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림 있는 김광석 노래, 세대 잇는 '고리'되다

[리뷰] 구자형의 <김광석 포에버>를 읽고

등록 2015.07.09 11:24수정 2015.07.09 16:36
0
원고료로 응원
김광석 노래는 어느 곳에나 어울린다는 장점이 있다. 특히 어느 시간에 들어도 큰 울림을 갖는다. 한마디로 시공을 초월한다는 인상을 자주 받는다. 올해 초 출간된 <김광석 포에버>(구자형 지음, 박하, 2015)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광석의 목소리는 마치 아침 안개 낀 숲속의 오솔길 같다. 이른 새벽 하얗게 안개 낀 길을 걸어 나가면, 어느새 산새들이 지저귀고 참새들이 짹짹거리고 표로롱표로롱 날아다니곤 한다. 좀 더 나아가면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가슴은 서늘한 새벽바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감과 상쾌함으로 몸을 떨게 된다. 김광석의 노래는 그렇게 작은 오솔길을 걷듯 한적하게 시작한다. - 214쪽.


오늘처럼 날씨가 뜨거워지는 어느 오후엔 '나른한 오후'라는 노래가 좋다. 그늘을 찾아 선술집에라도 들어가는 날이면 시원한 막걸리에 파전을 먹으며 '이등병의 편지'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를 들으면 안주가 따로 필요 없다. 그의 노래엔 마법이 걸려 있다.

a 책 표지. 저자인 구자형 씨는 김광석을 쓰기 위해 많은 인물을 인터뷰했다.

책 표지. 저자인 구자형 씨는 김광석을 쓰기 위해 많은 인물을 인터뷰했다. ⓒ 박하


언제 어디서나 사랑 받는 김광석표 노래들

책은 김광석 노래가 여전히 사랑 받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묻는다. 어느 벗은 김광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넌! 오래도록 그리움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렇다. 김광석과 그의 노래들은 그리움의 현재 진행형이다.

김광석이, 김광석의 노래들이 오랫동안 사랑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노래들은 수많은 음반산업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았다. 특히 김광석의 삶이 재조명되고 평전으로 기록되며, 후배 가수들이 존경한다. 김광석의 노래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수 지망생들에 의해 다시 불린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그의 노래들이 배경음악으로 쓰이고, 영화의 한 대사로 각인된다. 그의 삶이 다큐멘터리로 재구성되고, 그를 헌정(tribute) 하는 음반이 제작된다.

김광석 노래의 본질은 절망에서 피워낸 진심 어린 목소리라는 점에 있다. 그 절망이란 시대적 배경뿐만 아니라 한 개인이 짊어져야 했던 청춘의 십자가일 수 있다. 구자형은 에바 캐시디를 김광석과 비교한다. "에바 캐시디와 김광석 두 사람 모두 패배와 절망에서 출발한다... 그렇게 세상 축복을 향한 오체투지 같은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었다.


김광석이 한국 모던포크의 살아 있는 전설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의 노래를 '슬픔의 노래'로 여겼으나, 그를 보낸 후 '아픔'의 노래로 받아들여 왔다. 모든 편견과 경계를 넘어서기 위해 맨살로 철조망을 돌파하고자 했던 고통의 기록이고 청춘의 살점이었으며 이 땅의 모든 당신들에게 바치는 따사롭고 눈부신 꽃다발이기도 한 것이다.

예전부터 김광석은 노래 하나만으로 우리들을 울고 웃게 했다. 노래의 진정성이라는 것이, 단지 화려함만으로 혹은 단순히 구호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점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다. 김광석이 직접 작사, 작곡한 <일어나>는 모든 질곡을 뚫고 지나간다.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책에선 "빗방울처럼 거세게 쏟아졌던 그 무수한 영혼의 노래들, 그 음표 하나하나는 바로 김광석 자신의 눈물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너와 나,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고리'

김광석의 노래는 또 다른 나와 함께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이러한 점을 알고 있었을까. 그의 노래들은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연결 고리가 되고 있다. 책에선 이에 대해 "민요가 전승되듯 김광석의 포크 정신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세대와 세대를 잇는 것"이라며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고리"라고 적었다.

김광석이 본격적으로 활동했던 시기는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이다. 이때는 사실 대중음악이 가장 부흥했지만 동시에 가장 혼탁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방송과 음악산업은 좀 더 자극적인 요소들에 기댔고 노래의 표절 시비로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혼돈의 틈 안에서 부지런히 노래실력과 음악적 소양을 쌓아온 김광석은 빛을 발휘한다.

김광석의 백밴드로 활동했던 이민영씨는 저자 구자형씨와 인터뷰에서 김광석이 했던 말을 전했다. "민영아, 벽난로 불은 항상 같은 불인데 똑같은 모습이 한 번도 없다. 파도도 그래." 이에 대해 구자형씨는 "늘 변함없지만 늘 변화하는 불길과 파도 같은 음악과 노래. 그것이 김광석 음악인 셈"이라고 적었다.

음악작집 <SEE>의 이상호 발행인은 김광석의 음정이 좀 불안한 검이 있지만 그게 오히려 더 노래에 집중하고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떨림과 울림이 끌림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노래 사이 사이의 이야기는 덤이다. 노래운동 연합동아리 출신인 김제섭, 박미선씨는 김광석 노래에 침묵이 있다고 말했다. "소리와 음악을 잉태하고 거둬들이는" 김광석 노래들은 쉽게 열어보이지 않고 잘 감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녹음실 '부밍'을 운영하는 임창덕 대표는 김광석이 감정에 충실했다고 한다. 음정이나 박자를 완벽하게 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노래의 흐름과 전체를 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김광석은 노래 음표 하나하나인 나무보다는 노래가 전달하려는 감정의 선인 숲을 보려고 했다.

김광석과 시대에 대한 부채감을 안고

한편, 방송작가로, 가수로, 음악평론가로 활동한 구자형씨는 김광석에 대한 부채감을 드러낸다. 민주화를 외치던 시절,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직이 노래한 게 바로 <거리에서>다. 김광석을 대중에게 적극 알린 건 바로 이 노래다. 1987년 제작된 '동물원' 앨범에 수록된 이 노래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들은 시대의 아픔을 직접적으로 담아내는 저항의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지만 역사의 현장을 못 본 척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들과 비슷한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통기타와 평소 입던 차림으로 무대 위에 올라 미안한 듯,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나직이 노래했다. 그중 백미가 바로 김광석이 노래했던 <거리에서>다. - 23쪽

김광석은 시대를 노래한 건 아니지만 일상 속의 슬픔을 통해 시대에 짓눌린 소시민을 위로했다. 구자형씨는 "민중가수는 미래의 역사 속으로, 대중가수는 사랑의 역사 속으로 자신을 투신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참으로 무섭다. 그는 그런 김광석을 지켜주지 못해 쪽팔리다고 말한다. 결국, 김광석은 "주변의 모든 것들을 껴안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으로 기억된다.

영국의 포크 싱어 도노반, 민중음악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한 김민기, 토속적 포크음악으로 심금을 울리는 송창식. 이들을 좋아했던 김광석은 그 모든 포크음악 정신을 수렴하고 토해냈다. 슬픈 영혼의 목소리를 지닌 김광석. 그는 일상 속의 슬픔을 무수히 많이 노래했기에 그 자체로 슬픔이 되어 시대를 껴안은 채 떠났다. 지금 남아 있는 자들은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 받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서평입니다.

김광석 포에버

구자형 지음,
박하, 2015


#김광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4. 4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5. 5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체코 언론이 김건희 여사 보도하면서 사라진 단어 '사기꾼' '거짓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