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아이 살해한 10살 소년들, 악의 화신일까

[서평] 테리 이글턴의 <악: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등록 2015.07.20 16:12수정 2015.07.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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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를 겨우 뗀 어린아이를 고문하다 살해한 열 살짜리 남자아이 둘이 체포된다. 충격에 빠진 대중은 그들을 '악마'로 여기지 않을까. 15년 전 영국에서 이 사건이 벌어졌을 때 담당경찰 한 명이 두 아이 중 하나를 보자마자 대번에 사악하다는 것을 알아봤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적 파장이 큰 잔혹범죄가 벌어질 때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학평론가인 테리 이글턴 영국 랑카스터대학교 영문학과 교수는 이 책에서 특정 행동의 원인을 악에서 찾는 일종의 악 결정론적 태도를 비판한다. 윌리엄 골딩, 토마스 만, 괴테 등 고전 작가들의 문학 텍스트에서 찾은 논거들을 통해서다. 저자는 철학과 신학 분야의 논점들도 꼼꼼하게 짚는다.


보통 사람이 자살폭탄테러와 같은 극한의 폭력을 악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스스로에게 도덕적 경종을 울려줄지 모른다. 그러나 실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안 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악의 남용을 비판하는 이유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취향처럼 악이라는 단어는 뭔가를 일단락 짓는 말, 더는 문제 제기를 불허하는 종류의 단어다.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의 행위는 악일 수 없고 악한 인간의 행위는 왈가왈부할 수 없다는 주장이 이런 논리를 담고 있다. (17쪽)

"범행을 저지른 아이들이 어쩔 수 없이 악했다면 사실 결백한 셈"(13쪽)이다. 많은 이들이 그러는 것처럼 테러범들이 진정 악의 화신이라면 그들은 "정신 병원에서 따뜻한 치료와 보살핌을 받아야"(14쪽) 할 것이다. 악 결정론을 따를 때 범인은 악이지 그 사람이 아니다.

악 결정론은 비참한 사회 조건에서 성장했으면서도 '성공'한 사람들을 추켜세우는 보수주의자들의 "절대적 자기 책임의 신조"(20쪽)에 터를 잡고 있다.

이 신조에 따르면 인간은 온전히 자율적인 존재, 말 그대로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율법인' 존재로 여겨져야만 한다. 인간의 행동에 사회적 요인과 심리적 요인이 미치는 영향을 끌어들이는 행위는 인간을 좀비로 환원시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중략)


책임을 진다는 말은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특수한 방식으로 사회의 영향하고 관련을 맺는다는 뜻이다. 책임을 진다는 말은 사회적 영향에 좌우되는 꼭두각시를 뛰어넘는다는 뜻이다. 어떤 고대 사상에서 쓰이던 '괴물'이라는 단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다른 사람들하고 완전히 무관한 존재'다. (21~22쪽)

'괴물'이나 악인을 강조하는 관점의 진짜 문제는 악을 남용하면서 전체 사회 구조나 시스템의 문제를 도외시하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옮긴이의 총평처럼 "사회 개혁의 여지를 봉쇄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이 체제를 유지하는 권력 체제"(202쪽)가 (악으로 명명되곤 하는 구조적) 폭력의 진정한 배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일어난 9․11 참사를 두고 "이 책에서 선택한 악이라는 단어의 의미로 이슬람 테러를 악이라고 규정하는 일은 아랍인들이 품은 분노의 실체를 부인하려는 처사"(196쪽)라고 비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는 테러리스트들을 몰지각한 괴물로 취급하는 관점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그 폭력을 벗어날 유일한 해결책은 더 많은 폭력밖에 없다고 일갈한다.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문제가 해결되기는 난망한 일이다.

마르크스주의 문학 비평가인 저자가 견지하는 관점은 유물론적이다. 대부분의 폭력과 불의를 개인의 사악한 성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물질적 힘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나는 많은 부도덕한 행동이 물적 제도하고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원죄가 인간만의 잘못이 아니듯 그 행동이 전적으로 부정을 저지르는 이들의 잘못만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중략) 행위란 행위자가 사악하지 않아도 사악할 수 있다. (188쪽)

저자는 인류의 안정과 생존이 악과 부정 사이를 구별하는 데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악'에 대한 지나친 몰입이나 비판은 제도적인 '부정'의 문제를 도외시하게 만들어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부정은 기득권과 익명의 절차가 빚은 결과일 뿐 개인들의 악의적 행위가 가져온 결과"(179쪽)가 아니다.

대부분의 부정이 우리의 사회 체제 안에 장착돼 있기 때문에 부정에 기여하는 개인들은 당연히 자기 행위의 무게를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 (중략) 정치적으로 비열한 짓을 일삼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기가 국가나 회사나 신이나 자유 진영의 미래를 위해 사심없이 봉사하고 있다고 믿는 성실하고 세심한 사람들이다. 이런 자들은 존중할 가치가 없는 자기의 행동을 비열하지만 꼭 필요한 행동하고 똑같이 여긴다. (179~180쪽)

저자는 생존을 위해 물질적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덕성이나 고결한 경향을 띠지 않는 이유를 "계급 사회가 가져온 자원의 인위적 희소성 때문"(187쪽)이라고 분석한다. 세상의 불의와 불합리가 인간의 악한 본성이 아니라 체제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

이탈리아의 유대계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신입 수감자의 평균 생존 기간이 3개월에 불과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1개월을 보냈다가 구출되었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친 레비는 "괴물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에는 그들의 수가 너무 적다, 가장 위험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저자의 관점에 따른다면 불의의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괴물'들을 꼬집는 말일 터.

시스템이 보통 사람을 '악마'로 만드는 예는 흔하다. 군부독재정권 시절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목사가 된 뒤에도 자신의 과거 행적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수년 전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애국은 남에게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 당장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똑같이 일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근안은 잔혹한 고문을 준비하면서도 딸의 입시를 걱정했던 '따뜻한' 가장이었다. "수백만 명의 유대인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일"을 책임감을 갖고 수행한 나치 친위대 장교 아돌프 아이히만 역시 성실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저자를 따라 '진정한' 악의 실체와 배후를 성찰하고자 할 때 고민해 볼 만한 사례들이 아닐까.

<악: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테리 이글턴 지음, 강현주 옮김 / 이매진 / 2015. 6. 25. / 222쪽 / 1,2000원)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악 -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테리 이글턴 지음, 오수원 옮김,
이매진, 2015


#<악: 우리 시대의 악과 악한 존재들> #테리 이글턴 #악 결정론 #이근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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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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