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치면 안 될 수도권 명물... 여기가 '엄마들의 천국'

성남 모란장에 뒤지지 않는 경기도 최대 오일장 '일산장'

등록 2015.07.10 21:32수정 2015.07.12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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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리하며 비로소 보게된 사진 속 왼쪽 세 사람의 모습에 웃었다. 어떤 마음들이었을까. 놓친 것이 아쉽다. 다시 보고 싶은 모습이다. 사진 정리하며 보니 '사람들이 있어 아름다운' 풍경들이 많다.(2015.7.3 일산장) ⓒ 김현자


내 고향(김제)에는 원평장(4.9 오일장)이 열리곤 한다. 지금은 규모가 매우 작지만,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인근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매우 큰 장이었다. 장터 원평은 장날이 아닌 날에도 약장수들이 와 연극을 할 정도로 유서 깊은 곳이었다.


3·1만세 운동 당시 모여 만세를 불렀던 곳이며, 동학농민전쟁 당시엔 장날을 이용해 집회를 했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인근에 전봉준(1854~1895년)이 살았던 집을 비롯하여 동학농민전쟁 유적지들도 좀 있다.

원평장에서 1km쯤 떨어진 고향마을은 '새로운 장'이란 뜻의 '새장터'다. 어렸을 때부터 "원평장이 조선 10대 장에 들었단다"거나 "우리 마을은 목포나 광주 같은 지방에서 올라온 장꾼들이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선비들이 머물거나 국밥 등을 먹던 주막들이 즐비했던 곳"과 같은 이야길 동네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다. 동네 가운데로 국도 1번 길이 있는데다가, 밭가나 집터에 그릇 깨진 것들이 무더기로 있는 것을 보면 근거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어느 상점에 가면 무엇이 있을까?"
"오늘 무엇을 좀 내다 팔아야겠어."
"어디에 들러 뭣 좀 사다주세요."

장날 아침이면 동네는 이런 이야기들로 술렁이곤 했다. 부모님도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에 언제나 가곤 했다. 참으로 오래 전 일인데, 약장수 연극을 보러 가던 것, 우시장의 소들, 국밥 먹던 일, 길고 넓게 흐르던 원평천 등 지금도 장날 풍경들이 떠오른다.

어렸을 적 장날 풍경이 떠오르는, 100년 전통의 '일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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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좋아하는 남편과 딸이 일산장 덕분에 올봄 생선을 많이 먹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여러 장을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많기 때문인지 물건들도 좋고 대체적으로 싼 편이다. 생선도 그중 하나다.(2015. 7.3. 일산장)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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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신도시가 형성된 일산 신도시 주변에는 여전히 밭과 논이 많다. 일산장을 구경하다보면 집에서 가꾼 것들을 뜯어와 파는 사람들도 좀 보인다.(2015.6.8. 일산장) ⓒ 김현자


지난 3일은 일산장(3·8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었다. 장이 열리는 때에 맞춰서 일산장에 갔다 왔다. 들리는 말로 일산장은 성남 모란장과 함께 서울·경기권에서 열리는 가장 큰 오일장이며(내가 봤을 때는 모란장이 더 큰데, 일산쪽 할머니들은 일산장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 전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오일장이란다. 반찬거리들을 사며 상인들 몇 명에게 물어보니 다들 100년 넘은 장이라고 했다. 그러나 일산장의 역사를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서울을 막 벗어나는 이곳 고양시로 이사 온 것이 1992년 가을. 그동안 그리 멀지 않은 일산장에 대해 자주 들었으나 일산 오일장에 간 것은 올봄 들어서다. 오일장에 대한 추억이 각별한데도 그간 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5일마다 열리는 오일장과 항상 열려있는 시장 구분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쁜 생활에 아무 때나 쉽게 갈 수 있는 마트를 두고 멀리 갈 필요를 느끼지도 못했었다. 실은.


"아무 곳에나 없지. 일산장에 가야만 살 수 있어."

