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국도 걸으며 마주친 무서운 진실

[인터뷰①]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 기행 신혜정 시인

등록 2015.07.20 15:38수정 2015.07.20 15:43
2
원고료로 응원
a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저자 신혜정 시인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저자 신혜정 시인 ⓒ 유혜준


며칠 전, 신혜정 시인에게 쪽지를 받았다. 시인은 대한민국 원자력발전소를 기행하고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를 출간했다며 서평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그이의 쪽지를 읽는 순간 꼭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쪽지 내용에서 "이번 길을 다니면서 느낀 점은 핵발전 문제가 비단 환경단체나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뿐 아니라 저 같은 문학 하는 사람,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라는 대목이 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 말, 깊이 공감한다.

핵발전이 얼마나 위험한지, 그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끔찍한지 사람들은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원전 23기가 가동되고 있고, 원전밀집지역 세계 1위인데도 대다수 국민은 원전 문제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그 피해가 우리에게까지 미치고 있는데도 그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현실인데 스스로 나서서 핵발전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하면서 핵발전소를 기행하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낸 시인이 있다니 꼭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만나자고 했다. 시인을 만나기 전에 시인의 책,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도 읽었다.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시인의 감수성을 내세워 제 감정에 겨워하는 내용이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했지만, 시인은 원전 공부를 아주 철저하게 했고, 그 내용을 알기 쉽게 아주 잘 풀어냈기 때문이다. 시인은 발품을 팔아 둘러본 원전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을 깊이 있게 절절하게 잘 그려냈다. 책표지의 설명대로 '핵발전소의 민낯을 들추고 속살을 헤집는' 작업이었다. 쉽지 않았을 텐데 성실하고 꼼꼼하게 아주 잘해냈다.

이런 책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이 읽어야 한다. 어른보다 청소년들이 읽어야 나중에 그들이 성장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을 때, 우리 사회를 바르게 이끌어나갈 수 있지 않겠나. 시인은 "이 책을 청소년들이 읽고 어른들에게 분노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늦은 오후, 신혜정 시인을 군포시청 북카페에서 만났다.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시인은 홀로 작업하기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런 사람을 길 위로 기꺼이 나서게 하고, 행동하게 한 것은 핵발전이었다.


원전과 함께 사는 사람들 만나다

핵은 알면 알수록 엄청나게 무서운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 역시 그러했다. 2013년, 일본 서부지역 원전 투어를 하면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 지역을 둘러보면서 몸서리를 치고 진저리를 쳤던 기억은 생생하다. 그 때문에 시인의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이 더 절절하게 가슴을 파고들었고, 가끔은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다음은 신혜정 시인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 책 내용이 상당히 알찹니다. 공부를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전문가가 아녀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 시인인데 어떻게 원전에 대해 관심을 두고 책까지 내게 되었는지?
"책의 서문에 쓴 것처럼 고이데 히로아키의 책을 읽다가 충격을 받았어요. 고이데 히로아키가 펴낸 책을 보면 '여러분께, 특히 젊은 사람들과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정말로 미안하고, 힘없는 내가 한심하기도 합니다'고 하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 궁금했어요. 그 때부터 핵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고이데 히로아키의 <원자력의 거짓말>을 읽은 시인은 핵발전에 관심을 두고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한다. 핵발전소가 있는 국내의 모든 지역을 가보리라. 무모한 계획일 수도 있지만, 시인은 양양의 양수발전소를 찾아가는 것으로 첫걸음을 뗐고, 이후 멈추지 않았다.

- 그때가 언제인가요?
"후쿠시마 원전사고 2주기가 지난 2013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생각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고 평소에 생각해왔어요. 지금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하자, 그런 성격이에요. 이 문제도 마찬가지였어요."

시인은 핵발전소 기행을 기획한 뒤 출판사에 출판을 제안했다. 출판사에서는 이런 책이 꼭 필요하다면서 시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원자력발전소 기행을 나선 시인은 7번 국도 위에 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도로 꼽히는 7번 국도는 강원도 고성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다. 나도 한때 이 길을 걸었다. 물치항에서 삼척까지 도보로 여행했다. 그때 만난 바다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국도변에 울진, 경주, 부산이 있고 그곳에 원전들이 있다. 시인은 그곳에서 원전을 만났고, 원전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핵발전소가 생기면 우리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

a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저자 신혜정 시인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 저자 신혜정 시인 ⓒ 유혜준


- 혼자 가서 어색했을 텐데요?
"그렇죠, 약간은. 해봤던 작업이 아니라 약간 두려움도 있었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하지, 하면서 바다만 혼자 다녀오기도 했어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을 수소문해서 이메일로 연락을 드리고 전화를 드리고 했어요."

탈핵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연락한 경우가 많았지만, 고리에는 그냥 갔단다. 낯선 젊은 여자를 보고 동네 어르신들이 호기심 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그냥 사소한 얘기를 하다가 분위기가 되면 (핵발전소에 대해) 한두 마디를 물어보기도 했어요. 길천리(기장군)에서는 집단이주대책 사무실이 있기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눴는데 경계를 하시더라고요. 어디서 왔는지, 누가 보냈는지 묻고 이름을 알려달라고 하면서 경계를 많이 하셨죠."

- 갔던 곳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영덕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영덕에 블루로드가 있는데 그냥 바닷길이라서 블루로드라고 지은 줄 알았더니 정말 너무 예뻤어요. 거기에 핵발전소가 생기면 그 길이 없어질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미역 말리던 할머니들과 얘기하던 기억이 많이 나요."

영덕은 핵발전소 예정지역이다. 핵발전소가 건설되면 '블루로드'는 더는 아름다운 길이 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우려하고 있다.

-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자료와 책을 읽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다 기억에 남지만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는 책의 제목을 따온 <체르노빌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아요. 체르노빌 피해 지역 사람들의 육성을 가감 없이 기록한 것이거든요. 워낙 많은 사람의 육성이 담겨 있어서 그 책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나라 핵사고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3.11 이후를 살아갈 어린 벗들에게>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경험한 사람이 쓴 책인데, 그 책도 기억에 남아요."

시인은 "핵발전은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는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과 오만을 가장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예"라며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고 있다"고 핵발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고작 30~40년 동안 전기를 생산하고자 30만 년이 지나도 방사선 누출을 막을 수 없어 격리 외에는 대안이 없는 시설을 계속 만드는 것을 당장에 멈춰야 한다는 것이 시인의 주장이다. 시인은 말한다. 핵기술은 '생명을 담보로 하는 비윤리적인 기술"이라고.

☞ 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기사 보기)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왜 아무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았나>(신혜정 지음 / 호미 펴냄 / 2015.06 / 1만2000원)
#신혜정 #핵발전소 #원자력발전소 #핵 #후쿠시마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