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알바 노동자와 자영업자 싸움 아니다

[주장] 최저임금 인상 논쟁, 고질적 지대 문제 개선이 먼저

등록 2015.07.18 19:42수정 2015.07.18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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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중순 즈음, 나름 오랜 기간 준비해왔던 엄마는 아담한 카페 하나를 차렸다. 역세권은 아니었지만 유동 인구가 적지 않아 소소하게는 될 만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못했던 것은, 매달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임대료 때문이었다. 임대료는 늘 상품 원가를 미처 제하기도 전의 매출에서 최소 25% 이상을 차지했다. 여기에 각종 공과금까지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것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고용할 여력은 없었다. 엄마는 매장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셔터를 내리는 오후 11시까지 자리를 지켰고, 글쓴이와 동생이 틈틈이 매장에 나가 일을 도왔다. 조금이라도 마진을 더 남기기 위해서는 유일한 '유동 비용'인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없어서였다. 가족까지 일에 뛰어들었지만, 현상 유지를 하는 것조차 힘에 겨웠다. 시간과 날씨처럼 다양한 요소에 영향을 받는 영업 특성상, 매출이 모자랄 때는 당시의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계산한 것과 비슷한 경우까지 있었다. 그럼에도 임대료는 꼬박꼬박 나갔다.

그렇게 휘청대며 매장을 운영하던 무렵, 좁디좁았던 주변 거리에는 5개 이상의 카페가 입점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형 프랜차이즈도 있었다. 엄마는 결국 그 지점에서 운영을 접었다. 프랜차이즈는 역세권부터 시작해 골목 상권까지 스며들었다. 매장을 넘기는 과정에서는 권리금이 발목을 잡았다. 애초 투자했던 권리금을 그대로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결국 뼈아픈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이른바 '생계형 자영업'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도, 자영업자도 모두 힘든 세상

a  최저시급을 소재로한 '알바몬' 광고의 한 장면.

최저시급을 소재로한 '알바몬' 광고의 한 장면. ⓒ 알바몬


내년 최저시급이 최근 6030원으로 확정됐다. 전년도보다 450원이 올라, 2008년 이후로는 최고 인상률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만족하는 주체는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특히 임금 근로자와 영세 자영업자는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자영업자는 '더 이상 치솟는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고,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은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어서다.

현행 5580원인 최저시급을 주 40시간 기준으로 환산한 급여는 약 116만 원이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시한 2013년 단신 근로자의 한 달 생계비인 150만 6220원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가족은커녕 제 한 몸조차도 건사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최소한의 인간적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은 오르는 것이 맞다. 최저임금 선에 간신히 맞춰주는 편의점이나 PC방 등지에서의 벌이로는 부족해, 공장이나 공사판까지도 다녔던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봐도 최저임금은 지속적으로 올라야만 한다.

그러나 어떻게든 인건비라도 줄여보려는 영세 자영업자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최저임금의 인상은 부담스럽다. 시급 450원의 인상은 곧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근로자 1인당, 당장 한 달에 10만 원 이상이 더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른 퇴직 후 받아낸 목돈으로 간신히 점포를 차린, 적잖은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가족을 동원하면서까지 버티고 버티다 종내에는 간판을 내리고 만다.


'직원 최저임금조차 챙겨줄 여력 없으면 당연히 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보인다. 냉정하게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자영업이 단순히 인건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충분히 직원을 고용하고, 또 최저임금을 챙겨주고 싶어도 결코 그럴 수 없도록 하는 '전가의 보도'가 있다. 끝을 모르고 치솟는 권리금과 임대료 등의 '불로소득'이 대표적이다.

최근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주목받는 마포구 연남동 일대의 건물 임대료는 평당 4000만 원을 호가한다. 비공식적적인 관행으로, 주변 시세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권리금은 1억 원을 넘나드는 경우도 많다.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 이태원 등 이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명소가 된 곳들도 마찬가지다. 점포를 차리고 또 운영해나가면서 치러야만 하는 '지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이 비용은 다른 모든 부대 비용을 압도하고 있다.


매출은 갖가지 여건에 따라 들쑥날쑥할 수밖에 없지만, 이 같은 고정 비용은 고스란히 지출 내역으로 빠져나간다. 무엇보다 당장 다음 달 임대료가 큰 폭으로 오르거나, 계약 만료 후 갑작스런 '연장 불가' 통보를 받는 경우도 허다하다. 프랜차이즈와 계약을 맺은 경우에는 초기에 과감히 투자할 수밖에 없는 가맹비와 로열티 등의 비용까지도 치러야만 한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비 여력이 늘어 자영업 매출이 는다고는 하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자영업자들이 어쩔 수 없이 유일한 '유동 비용'인 인건비라도 졸라매려는 배경이다.