무슨 이야길 하다가도 이런 식으로 말하는 노인들이 좀 있었다. 그래서 '대체 일산장이 얼마나 크고 좋기에 걸핏하면 일산장, 일산장 하는 거야?'란 호기심을 가졌었다. 예전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하필 오일장이 열리지 않는 날이었다.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시장 정도로 보였기에 내 고향 원평장처럼 쇠락한 오일장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흥미가 떨어져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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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과수원을 한 친정. 오랫만에 친정아버지가 오직 자식들만을 위해 가꿔 따먹던 유독 컸던 천도복숭아를 떠올리게 한 유독 큰 천도복숭아를 만났다. 아무래도 해마다 7월이면 일산장에 가지 않고는 안 될 것 같다.(2015. 7.3. 일산장)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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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장날마다 우리들 먹을 군것질 거리를 사오시곤 했다. 그래서 나도 장에 갈 때면 아이들 먹을 것을 한 가지라도 꼭 사게 된다.(2015.7.3.일산장) ⓒ 김현자


그런데 지난 봄, 일산장을 지나는 곳으로 두 달 동안 출퇴근했다. 남편의 직장도 일산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일주일에 3일 정도 만나 함께 퇴근하곤 했다. 무심코 지나오던 어느 날 눈에 들어온 어마어마한 장날 풍경이라니! 차들이 지나는 대로변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좌판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거나 구경하고 있었다. 지난 20년 가까이 잘못 알고 있던 일산장의 실체를 비로소 보게 된 것이다.

그날부터 지난 7월 3일 장까지 장날마다 거의 들러 구경하거나 장을 봤다.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이 일산장이 좋다고 했던 이유가 새록새록 느껴지고 비로소 이해됐다.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상인들도, 물건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농산물들이나 생선 등은 매일 시세가 다른 만큼 같은 날 동시에 가봐야 비교가 확실하겠지만, 자주 가던 원당시장(고양시 원당)이나 연신시장(은평구 연신내)보다 확실히 좀 싸게 판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다.

어린 시절의 그 장날과 전혀 다르나 '무언가'로 설렜다. 어느 날엔 장을 구경하다가 문득 내가 사랑에 막 빠지기 시작했을 때와 비슷하단 생각에 웃기까지 했었다. 상대적으로 이것저것 더 많이 사다보니 가계 지출이 눈에 띄게 늘어버려 이번 장에는 가지 말아야지 다짐해놓고도 장날이면 마음이 들떠 결국 들르곤 했다. 그렇게 올봄과 초여름에 일산장에 빠졌었다.

다른 장에서는 볼 수 없는, 일산장만의 매력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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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지친 어느날, 피곤한데도 들렀던 일산장. 이것 하나 사다가 남편과 반주를 나눴다(2015.7.8.일산장)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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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막걸리 마시러 간다는 소문도 들었는데 이 집을 지날 때마다 이야기로 왁자지껄한 것을 보면 맞나보다. 휴일과 장날이 겹치는 날 남편과 막걸리 마시러 가자 약속한 집이다(2015.7.3. 일산장) ⓒ 김현자


누가 내게 일산장이 특히 좋은 이유를 물으면 첫째는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직접 수확한 것들을 살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할 것이다. 직접 가꿔 먹거나 누군가 직접 가꾼 것을 얻어 먹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먹는 것들보다 훨씬 싱싱하고 맛있다는 것을. 일산이나 인근 지역들의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에는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많다. 돌아다니다보면 직접 재배한 것들을 조금씩 가지고 나와 팔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일산장을 몇 번 이용하면서 좋다고 생각한 것 중 다른 하나는 가죽나물이나 아주까리 잎처럼 집에서 키우지 않고는 먹을 수 없는 것들이나, 도시인들은 쉽게 구할 수 없는 질경이 같은 것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6월 어느 장날, 할머니 세분이 모여 나물을 파는 곳에서 질경이와 아주까리 잎과 비름나물을 샀다. 모두 직접 채취한 것들이었다. 보통 크기의 배낭에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인데 4000원 밖에 하지 않아 횡재한 기분이었다.

