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그러나 자연의 치유력은 뛰어났다

[고양힐링누리길] 송강누리길과 고양동누리길을 걷다

등록 2015.07.09 09:28수정 2015.07.09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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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누리길이 시작되는 곳. ⓒ 유혜준


비가 온다더니 종일 하늘이 말짱했다.

당연히 한낮은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7월 첫날, 고양힐링누리길을 걸었다. 우리의 선택을 받은 길은 송강누리길(7코스)과 고양동누리길(8코스). 멋진 길아, 우리가 간다. 기다려라.


출발지는 테마동물원 쥬쥬. 송강누리길 안내판 앞에 서면 늘 마음이 설렌다. 공릉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걷기 좋은 길이 눈앞에 삼삼하게 펼쳐지니 마음이 설레는 건 당연하지.

오후 한 시, 햇볕은 뜨거웠다. 땅에서 지열이 올라왔다. 그래도 길옆으로 펼쳐지는 공릉천은 흐르는 물 때문인지 시원해 보이기까지 했다. 더운 날, 물속에 들어갈 수 없다면 물을 보면서 걷는 것도 좋지.

이날 길 친구는 김운용 고양시청 녹지과장, 정창식 주무관, 최한범 주무관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노라면 어느덧 마음을 열어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된다. 그래서 걷기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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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 ⓒ 유혜준


한여름에 걸을 때는 얼음물을 준비하면서 틈틈이 마셔주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가끔은 나무 그늘 아래를 찾아 쉬어주는 것도 좋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걷자, 한여름에는.

송강누리길은 고양힐링누리길 7코스로 공릉천을 따라 걷는 구간이 많은 길이다. 월산대군 사당과 송강 정철이 한때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던 길이기도 하다. 때문에 길옆에 송강정철 시비가 세워져 있으며, 송강의 연인이었던 강아의 무덤이 남아 있다.


옛사람의 흔적은 세월이 흐르면 역사가 된다. 월산대군 사당에서 연산군과 월산대군 부인 박씨를 떠올리고, 송강 마을에서는 송강 정철의 가사를 떠올리게 되는 건 그 때문이겠지.

공릉천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사과나무와 살구나무를 보았다. 이 길에 사과 과수원도 있다. 가을에는 빨갛게 입맛을 자극하는 빛깔로 익어가는 사과를 볼 수 있다. 그 사과, 맛나다. 아직은 푸른빛이 짱짱한 사과는 폭염 아래서 영글어가는 중이다.

7월인데 산딸기가 아직 남아 있다. 따서 입 안에 넣으니 시다. 너무 시어서 진저리가 쳐진다. 여름은 꽃 위에, 나뭇잎 위에, 영글어 가는 열매 위에서 머물면서 느긋하게 폭염을 즐기고 있다. 그 옆을 우리가 잰 걸음으로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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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 철길 ⓒ 유혜준


공릉천 옆을 벗어나니 철길이 펼쳐진다. 이제는 운행이 중단된 교외선은 철길이 남아 교외선을 타던 지나간 젊은 날을 떠올리게 한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다웠을까? 그렇지 않다. 아름답지 않았던 것은 아무리 긴 세월이 지나도 아름다워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젊은 날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푸른빛으로 잘 자란 벼가 빼곡하게 들어찬 논은 고양시가 도농복합 지역이라는 사실을 말없이 알려준다. 그래, 도시에서도 길을 나서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지. 한두 번 본 풍경이 아닌데도 볼 때마다 좋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니 볼 때마다 좋아서 입이 저절로 벌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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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누리길 ⓒ 유혜준


길은 송강마을을 지나 다시 공릉천으로 이어졌다. 메타세쿼이아가 길게 늘어서서 걷는 이들을 반기는 길이다. 포장된 길이라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잘 자란 메타세쿼이아가 달래준다. 나무들은 공릉천을 굽어보면서 늠름하게 서 있다.

공릉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넜다. 길도 건넜다. 필리핀참전비가 보인다. 이곳에서 송강누리길이 끝나고 고양동누리길이 이어진다. 고양동누리길은 필리핀참전비에서 시작해 최영 장군묘를 지나 안장고개까지 이어지는 길로 울창한 숲과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진다. 걸으면 걸을수록 걷고 싶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고양동누리길로 접어드니 흐드러지게 피어난 능소화가 눈길을 잡아끈다. 길 위에 능소화 꽃잎이 점점이 뿌려져 있다. 꽃은 피었다가 지고 세월은 무심히 흐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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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 산불 흔적이 최영 장군묘를 알리는 표지판에 남아 있다. ⓒ 유혜준


지난봄, 최영 장군 묘가 있는 대자산에서 산불이 났다. 불은 건조한 날씨 때문에 쉽게 잡히지 않고 계속 번져 사람들의 애를 태웠지만, 결국 진화됐다. 산불 때문에 나무가 모조리 타버린 거나 아닐까, 걱정했지만 자연의 치유력은 뛰어났다. 곳곳에 검게 탄 나무가 남아 있긴 했지만, 주변은 복원이 시작되고 있었다.

"불이 오래 머문 게 아니라 스치고 지나가서 괜찮았어요. 불이 오래 머물렀으면 땅 밑까지 타서 복원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겁니다."

김운용 과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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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산 나무들에 산불 흔적이 상처가 되어 남았다. ⓒ 유혜준


산불이 나던 날, 고양시청 녹지과 직원들은 전부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됐다. 그 날, 나는 고양힐링누리길을 걷고 있었다. 산불 소식을 듣고 크게 번지지 않고 빨리 진화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길을 다 걷고 밤늦게 귀가할 때까지 산불이 잡혔다는 소식을 듣지 못해 애간장을 태웠다.

그런데 그게 벌써 3개월도 더 된 얘기가 됐다. 지금처럼 자연의 치유력이 빠르다면 내년에는 불이 났던 흔적을 아예 찾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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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동누리길. 대자산 숲길. ⓒ 유혜준


대자산을 넘기 전, 자두나무들을 보았다. 붉은 열매가 가지가 휘도록 달렸다. 바닥에 떨어진 자두를 주워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달콤하면서 새콤한 과즙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향기롭기까지 하다. 아, 자두가 이런 맛이었지. 대자산 입구에 자두나무가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이제는 자두를 볼 때마다 대자산을 떠올리겠구나, 고양동누리길을 떠올리겠구나.

다시금 길은 그리움으로 남았다. 추억이 되었다.

이날, 우리는 고양향교 앞까지 걸었다. 3시간 40분 동안 걸었다. 걸은 거리는 10km 남짓이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 건 그만큼 우리가 천천히 길을 음미하면서 걸었다는 의미였다. 이제 우리는 걷기의 달인이 된 것이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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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누리길과 고양동누리길 지도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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