더 시급한 문제는 따로 있다

a "최저임금 450원 인상? 장난햐냐?" 알바노조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앞에서 '최저임금 6,030원 규탄 및 최저임금 1만원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국민들의 삶이 100원짜리 몇개의 흥정꺼리가 되었다" "올해도 공익으로 포장된 정부 입장이 그대로 결정되었다"며 최저임금위 구조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결정 이전부터 6천원대를 흘린 정부와 여당은 30원 턱걸이가 저임금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설명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최저임금 450원 인상? 장난햐냐?" 알바노조 회원들이 지난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앞에서 '최저임금 6,030원 규탄 및 최저임금 1만원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참석자들은 "국민들의 삶이 100원짜리 몇개의 흥정꺼리가 되었다" "올해도 공익으로 포장된 정부 입장이 그대로 결정되었다"며 최저임금위 구조 개혁을 촉구했다. 또한 "결정 이전부터 6천원대를 흘린 정부와 여당은 30원 턱걸이가 저임금에 허덕이는 국민들의 삶을 어떻게 바꿀지 설명해야한다"고 촉구했다. ⓒ 권우성


결국 천정부지로 치솟은 '지대'를 해결하려는 시도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최저임금의 인상은 도리어 다른 문제만 야기한다. 고정 비용의 부담을 견디다 못한 영세 자영업자들이 줄도산하고 시장으로 몰려나오면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경쟁이 심화된다는 것은 명약관화이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폭증은 덤이다.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창업, 즉 자영업이 전체 창업의 63%로 OECD 평균보다 2배 이상 높다는 OECD '2014 기업가정신 보고서'의 내용을 고려하면 문제는 결코 가벼이 넘길 만한 것이 아니다.

현행법상으로는 이처럼 사각지대에 놓인 자영업자들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 최근'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권리금 법제화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고, 민사소송을 걸 수 있는 권리금의 조건도 최소 5천만 원 이상이라 그보다 영세한 자영업자는 여전히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건물주의 방해 등으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세입자가 그 사실을 입증해야만 하는 문제 등도 있다. 법적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한 이유다.

일본은 세입자가 기간을 정하지 않고 장기 임차를 할 수 있도록 1991년 '차지차가법'을 제정해 안전망을 만들어뒀다. 권리금도 시세나 수익에 따라 세입자끼리 마음대로 치르는 것이 아니라, 점포 일대에서 발생할 이익을 고려해 건물주에게 선불 개념으로 지불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건물주는 권리금을 통해 득을 보고, 세입자는 장기간 매장을 유지할 수 있는 '윈-윈'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이처럼 자영업자가 안정적으로 운영할 조건이 선결돼야만 최저임금의 인상은 그 순기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한때 엄마의 가게가 있었던 거리를 다시 찾았다. 당시 주변 상가를 함께 지키고 있었던 소규모 카페와 화원, 의류 매장 등은 대부분이 바뀌어 있었다. 모두 엄마 또래의 자영업자들로, 늘 서로의 가게를 오가면서 인사를 나누던 사이였다. 이제는 상호부터 이름, 혹은 업종에 이르기까지 이전과 같은 것이 하나 없었다. 이미 커다랗게 '임대'를 써 붙여놓은 매장들도 몇몇 보인다. 지난해 국세청이 밝힌 개인사업자 폐업 현황에 따르면, 2002년부터 10년간 폐업 건수는 793만 건으로, 매년 80만 명이 간판을 내린 꼴이었다.

최저임금의 인상에 대한 임금 근로자의 목소리와 자영업자의 절박한 반발에는 모두 생존이 걸려 있다. 쉽사리 어느 한 쪽의 편만 들기 어렵다. 영세한 두 주체가 이처럼 극렬히 대립만 한다면, 서로 처절하게 경쟁만 하다가 공멸하는 비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영업자와 임금 근로자는 결코 적대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공생해야만 하는 관계다. 유일한 개선의 여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지대에 있다. 무엇이 더 시급하고 근본적인 문제인지 다시금 돌이켜봐야 하는 이유다.
#최저임금 #임대료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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