어느 장날엔 아마도 장날 새벽부터 땄을 앵두 한 대접을 어떤 할머니에게 사먹기도 했다. 이런 것들을 사먹을 수 있는 것도 일산장의 재미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리 많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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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장에 갈 때마다 잠깐이라도 서서 보고 오곤 하는 기름 짜주는 집(2015. 6.8. 일산장) ⓒ 김현자


"이 지역에선 발생하지 않았지만 메르스 여파가 없을 수 없죠. 보세요. 마스크 쓴 사람들이 어디 있나. 한 사람도 안보이잖아요. 그런데도 손님이 3분의 1 정도는 준 것 같아요. 메르스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이 줄었어요."

메르스로 전국이 긴장 상황이던 6월 8일 장날, 일산장에 가려고 하니 막상 메르스가 걱정됐다. 그리하여 몇 시간을 망설이며 이것저것 마음속 계산만 하다가 이후부터 바빠져 가기 쉽지 않은 데다가, 생선을 좀 넉넉하게 사두자 싶어 결국 가게 됐다. 한눈에도 5월보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준 것 같아 몇몇 상인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이와 비슷하게 대답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3분의 1 정도 줄었노라'는 상인들 이야기를 들으니 장에 가기 전처럼 다시 마음이 복잡해졌었다. 다행히 내가 사는 곳이나 가까운 일산 지역에선 메르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메르스가 한창이던 지난달 6월, 일산장은 두 번 열리지 않았다. 일산장이 생긴 이래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7월 3일 장날에도 상인들 몇에게 물어보니 6월 보다 좀 나아지긴 했으나 휴가철도 가깝고 그래선지 "메르스 전만 못하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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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묻곤 한다. 남편이 좋아하는 이 집 통닭을 산다고 많이 기다린 적이 있다. 더울 텐데 전혀 짜증이 없는 모습이 좋아 물었던 것인데 역시나 호탕하게 말했다. "찍어주세요"(2015.7.3 일산장)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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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가리지 않고 마트며 동네 시장에 가던 습관으로 7시 넘어 간 적도 있다. 그런데 좀 일찍 가는 것이 좋다. 여름이라 그래도 사람들이 오가는 시간인데도 물건을 다 팔아 닫아버린 집들도 제법 있었다.(2015.7.3) ⓒ 김현자


일산장에 처음 가기 시작했던 4월 말보다 사람들이 많이 줄긴 했다. 그러나 일산장만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일산장 다음날엔 포천 인근의 송우리장에, 그 다음날엔 시화장에 간다는 그 상인에 의하면 그 곳들도 메르스 이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그리 넉넉한 살림이 아니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장날마다 종이에 싼 생선이나 고기와 함께 설탕을 흠뻑 뒤집어 쓴 핫도그나 찐빵, 번데기 같은 것들을 꼭 사오시곤 했다. 배추나 무를 파는 가을 장날이면 점심시간마다 장으로 불러내 팥죽이나 국밥, 잔치국수 등을 사주시곤 했다. 이외에도 오일장 추억이 워낙 많다. 오일장은 내게 막연히 푸근한 곳이며, 딱히 표현 못할 무언가로 설레는 곳이다.

이런 추억 때문에 아이들 군것질 거리들을 가급 챙겨 사오곤 한다. 기름을 모두 제거한 후 튀김옷을 전혀 입히지 않고 바삭바삭하게 튀겨주는 시장통닭과 직접 반죽해 튀겨 파는 도너츠와 꽈배기는 우리 아이들이 참 좋아하는 것이다. 장날이면 삼삼오오 일산장에 막걸리 마시러 가는 사람들도 많다는 소문도 틀리지 않나보다. 떡갈비와 등갈비를 숯불에 구워 파는 포장마차엔 많은 사람들이 앉아 주거니 받거니 왁자지껄하니 말이다.

일산장이 열리는 대로변 일부는 주차단속을 한다. 많은 차들이 지나는 길과, 길에 인접한 골목을 따라 장이 열리기 때문에 차와 사람이 엉켜 사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란다. 일산장을 조금 벗어난 곳에 주차장도 있고, 인근 일산역 등에도 주차할 수 있다. 그러나 가급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일산역에서 걸어서 5분 거리다. 서울에서 567번 버스가 간다. 또 일산 지역만을 운행하는 여러 노선의 버스들이 많이 지난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일산장 #오일장 #원평장(김제) #장날 #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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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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