 기분 좋게 걸을 일만 남았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걸었나 보다. 다시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갈 때쯤엔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다.

자, 공짜 맥주 한 번 마셔볼까! 제주엔 게스트하우스가 참 많다. 그렇다는 건 경쟁이 심하다는 이야기. 그래서 각 게스트하우스는 자기 나름의 셀링 포인트를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이번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무료 맥주가 그것이었다.

오후 7시가 넘으면 누구나 냉장고에서 맥주 한 병을 꺼내 마실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이거구나! 싶었다. 분명 맥주를 마시다 보면 옆 사람과 눈인사라도 건네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말도 트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여행 정보도 공유하며 타지에서 보내는 밤의 쓸쓸함도 서로 달래줄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바로 게스트하우스가 우리 여행자들에게 맥주와 함께 베풀어 줄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아니겠는가!

나는 이렇게 될 것을 확신해 얼른 몸을 깨끗이 씻고 이까지 닦은 후 1층으로 내려왔다.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테이블에 앉았다. 한 모금, 두 모금 시원한 맥주는 목을 타고 흐른다. 계속 흐른다. 그러길 30분. 맥주를 다 마셔가는데도 나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못했다.

한 테이블엔 대만에서 온 대가족이 앉아 여행계획을 짜고 있었고, 다른 한 테이블엔 젊은 한국인 여자가 컵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었으며, 또 다른 테이블엔 왠지 노르웨이에서 왔을 것 같은 두 소녀가 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소파엔 중국인 가족이, 왼쪽 테이블엔 노트북을 뚫어져라 쳐다보고있는 한국인 남자가, 그리고 내 테이블엔 나 혼자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꽤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사위는 조용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어느 누구도 먼저 이 어색함의 벽을 허물지 못할 것 같았다. 이대로 간다면 두 시간이 지나도 옆 사람과 눈인사 한 번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잠이나 푹 자면 될 일이었다. 빈 병을 재활용 박스에 넣은 후 계단을 통해 방으로 올라왔다. 피곤해서 금방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난 이 날 거의 자지 못했다.

그렇게나 조심스럽고 배려심이 많던 중국인 어머니 때문이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30일, 제주를 달리다> 연재기사입니다.
#제주도 #제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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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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